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가혜 “해경 명예 실추시킨 적 없다…사실 말하고 마녀사냥 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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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16일 세월호를 둘러싸고 수많은 ‘말’이 오갔다. 정치인들은 진도를 방문하는가 하면, 진상조사에 힘쓰겠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민간잠수사로 종합편성채널에 출연, 10분 인터뷰로 101일 동안 구속수사를 받은 이도 있다.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은 언론과 정부의 무능력함에 분노했다. 진도실내체육관에서 가족들의 곁을 돌본 사람도 있었다. 안철수 의원, 홍가혜씨, 익명을 요구한 세월호 유가족, 물리치료사 김재관씨 4인의 인터뷰를 전한다.
취재/김양균(탐사전문 기자)
◆안철수, “세월호 참사 이후 달라져야”
지난해 6월29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전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와의 비공개 토론회가 진행됐다. 이날 토론에서 안 전 대표는 세월호 진상조사와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새정치연합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답했다. 진상조사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특별법을 통해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새정치민주연합이 7·30 재보선에 참패하면서 안 전 대표는 공동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또한 8월 말이 활동시한인 세월호 국조특위는 별다른 활동도 하지 못한 채 문을 닫았다. 다음은 토론회 당시 세월호 관련 안 의원의 발언 중 일부다.
“야당이 비전 없거나 콘텐츠 없다는 말씀 많이 하시잖아요? 사실은 내부적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달라진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달라진 대한민국의 모습과 이걸 이루기 위한 커다란 위원회. 이름도 거의 다 정해졌는데요. 지금 체계적으로 정리 중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달라진 대한민국을 위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 비전과 이것을 이루기 위한 세부 구조들, 어떤 당내 위원회들. 기존에 하부 위원회들 중에서 이미 있는, 예를 들면 을지로위원회라든지. 거기에 속하는 좀 더 큰 그림을 지금 그리고 있고.
그런데 이거를 과연 이번에 설명을 해드릴 건지, 아니면 오히려 이것은 진정성을 가지고 저희가 접근하는 건데 자칫하면 선거용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데 그건 바라지 않거든요. 그러면 아예 (재보궐) 선거 이후에 할 것인지는 사실 고민을 해봐야 하는 지점이고요. 만일 선거 전에 이런 것들을 설명하지 않을 것 같으면, 다른 무엇을 가지고 저희들이 그냥 비판만 하는 세력이 아니라, 실제로 믿을 만한 세력인지를 설득 가능할 건지 거기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이 못났다는 점, 그 정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월호와 관련해) 진상조사나 국조특위의 진척 부분이 중요한 것 아닌가.
“아니요. 저희들은 더 크게 봐요. 그 부분이 중요하고 제일 먼저 선행돼야 하고요. 근데 그 이후에 우리 달라진, 우리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구조적인 변화들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세월호 침몰 참사에 대한 진상조사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더 큰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동의할 사람이 있다고 보나.
“진상조사는 분명히 돼야 되고 그것은 이제 우리 특별법을 통해서 그대로 실행할 겁니다. 그리고 거기에 따라서 후속조치들을 하면서, 예를 들면 ‘정부 조직개편이 필요하다’ 이런 게 어떻게 개편하는 게 필요한지는 진상조사 결과로 나오는 게 맞잖아요. 섣불리 무슨 처가 필요하다고 미리 말했잖아요. 국가안전처인가요? 그거는 지금 말할 순서는 아니죠. 기본적으로 인간중심의 경제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건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또 어떻게 할 건지….”
-국민들이 안 의원의 생각에 동의할 것으로 보나.
“그런 여러 가지 논의들이 있잖습니까? 이미 진상조사 이전에 커다란,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는 저는 공감대가 있다고 봐요. 그런 방향들에 대해서 우리가 하자는 거죠. 예를 들면 경제민주화 말하다가 그냥 끝났는데, 그걸 통해서 더 큰 그림을 이루려고 했던 거 아니에요?
