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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은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유명한 (제2차 세계대전) 서문에서 “이번 전쟁만큼 방지하기 용이했던 전쟁은 없었다고” 쓰고는 제2차 세계대전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전쟁”이라 불렀다. 처칠로서는, 여왕 폐하의 신하로서 단 한 뺨의 식민지도 내놓지 못하겠다던 자신의 다짐과는 달리 대영제국의 몰락을 막지 못한 회한(悔恨)이 뼈에 사무친 말이라고 생각한다.
강대국의 시각에서는 6,25 동란도 막을 수 있는 전쟁이었을 것이다.
소련이 지원하고 협력하지 않았다면 김일성은 전쟁 준비를 하지 못했다. 미국이 미군을 빼고 애치슨라인을 물리지 않았다면 공산군은 감히 남침할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민족의 허리를 자른 강대국들이 이런 친절을 베풀 리 만무하다. 이 무렵의 세계사는 국가 간에 호의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었다.
우리는 전쟁을 예방할 힘이 없었다. 붉은 군대가 친 철의 장막(iron curtain) 뒤에서 전쟁을 꾸미는 공산주의자들을 어찌 막겠으며, 고향이 그리워 돌아가겠다는 미군을 어찌 붙잡겠는가. 국가 경제가 곧 미국 원조인 상황에서 자주국방은 꿈도 꾸지 못할 형편이었고 현대전을 치를 군사지식을 갖춘 장교의 숫자도 손에 꼽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중국이 공산화 되면서 동북아의 국제정세는 완전히 뒤집혀 버리고,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대륙세력과 자유민주주의를 따르는 해양세력이 부딪히면서 어마어마한 지각변동은. 결국 전쟁이 일어나고. 6,25 동란은 내전(內戰)이면서 내전이 아니었다.
공산당이 주장하듯이 민족해방전쟁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한반도 6,25 전쟁은 공산주의국가와 자유민주주의국가가 맞붙은 역사상 최초의 이념전쟁이었다. 우리 민족은 전쟁터를 빌려주고 왼쪽과 오른쪽으로부터 두들겨 맞았다. 슬픈 일이자만, 이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지고 나서야 우리는 최소한 양쪽으로부터 뭇매를 맞는 신세에서 벗어났다.
상흔은 깊었지만 폐허에서 일어날 단초를 마련하여 우리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강소국으로 발전했다.
우리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이념의 냉전시대는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이 해체되면서 끝이 난지 오래 됐다. 지금의 남 북 간 문제는 세계에 유래가 없는 북한의 잘못된 3대 세습의 권력체제를 어떻게 변화시켜 통일을 이루느냐의 문제다. 이념과 체제의 대결은 이미 오래전에 끝이 났다.
북한이 우리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대의 권력체제를 북한이 감히 어떻게 바꿀 수 있고 변화 시킬 수 있겠는가, posone01@naver.com
*필자/김정기. 김대중 전 대통령시 청와대 수행부장. 한국정치사회숲 이사장.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