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9년 5월 20일 대구시 동구 효목동 골목길에서 김태완 군(당시 6세)이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에게서 온 몸에 황산을 뒤집어쓰는 테러를 당했다. 그 자리에서 실명한 김 군은 패혈증을 앓다 49일 만에 숨졌다. 수사 초기 김 군의 친구 이 모 군은 자신이 사건을 목격했다며 이웃 아저씨 A씨를 용의자로 지목했고, 김 군도 같은 주장을 했지만 경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판단했고 결국 범인을 밝혀내지 못한 채 2005년 수사를 종결했다. 하지만 2013년 11월 김 군 유족과 시민단체들이 재수사를 요구했고 이에 수사당국이 7개월 간 재수사를 했지만 그래도 혐의를 입증할 객관적 증거를 찾지 못해 불기소 처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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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공소시효 만료(15년)가 사흘 앞으로 다가오자 김 군 부모는 지난해 7월 4일 재정신청을 냈다. 재정신청을 내면 그만큼 공소시효는 정지되는데, 재정신청은 지난 3일 기각됐고 김 군 부모는 엿새 뒤인 9일 재항고했다. 만약 대법원에서 재항고마저 기각된다면 김 군 사건은 영구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김 군 부모가 낸 재정신청이 대구고법에 계류돼 있던 상황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의원(서울 중랑갑)은 지난해 10월 대구로 가서 김 군 부모를 만나 억울한 사정을 청취하고 곧이어 열린 대구고법 국정감사에서 김 군 사건에 대한 재정신청을 받아들이라고 촉구했다. 서 의원은 당시 국감에서 "재정신청이 기각된다면 이 사건 공소시효가 최종 만료돼 나중에 범행이 입증되더라도 처벌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진다"며 중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구고법은 김 군 부모가 낸 재정신청을 기각했고 이제 공소시효 연장에 관한 최종 결정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김 군 사건을 둘러싼 공소시효 연장 문제의 판단 책임이 최종심에 맡겨진 상황에서 서영교 의원이 이번에는 아예 “살인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폐지하자”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로 해 주목된다. 그간 김 군 사건에 높은 관심을 보이며 김 군 부모, 관련 시민단체 등과 지속적으로 접촉해 온 서 의원은 살인 범죄자가 검거되지 않은 채 공소시효만 넘기면 처벌을 피할 수 있는 현행 공소시효 제도의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20일 밝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답게 이번 기회에 아예 관련 법률을 고쳐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우리나라는 2007년 형사소송법을 고쳐 공소시효 기간을 전반적으로 늘렸다.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는 15년에서 25년으로,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는 10년에서 15년 등으로 연장했다. 따라서 개정법에 의하면 김 군에 대한 황산테러 사건의 공소시효는 25년이어서 아직 10년 더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지만 부칙에서 개정법 시행 전의 범죄에 대해서는 종전 규정을 적용토록 했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15년인 것이다.
전 세계 문명국가들이 하나같이 공소시효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국가가 범인을 끝까지 추적하여 처벌하는 것이 정의롭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공소시효 제도를 두는 주된 논거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증거가 멸실된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다 공소시효가 없거나 너무 길면 국가권력이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할 소지가 없지 않기 때문에 공소시효를 존치하는 것이라고 학자들은 설명한다.
그렇다고 공소시효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과 수사기법이 크게 발전했으므로 이제는 아무리 오래된 증거라고 할지라도 거기서 충분히 가치 있는 단서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공소시효 제도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소시효를 크게 늘린다든가 흉악범죄, 중대범죄, 어린이·장애인 상대 범죄에 공소시효를 배제하자는 주장도 있다.
공소시효를 둘러싼 이런 상황 변화를 감안해 일본의회는 지난 2010년 4월 27일 살인 등 중대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폐지하고 개정 법률을 즉각 발효시켰다. 1995년 4월 일어난 오카야마 현 구라시키 시 부부 살해사건의 공소시효가 2010년 4월 27일 밤 12시 만료된다는 점이 일본의회 공소시효 폐지 결정의 주요 계기가 됐다. 개정법은 살인, 강도살인죄 등 최대 형량이 사형인 12가지 범죄에 대해 25년인 공소시효를 폐지했다. 일본에서 공소시효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거가 없어져 재판이 불공정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오래 유지돼왔다. 하지만 수사기술의 발달로 시간이 지나도 증거의 정밀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됐고, 여론이 끊이지 않는 흉악범죄에 대해 엄격한 대처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공소시효를 없앴다.
반(反)인도주의 범죄에 대해서는 아예 공소시효와 상관없이 처벌하기도 한다. 2차대전 피해국들은 지금도 전범들을 추적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등은 범죄 관련자들을 색출·처벌하기 위해 특별법까지 따로 만들었다. 이스라엘은 나치 등 유대인 학살범에 대해서는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지구 끝까지 추적해 검거하여 법정에 세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공소시효 배제는 소급효(遡及效)와 충돌한다. 소급효 금지는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 이래 형사법 근본원리의 하나가 됐지만 2차 대전 이래 적잖은 예외가 생겨났다. 평화에 반(反)한 죄, 인도에 반한 죄 등은 소급효를 인정할 수 있으며 이런 예외가 죄형법정주의를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법학자들 사이에서 무성하다.
지난 2012년 11월 개봉한 한국영화 <내가 살인범이다>는 공소시효를 넘긴 살인범이 당당하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색다른 소재로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는 공소시효가 끝난 살인범이 자신의 범행을 낱낱이 고백하는 자서전을 발간하면서 발생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연상시키는 영화 속 ‘연곡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15년이 지나자 공소시효가 만료된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최형구 형사는 여전히 업무상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그로부터 2년 뒤 범인 이두석은 『내가 살인범이다』라는 자서전을 들고 언론에 등장한다. 범인은 자서전에 ‘이 책을 최형구 형사와 모든 유가족들에게 바칩니다’라는 문구를 삽입하고 눈물을 흘리는 자기 사진을 곁들이는 등 뻔뻔함을 과시한다. 이두석은 이 책을 팔아 큰돈을 벌며 유명인이 되고 무력감에 빠진 최형구 형사는 비록 공소시효가 끝났더라도 이두석이 죗값을 치러야 한다며 사회에 대고 절규한다.
영화 속 최 형사의 외침은 우리나라의 현행 공소시효 제도가 지닌 한계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서영교 의원이 이번에 내놓은 살인범죄 공소시효 폐지 방안이 국회 차원에서는 물론 범사회적으로 공소시효를 둘러싼 심도 있는 논의로 이어져 우리나라 사법정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좋은 계기가 되기 바란다.
*필자/송철복. 언론인. 전 이데일리논설위원.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