토마 피케티(파리경제대학 교수)가 <21세기 자본론>을 통해서 이야기한 게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것 중에 하나가, 뭐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순 있는데요. 결국은 불공정한 경제구조는 전체 발전을 해친다는, 그렇게 해석을 할 수 있거든요. 이게 어느 정도 자신이 열심히 일한 성과를 공정하게 서로 나누는 그런 구조로 바꿀 수 있다면, 오히려 전체의 파이가 커질 수 있다.”
“대선 때도 이야기했었던 것 같은데, ‘공정한 경쟁 구조 내지는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면 거기서 우리의 제2의 성장동력이 나올 수 있다, 우리 모두 다 제대로 잘 살아갈 수 있다’ 그게 제가 생각했던 그런 쪽의 이야기인데요. 이미 다 나와 있습니다. 이게 우리가 가고자 하는 커다란 방향에 대한 비전, 그런 부분에 대한 설명을 드리겠다는 말입니다.”
◆홍가혜, “난 사실을 말했다”
-4월18일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겠다.
▲건강을 잃었다. 교도소 수감 중 몸상태가 좋지 않아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자궁경부암 직전 단계라는 얘기를 들었다.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았다. 반면 남자친구, 가족들 간의 관계는 더 돈독해졌다. 주변 사람들 중에서 진짜 내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됐다.
-민감잠수사로 지원한 이유가 무엇인가.
▲당시 제주도 여행 중이었다. 사고 당일(4월16일) 전원구조 소식을 듣고 휴대전화를 꺼두었다. 이튿날 승객들이 실종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곧장 진도로 갔다. SNS를 보니까 민간잠수사를 구한다고 하더라. 조류는 세고 시야는 32~35미터라고 했다. 그 정도면 들어갈 수 있겠더라. 잠수사 자격증은 없었다. 5년 전에 기초 잠수 교육을 받고 다이빙도 했었다. 다이빙할 때 그 정도는 들어갔었다. 야간 잠수도 해봤기 때문에 시야도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의 평가를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양심에 걸리지만 않으면 연연해하지 않는다. 아직까지 거짓말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전언을 바탕으로 한 인터뷰, 경솔했던 것 아닌가.
▲인정한다. 내가 만난 유가족들은 나를 지지해줬지만, 그들의 친척 중에는 나를 안 좋게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신없는 와중에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없으니 오해가 생길 만도 하다.
-<MBN>과 인터뷰를 하게 된 경위는.
▲살려달라는 내용의 고 한세영 학생의 글이 페이스북에 퍼졌다. 다들 진짜다, 가짜다 말이 많을 때 한 양의 아버지가 딸이 살아 있으니 도와달라는 글을 썼다. 댓글을 쭉 보니 정말로 살아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심증만으로 주장할 수 없지 않나.
댓글에 보니까 MBN 김아무개 작가의 연락처가 있었다. 전화를 걸었다. 한 양의 글인지 아닌지는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냐고. 내가 민간잠수사 지원해서 가는 중이라니까 진도에 도착하면 상황을 알려달라고 했다. 궁금하겠다 싶어 알겠다고 했다.
전화와 문자를 수차례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인터뷰 제의를 받았다. 난 잘 모른다니까 현장 잠수부들이 어떻게 작업하는지 알아봐달라고 했다. 현장 잠수사들이 더 잘 알 것 같아 인터뷰를 해보라고 전했다. 다들 어떻게 후폭풍을 감당할 거냐며 손사래를 쳤다. 막사에 있는 잠수사 3명에게 인터뷰를 넘기려고 했다. 뒷감당 못한다고 싫다고 하더라. 정부 발표를 뒤집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뷰 후에 민간잠수사들의 반응은 어땠나.
▲잘했다고 하더라. 그래놓고 내가 체포되니까 다들 잠수를 타더라. 그중 한 명은 검찰 측 증인으로 나와 ‘홍가혜는 거짓말쟁이’라며 해경 편을 들었다. 물론 그의 발언은 변호사를 통해 뒤집어졌다.
-언론에 자신을 자주 노출시키는데.
