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만화가 출신 화가인 김진호 작가의 티지털 그림 전시회는 이색적이었다. 지난 2009년도부터 디지털 추상화작업 시작해 현직 시사만화가로서 활동 중에 틈틈이 그린 디지털 추상화 200여편 가운데 50여점이 24일-25일 양일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사 내 전시관에서 전시된 것. 디지털 프린팅된 그림 50점(추상화 반추상화)이 전시 됐다. 그림 값도 한 점당 3-5만원이어서 파격적인 값에 매매됐다. 김 작가는 “경향신문 김상택 화백의 시사만화를 보고 감동받아 지역신문에 만평 게재 시작(일인다역으로 바쁜 발행 일정 속에서 만평이 누락되는 날이면 전화가 빗발치는 경우도 있었다”고 회고하면서 “‘갑’의 시대 갑오년이 가고 ‘을’의 시대 을미년을 맞아 ‘을’ 위한 새로운 대중회화를 선언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김 작가와의 일문일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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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구된 그림이 한점 당 5만원 정도에 매매됐는데, 그 이유는?
▲일련의 정치적 사건으로 인해 미술품 경매에 나온 유명 화가들의 명화를 보면서 화화작품이 결코 몇몇 사람들의 독점물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수년간 작업해온 100% 디지털 작업에 의한 저의 회화작품을 대중화하는 방향으로 다시 손보기에 이르렀다. 무한복제가 가능하면서 작품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디지털 방식의 제작이라고 결론이 이르렀다. 2000년도부터 시사만화를 100% 디지털 작업을 해와 현재 다룰 수 있는 그래픽 프로그램만 7~8개이다. 이중에서 캔버스 프린트 했을 때 확대해도 그림이 깨지지 않는 벡터방식의 일러스트에리션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출력 사이즈에 구애받지 않는 100% 디지털 회화작업 추구했다. 피카소가 알타미라 동굴벽화보다도 오래된 라스코 원시동굴벽화를 보고 현대회화의 죽음을 선언했다.
-왜 추상회를 선택했나?
▲변변치 않은 도구와 붉은 색이 도는 흙으로 그것도 울퉁불퉁 고르지 않는 동굴벽과 천장에 생동감 넘치는 소, 사냥의 그림은 변하지 않은 해묵의 현대회화를 사실상 조롱하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제가 실물이 아닌 영감에 의한 추상화에 주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추상화는 가장 쉬운 그림이라고 봅니다. 보는 사람마다 자신의 입장에서 달리 해석하고 감상할 수 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은 항상 같지 않고 대중은 각기 독특한 자신만의 심미적 감각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추상화에 매력을 느낀다. 회화의 역사적 변천 과정이 있듯이 이제는 회화의 창작 방식도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남준 아티스트도 60년대 이미 모니터에 그림을 그리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듯이 미래 회화의 주요한 방식은 디지털 작업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 하고 있다. 회화 도구의 트렌드 측면에서도 그렇고 다수의 문화소비층을 위해서도 무한복제가 가능한 디지털방식도 새로운 주류 양식으로 인정되리라 본다. 프린트와 액자 값 그리고 약간의 수공비와 택배비용을 합쳐 불과 몇 만원에 회화작품을 자신의 거실에 걸어둘 수 있는 시대가 온다고 선언한다. 결국 제 그림 한 장은 일반인에게 1원도 안되는 셈이다. 왜냐면 무한복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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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아트라는 말이 생소하다...
