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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이 다른 국회의원(國會議員)

이승철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5/01/06 [12:21]

사정하여 한 표 한 표를 얻어 당선만하면 헌법기관 국회의원 그 무서운 힘으로 장관을 쥐잡죄듯 한다. 우리 고장 당선자 여러분 중 몇몇 의원을 알아본다.

 

△유범수:사적인 일이지만 파일을 펼쳐보니 편지 29통이 나온다. 당시 초등학교 교원인 나에게 스물아홉 통 적은 수가 아니며 군민 여러 분에게도 보냈을 것이니 가히 편지 왕이라 할 수 있다. 다리군수로 유명했고 처음 호는 남계(南溪)이더니 글씨를 쓰면서 승당(丞堂)이라했다.

 

△이존화:‘되는 일도 못하는 일도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자기 한 일을 함부로 말하지 않고 생색내지 않는 성품 때문이었다. 국회문교분과위원장과 자유당조직부장을 하여 흔히 이승만-이기붕-이존화 서열 세 번째라는 평이 있었다. 그러나 자기 이름으로(가족 포함) 땅 한 평, 집 한 채 등기해 본 일이 없다. 2014년이 출생 100년, 서거 50년, 국회의원 당선 60년이었다.

 

△유기정:자서전《더불어 잘 사는 사회》156면에 “…사무국장 이문구는 전주사범학교와 고려대학교를 졸업 29살에 봉동면장을 역임하여 국회의원을 하면 훌륭한 업적을 남길 분이다” “…운이 그 분에게 가지 않고 엉뚱하게 공천을 내가 받았다.” 이렇게 고백했다.

 

△최영두:1969년5월24일 “…어려운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또 앞으로도 계속해서 시련이 부닥치겠지만 그래도 대자연을 벗 삼고 흙냄새를 맡으며 생활한다는 것은…” 이게 내가 받은 마지막 편지이고 그 후 40일이 되던 1969년7월4일 별세하였다. 완주 유권자들이 어려운 사정을 좀 알고 이끌어 함께 했더라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나이 46세였다. 2014년11월19일

 

<한겨레> 한홍구 교수 글이다.

 

“예비역 준장 중앙정보부 기회실장을 지낸 최영두 의원은 작전 지휘권 이양이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지 않아 원천무효라면서 1966년10월29일 <국군의 작전권 이양에 관한 협정> 폐기 건의안을 제출하였다”.

 

대단한 인물이었다. 이게 역사의 재조명이다.

 

△김태식:국회부의장을 했다. 완주문화원 건축에 애를 썼는데도 정작 기공식 날 보지 못했다. 이래서 세상 무상하다고 한다. 누구든지 업적이 있으면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 것이 공과 사를 떠나서 인간의 고상한 도리이다. 인정이 인격이다. 봉동 삼례 고산 사람은 윤건중 전 농림부장관 기억에서 지우면 안 된다.  esc2691@naver.com


*필자/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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