▲그렇지 않다. 언론 노출은 우연이다. 언론을 이용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이용해서 나한테 어떤 이득이 있나 반문하고 싶다. MBN과의 인터뷰도 시끄러워질까봐 안 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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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의 빌미를 스스로 제공했다는 지적도 있다.
▲누구라도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이 안하니까 한 것이다. 도쿄 대지진 당시 MBC 인터뷰를 두고 교민을 사칭했다는 루머도 있다. 당시 사람들이 엄청 많았는데 갑자기 나한테 카메라를 들이댔다. 한국에 알려야 하지 않겠냐고 해서 방사능의 위험에 대해 얘기했다. 두렵다고. 그런데 전부 편집됐다.
-과거 행적을 문제 삼아 ‘허언증’, ‘과대망상’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걸 보면서 김용호 기자한테 화가 났다. 과거 행적들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악의적으로 이야기를 했다. 아니라는 걸 말하기 위해 김 기자와 통화를 했고, 녹취도 갖고 있다. 트위터에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올렸다. 나는 인터넷에 알려진 것처럼 허언증 환자, 사기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인터뷰 내용이 힘을 잃었다는 지적도 있다.
▲맞다. 그게 너무 아쉽다. 과거행적을 끄집어내지만 않았어도 인터뷰 진위 여부에 초점이 맞춰졌을 거다. 인터뷰 진위 여부까지 묵살당할 정도로 그렇게 여파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피해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사이버 테러가 엄청났다. 다짜고짜 전화해서 욕을 하기도 했다. 1분에 10통씩 전화가 울렸고 집 주소가 공개됐다. SNS에 올린 할머니 사진에도 댓글이 달리는 등 가족들 피해도 심했다.
-인터뷰 여파가 이렇게 커질 줄 예상했나.
▲전혀 예상 못했다. 내 인터뷰 이후 다른 민간잠수사들의 인터뷰도 예정되어 있었다. 민간잠수사 투입을 촉구하는 취지의 인터뷰였기 때문에 이 정도일 줄은…. 내가 인터뷰를 마친 후 약 70~80명의 민간잠수사가 사고해역에 간 것으로 알고 있다.
-인터뷰가 민간잠수사 투입에 영향을 미쳤다는 말인가.
▲결정적이진 않았을 것이다. 당시 실종자 가족들의 항의가 심해 해경도 (민간잠수사 투입을) 고려하고 있었을 것이다.
-인터뷰한 것에 대해 후회하나.
▲후회를 아예 안 한다면 거짓말.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고, 나는 모든 생활을 잃었다. 전 국민한테 내가 교도소에 간 게 알려졌는데 어떻게 살겠나. 한국에선 못 살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당시로 돌아가도 사실을 말할 수 있겠나
▲그렇다. 누구라도 알려야 하니까. 다만 방법은 다르게 할 거다. 감정 그대로 여과 없이 말하진 않을 거다.
-검찰은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수사를 했다.
▲나는 거주지가 확실한데도 경찰은 날 여관을 전전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경찰은 연락이 안 됐다고 하던데 나는 연락을 했다. 밤을 새고 점심까지 자고 일어나니까 문자메시지가 와 있더라. 그래서 분명히 전화를 했다.
-도주 우려가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궁금해서 담당 형사인 임아무개 경사에게 물어봤다. 자기들은 모른다고, 언론에서 그렇게 낸 거라고 하더라.
-언론에 하고픈 말이 많을 것 같다.
유가족 “세월호 인양 및 진상조사를 원한다…돈으로 모욕하지 말라”
물리치료사 “진도에서 본 실종자 가족들의 슬픔 너무나 깊어 보여”
▲본질을 흐리고 마녀사냥을 유발하는 게 바로 언론이다. 누군가를 비판할 때는 신중했으면 좋겠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런데 기자라면, 언론이라면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피해가 크면 자칫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질 수도 있다.
-덧붙이고 싶은 말은.
▲해경의 명예를 훼손하려 한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하려던 인터뷰였다. 내 양심에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다.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서 악의적인 비방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빨리 구조를 하자’는 말이 어떻게 해경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인가.