▲일반 미대생이 유화작업을 할 경우, 통상적으로 1호당 1만5천원을 받는데 보통 10호(53x45.5cm) 그림을 그릴 경우, 15만원을 작가에게 건네야 한다. 최하 수준의 가격인 경우이다. 일반 서민에게 여전히 부담스런 가격이고 점점 회화작품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끼게 만드는 요인 중의 하나라고 본다. 시대가 바뀌고 조건이 바뀌면 회화방식도 당연히 바뀌어야하고 그림의 소비 대중 또한 명화의 사진 또는 모작이 아닌 작가의 진품을 즐길 권리가 있다고 본다. 현재 디지털 아트라는 이름으로 예술분야가 있으나 온라인을 통한 상호작용으로 개방되어 있다 해도 반대로 지나친 사이버 세계 속에서만 머물러 오히려 폐쇄적 경향을 보인다. 디지털 방식에 과도한 집착은 그 자체만으로는 다시 대중과 괴리되는 경향의 예술이 되기 쉽다고 본다. 저는 기존의 디지털 아트와 전통적 시각 회화 방식인 액자그림을 결합해 보다 쉽게 대중에게 다가가는 새로운 회화를 추구한다. 프린트 출력 천과 액자가 일종의 오브제가 되는거다.시간적으로나 비용면에서나 보다 용이한 디지털 회화 작업을 통해서 프린트 출력된 그림을 전통적 액자 그림으로 선보이는 방식, 이것이 제가 추구하는 대중회화 방식이다. 현재까지는 기성미술계에선 디지털로 제작되고 프린트된 그림을 회화로 인정하지 않는 추세이다.
-사람들이 오 가는 역사에서 전시회를 열었는데...
▲저의 첫 전시회를 지하철 역사에서 개최하는 이유도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그들에게 주요하게 어필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이다. 디지털 방식으로 작업을 하지만 전통 회화, 특히 유화 느낌을 최대한 구현하려고 한다. 디지털 작업으로도 전통회화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 중점을 두려고 한다. 일종의 회화방식의 새로운 변화를 대중에게 알리고 싶은거다. 유화물감으로 범벅되지 않고도 무제한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물감으로 저의 무한한 상상력의 나래를 펼 수 있어서 좋고 무제한적으로 복제한 작품을 기존 회화작품 가격에 비교할 수 없는 저렴한 가격으로 대중에게 선보일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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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만화가였는데 왜 변신했나?
▲외람된 이야기지만 지금보다 젊은 시절 시사만화를 시작할 무렵(90년대)에는 비판적 시사만화 작업이 너무 좋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업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근래에 들어서는 남을 비판한다는 자체가 부담스러워진다는 생각이 부쩍 들고 과연 내가 남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회의도 많이 들어 요즘은 행복한 시사만화를 그리고 싶어진다. 또한 추상화 그림(디지털 작업)을 그릴 땐 시사만화를 처음 시작할 때의 열정이 솟아나고 작업 자체가 행복하다. 그래서인지 채색 또한 주로 밝은 톤에 끌려서 작업을 한다. 다년간의 디지털 방식의 시사만화작업을 통해서 얻어진 그래픽 툴 기능의 습득이 디지털 추상화 작업에 적용되었을 뿐이며 디지털 회화방식이 저만의 독특한 회화방식은 아니다. 이미 많은 디지털 아이티스트들이 구현하고 있는 방식이지만 저는 기존 디지털 작업방식에다 전통적 그림액자를 결합해 대중에게 소박하게 다가가려는 것. 작은 차이겠지만 대중에게는 크게 다가올 것 같다.
고 2때, 미술선생님이 미대를 추천해 내심 반가웠지만 당시 광부였던 아버지께서 “화가는 밥 굶는다”며 반대해 미술과는 거리 먼 신문방송학과(계명대)를 나와 몇 년 간 지역신문 기자, 케이블방송(당시 태백케이블방송 현 영동방송) PD를 거쳐 결국 좋아하던 그림을 시사만화로 시작했다. 1990년대 초 케이블방송에 몸담던 시기 IT를 처음 접하고 관련 IT교육을 수료한 덕에 올 디지털 작업으로 시사만화를 그릴 수 있었고 당시로서는 실제로 유화작업 할 수 있는 여력이 없는 가난한 시기였기에 컴퓨터상에서라도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을’의 시대, 아니 원래 서민의 시대이지만 이제 서민들도 아름다운 회화작품을 마음껏 언제나 어디서나 감상할 수 있는 시대를 저부터 만들어 가고자 한다.
한편, 김진호 작가는 전 영남일보-인천일보-경남매일-시사만평 담당이었고, 현재는 충청일보 매일일보-천지일보 시사만화 담당이자 mbn 보도국 삽화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