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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기자회견과 진시황(秦始皇)의 교훈

박근혜 대통령 기자회견, 취임 선서 한 후 달랑 2회!

조성학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5/01/17 [09:50]
대통령 기자회견은 경청(傾耳而聽)의 출전이기도 하다.
 
대통령 기자회견 유감  
 
대통령 기자회견은 민주성(民主性)과 소통(疏通) 척도(尺度)이다.
 
▲ 조성학     ©브레이크뉴스
대통령 기자회견은 언론을 통한 백성과의 의사전달 통로이다. 대통령에게는 국정현안 설명(output)과 민의수렴(input)을 위한 수단이다. 백성에게는 대통령의 생각을 읽고 향후 정책을 예측할 수 있는 기회다. 그래서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대통령일수록 홍보수단으로 활용한다. 비민주적이고 비밀과 자격지심이 많은 자일수록 약점이 잡힐까 기피한다.

취임초기 2년 한미(韓美) 대통령의 기자회견 회수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1회, 빌 클린턴 대통령은 29회였다 한다. 기자들을 다반사로 만나는 일본 수상은 그 보다 훨씬 더 많이 만난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떠한가? 4346년(서기 2013) 2월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한 후 달랑 2회였다. 그것도 제1회는 (마지못해) 자기 할 말 만 읽고 들어가 버렸다.  뒷말이 무성했다.
 
제2회는 각본(脚本)에 짜인 질문답변 형식이었다. (미 JFK 대통령은 1960년에 이미 각본 없는 기자회견을 했다는데.) 성찰(省察)과 내시반청(內視反聽)과 수치지심(羞恥之心)이 없었다.
 
믿거나 말거나 자화자찬(自畵自讚) 아니면 네 탓
 
-(질은 낮지만) 일자리를 많이 늘렸다. 경제는 세계 성장률을 앞섰다. 세계적 침체 속에서도
“수출액-무역흑자-무역규모”가 2년 연속 사상최대(트리플 크라운)였다. 

-앞으로 3년도 계속 잘 해나가겠다.

-청와대 찌라시누출 사건은 검찰수사에서 전혀 문제가 없음이 밝혀졌다. 따라서 관기숙청(官紀肅淸) 인사는 필요 없다.
 
-영남(嶺南)인사 편파채용 지적은 오해다.  그들이 우수하고 책임감이 커서이지 다른 의도는 없다.  소외된 타 지역에도 그들처럼 유능한 인재가 있다면 왜 안 쓰겠는가?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천하일통(天下一統) 후 자시지벽(自是之癖)에 빠져 불통으로 공든 탑을 무너트린 진시황을 한 번 더 찾아보았다.
 
▲ 자시지벽(自是之癖)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제나 제 뜻이 옳다고 여겨 남의 말을 듣지 않는 편벽(偏僻)된 고집.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진(秦) 장양왕(莊襄王)이 어려서 조(趙)나라에 인질로 가 어렵게 지낼 때    趙 수도 한단(邯鄲)에서 활동하는 秦 대상(大商) 여불위(呂不韋)를 만났다.   (사실은 여불위의 손에 걸려들었다.) 여불위는 재물과 종자(從者)는 물론 조기 귀국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동거 중인 자기 애첩 조희(趙姬)의 미모에 반하자 그녀까지 상납(上納)하였다.  진시황은 그렇게 아버지가 왕이 되기 전 조희를 어머니로 邯鄲에서 태어났다.』
 
▲여불위는 장양왕이 귀국하여 제위(帝位)에 오른 뒤 진시황이 그 뒤를 잇게 하기 위한 암투에 전력투구하여 어렵게 성공하였다.  그래서 진시황은 장양왕 씨(氏)가 아니라 여불위 씨일 것이라 하는 것이다.
............................<전략(前略)>...........................
安土息民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편안히) 쉬게 하고
以待其辟          (제후들이 지칠 때까지) 기다리면서
收弱扶罷          약자를 도와주고 강자의 약탈을 멈추게 하며
以令大國之君      대국의 군주로서 법령을 세운다면
不患不得意於海內  세상에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리라는 우환은 없을 것이다.
貴爲天子 富有天下  몸은 천자로서 고귀하고, 부(富)는 천하를 소유하였음에도
而身爲禽者         그 몸이 사로잡히는 신세가 된 것은
其救敗非也         망하는 나라를 구하려는 책략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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秦王足己不問       진왕이 자기 치적에 만족하여 다른 사람에 묻지 않고
遂過而不變         끝내(遂) 자기 자신의 과오를 고치려하지 않았다.
二世受之因而不改   제2세(胡亥호해)는 부왕의 피를 이어받아 고치지 않았고
暴虐而重禍         난포 잔악하기까지 하여 화(禍)를 가중시켰다.
子嬰孤立無親       (호해를 이은) 자영(子嬰)은 고립 무친(無親)하여 
危弱無輔           위태롭고 나약해져도 보필할 사람이 없었다.
三主惑而           (이처럼 진시황-호혜-자영) 세 군주가 미혹 속에서
終身不悟 亡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하여 진나라가 망하였으니
不亦宜乎           이 또한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當此時也 世                그 당시 세상에
非無深慮知化之士也 然所以  심모원려(深謀遠慮) 선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不敢盡忠拂過者  충심으로 감히 왕의 과오를 바로잡으려 하는 자가 없었다.
秦俗多忌諱之禁  진나라 풍속에 너무 많은 금기(禁忌)가 있어
忠言未卒於口而  (섣불리) 충언을 하려했다가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身爲戮沒矣      자칫 목이 잘리는 판국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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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使天下之士 傾耳而聽  그래서 천하의 선비들은 경청(傾耳而聽)만 하고 (수첩에 열심히 받아 적기만 하고)
重足而立 拑口而不言    과도하게 몸을 사리며 입을 열지 못했던 것이다.
是以三主失道   이처럼 세 군주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해도
忠臣不敢諫     충신은 충신대로 감히 간언을 못하고
智士不敢謀     지략가(智略家)는 지략가대로 감히 계책을 내지 못하였다.
天下已亂       천하에 이미 난이 일어났어도(청와대 문서누출처럼 권력누수 현상이 나타났음에도)
姦不上聞       간사한 무리들이 임금에 아뢰지 못했으니
豈不哀哉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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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王 知         선왕들은 알고 있었다.
壅蔽之傷國也    윗사람의 총명(聰明)이 가로막히면 나라가 망함을.
故置公卿大夫士  그래서 공경대부(公卿大夫)와 선비를 (곁에) 두었으며
以飾法設刑而天下治   법령을 손보고 형제(刑制)를 정비하여 천하를 다스렸다.
其疆也 禁暴誅亂而天下服  나라가 강할 때는 제후 횡포를 막고, 반란자를 죽여 천하를 복종시켰다.
其弱也 五伯征而諸侯從  나라가 약할 때는 오패가 정벌에 나서 제후들이 따르게 하였다.
其削也 內守外附而社稷存  영토를 빼앗겼을 때는
   궁성 수비를 강화하고 외곽은 주변 제후국에 의탁하여 나라를 보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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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秦之盛也        드디어 진나라 세력이 왕성해지자
繁法嚴刑而天下振  엄격한 법령과 형벌로 천하에 떨지 않는 자가 없게 하였다.
及其衰也          마침내 나라가 쇠약해지기에 이르자
百姓怨望而海內畔矣  백성은 이를 원망하며 나라 안에서 반기를 들었다.

sukbongch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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