해경은 세월호 초기 대응에 부실했다. 책임감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명예훼손 운운하며 말할 수 있는지…. 근거를 갖고 생각해보셨으면 좋겠다.
◆용상이 아빠 “기다리는 시간은 절망의 카운트다운”
김용상(가명). 용상이가 수학여행을 갔다. 인천부터 제주도까지 배를 타고 갔다. 지금 제주도 올레길은 꽃이 한창일 것이다. 날씨만 변덕을 부리지 않는다면 햇빛도 환할지 모른다. 벌써 돌아와야 하는데, 여태 소식이 없다. 금요일에 돌아왔어야 할 아이는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왔다. 지금 용상이가 있는 곳에는 꽃이 없다. 볕도 들지 않는다.
“(언론을) 못 믿어요. 미안해요.”
투박한 목소리다. 남자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린다. 도대체 이게 몇 번째인지 모른다는 말투다. 그렇다고 매몰차진 않다.
사과할 이유가 없는데, 미안하단다. 모질지 못한 남자, 그는 아버지다. 자식에게 살가운 말 한번 해본 적 없지만, 수학여행 전날 슬며시 용돈을 쥐어주는, 그런 아버지다. 평생 가족밖에 모르고 산 남자, 그러나 그의 아이가 바다 속에 있다.
체육관 생활이 길어질수록 남자의 가슴에 구멍이 생긴다. 그 구멍은 점점 커져 다리부터 머리까지 빨려들어 간다.
용상이의 가족과 소식이 닿았다. 그는 김용상군의 구조를 기다리는 진도실내체육관 당시의 모습을 ‘전쟁터’에 빗댔다. 참사 초기 뉴스에 대해 실상과 전혀 달랐다고 말했다.
“방송에서 엉뚱한 얘기들만 했으니까요. 구조에 대한 얘기는 없고 계속 했던 것, 사건 경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구조 상황을 생중계해서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상황을 보여줘야 하는데, 같은 장면만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잖아요. 그런 게 말이 안 된다는 얘기예요. 가족들이 직접 배를 빌려서 나갔잖아요. 그걸 보고 기자가 그러대요. ‘80만원을 주고 갑니다’라고. 너무 어이가 없었어요.”
-그래도 뉴스는 계속 방영됐다.
“하루 종일 방송만 하면 뭐 하냐고요. 했던 것만 계속 반복되고, 중간에 뭐 하나씩만 끼워 넣어서는. 그거 잠깐 비추고 또 같은 내용 반복하고. 그러니까 믿질 못하는 거죠. 가족들은 ‘선장이 나쁜 놈이다’는 걸 알고 싶은 게 아니잖아요.
선장이 나쁜 놈이란 걸 누가 모르나, 쳐 죽일 놈이라는 것은 다 아는데. 그런걸. 방송하라는 게 아니라, (구조)현장에 가서 수백 명의 잠수부가 투입이 됐다는데, 그 잠수부들이 어떻게 잠수를 하고 있는지 좀 제대로 보여줬어야 했는데, 그런 건 없었잖아요?”
-구조 현장의 모습을 보여줘야 했었다?
“수백 명의 잠수사가 투입된다는 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국민들이 알았을까요? 가이드라인을 잡고 내려가는데, 줄이 겨우 다섯 개래요. 수백 명이 어떻게 잡고 내려가서 구조 작업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잠수사들이 지쳐서 더 이상 들어가기 힘들다는 말도 그래요. 그 많은 잠수부가 동시에 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잖아요? 조를 짜서 들어갈 텐데. 그런 걸 속 시원하게 전하는 곳은 하나도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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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상 군 아버지는 어떤 일을 하나.
“설비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요.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어요. 어려운 형편에 용상이 엄마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렵게 결혼해서 살고 있었어요….”
-사고를 당한 용상 군의 친구들 사정은 어떤가.
“좋지 않아요. 그 지역이 다들….”
-용상군의 사고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심정은.
“사고가 난 지 3일이 지나서야 알았어요. 직계가족만 내려가서 정신없다 보니까, 저한테 연락할 수도 없었고요. 막상 가족이 그러니까 더 힘들었어요. TV만 켜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오죽 갑갑했으면 방송국에 전화해서 방송을 좀 제대로 하라고 항의도 했었는데, 결과는 똑같아요. 항의를 해봤자 아무 의미도 없고.”
-항의에 대해 방송사가 보인 반응은.
“그냥 ‘미안하다, 죄송하다’ 그래요. 함미가 아직 가라앉기 전이었어요. 배가 기울어져 있는 상태였는데, 뉴스에서 ‘크레인이 가고 있다. 크레인이 도착하면 이것(세월호)을 뒤집어서 끌어올려야 한다. 네 군데서 끌어올리면 배는 멀쩡할 것이다’, 이렇게 방송을 하니까. 화가 났어요. 뉴스에서 애들을 구하잔 소린 안하고 배를 뒤집어서 끌어올리면 인양이 된다고 말해요.
‘크레인이 가서 더 이상 가라앉게 안 하고 구조를 본격화해야 한다’ 이렇게 방송이 나가야 하는 거잖아요. 그쪽에 상식이 없는 사람도, 칠십 먹은 노인네들한테 물어봐도 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방송국에서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하냐는 거예요. 그 말대로 (배를) 들어올리면, 배를 건지러 가는 것뿐이잖아요. 대기업에서도 자기네 홍보하러 가는 건지, 구하러 가는 건지 도통 모르겠어요.
나중에는 뉴스에서 ‘부모의 허락을 받으면, 배를 뒤집겠다’고 말해요. 뉴스가 문제가 되면 본인들 책임이니까.”
-뉴스 내용이 계속 바뀌는 행태에 대해.
“말도 바뀌고 맞는 게 하나도 없었잖아요. 처음부터 계속 뒤집었잖아요. 믿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국가원수인데 지시해서 안 되는 일은 없잖아요. 대한민국에 구조할 사람이 그렇게 없나요? 그리고 지금 가족들은 보상이 목적이 아니에요. 마치 ‘다 끝났으니까 돈이라도 받고, 생계 어려우니 밥이라도 사먹고 라면이라도 끓여먹어라’ 이런 건가요? 그런 대책은 저라도 세워요.
그리고 (보상금이) 대통령 돈이에요? 국민들 혈세잖아요. 그 전에 이렇게 피해가 안 나게끔 한 사람이라도 건질 수 있게 대책을 세웠어야 했잖아요. 그게 대통령인 거잖아요. 다 끝난 다음에 다 죽은 다음에 돈 얘기하는 건 저라도 하겠어요.”
-제때 구조를 했어야 했다?
“초등학생 수준이에요. 국가에서 머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행태가 진짜 초등학생 수준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이거 하면 엄마한테 혼날까봐, 저거 하면 아빠한테 혼날까봐 전전긍긍하고 누가 뭐라고 해달라고 해야만 하는, 그런 수준으로밖에 안 보여요.”
“지금 가족들의 정신이 온전하다고 봅니까? 몸부림 치는 거잖아요”
“유가족들이 웃다가 갑작스레 눈물을 흘릴 때 저희의 한계 느끼지요”
-언론사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누가 막아서 있는 사실 그대로를 밝히지 못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이번 일을 보면 실망이에요. 정말 실망이 커요. 언론도 (정부 관계자들과) 똑같은 것 같아요.”
-시급한 것은 역시 인양과 진상조사일 텐데.
“우리는 인양과 진상조사를 하자는 것인데, 모르겠어요. 여기서 끝내자고 생각을 하는 건지. 그래서 배·보상 얘기만 자꾸 나오는 건지….”
-유가족들과 생존자를 조롱하는 이들에 대해.
“지금 가족들의 정신이 온전하다고 봅니까? 지금도 유가족들은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상태에요. 어떻게 보면 환자들이에요. 몸부림을 치는 거잖아요. 그럼 안아주고 보듬어줘야지 가족들을 질타하는 게 제대로 된 국민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인가요?
진짜 깡패 같고 나쁜 사람들 같아요. 자기가 안 당해보고 겪어보지 못했으니까 그냥 격한 행동만 보고서…. 가족들은 툭 건드리면 그냥 쓰러질 사람들이에요. 죽을 것 같은 사람들이라고요. 이들이 몸부림을 친 건데, 오죽 답답했으면 청와대로 간다고 행진을 했겠어요?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뭐라도 하려고 한 건데, 어떻게 그걸 비난할 수 있나요…”
◆자원봉사 물리치료사 “가족들의 눈물, 그걸 보고 있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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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머리에 큰 키.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유쾌해진다.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을 치료 중인 이재관(31)씨.
싹싹하고 친절한 성격으로 가족들 사이에게 인기가 높다고. 대한물리치료사협회 소속의 이 씨는 재난의료지원단의 일원으로 지난해 7월 진도에 내려왔다. 진도에서의 시간. 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지난해 9월8일 체육관 내에 마련된 물리치료실에서 한창 치료 중인 재관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도에 온 지 얼마나 됐나.
“두 달 정도 된 것 같아요.”
-어떻게 오게 됐나.
“세월호 사고가 일어나자마자 바로 오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여러 가지 여건상 내려올 수 없었어요. 가정적으로나 책임지고 있는 것들이 있다 보니까 바로 못 왔었는데, 결국 지원해서 오게 되었어요.”
-최근 들어 진도에서 변화를 느꼈다면.
“변화는 사실 못 느낍니다.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실종자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보니까 가족들의 마음은 한결같이 힘든 것 같아요. 가족들이 좋아졌다든지 나빠졌다든지 하는 것 보다 처음과 똑같이 계속 슬퍼하고 계신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기억에 남는 일을 한두 가지로 꼽을 수 없어서…. 저희 팀이 진도에 와서 가족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가족들도 치료실에 왔을 때나 그나마 웃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면, ‘우리들이 도움이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실종자 가족들 곁에서 치료를 하다보 면 감정이입이 될 것 같은데.
“두 달 넘게 있다 보니까 한 가족 같다는 마음이 들어요. 미디어를 통해서 느꼈을 때보다 훨씬. 가까이 있다 보니까 같은 마음이 돼버려서 가족들과 같은 심정으로 (실종자를) 기다리게 돼요.”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나.
“가족들의 몸보다 마음을 달래주자는 마음으로 치료하고 있는데, (가족들이) 기분 좋게 웃으시다가도 갑작스럽게 눈물을 흘리실 때 저희들의 한계를 많이 느끼지요. 어떤 분들은 세월호 인양을 두고 경제적인 논리로 따지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에 따뜻한 마음으로 (세월호를)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안 그러면 너무 삭막하잖아요.”
-여러 시각이 존재한다.
“전체 의견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인터넷에서 ‘어쩌면 사람이 이럴 수가 있나’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요. 인간적인 마음으로 이곳을 바라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진도는 본인에게 어떤 곳인가.
“제가 가진 기술을 어떤 사심 없이 그냥 줄 수 있는 곳….”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 개인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나.
“저도 사회 초년생일 때는 여러 높은 꿈들이 있었거든요. 그때 당시는 허세였겠지만. ‘돈을 쫓으며 살지 말자’ 그런 생각들 말이에요. 몇 년 지나니까 제 모습도 기성세대와 다를 바 없었어요. 그러나 (세월호 참사 이후로) 다시 한 번, 인생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정말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고 살았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여기 와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나.
“사람. 저도 사람이고 상대방도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진도에 와보지 않고 미디어를 통해서만 소식을 접하는 분들 중에 세월호특별법에 대해 오해하고 계신 분들이 많아요. 유가족들이 정말 욕심이 있어서 무리한 것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진도에서 지금 정말 근근이 버티고 계신 실종자 가족들에 대해서도 인간적인 마음으로, 애정 어린 관심이 끊어지지 않게끔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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