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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브레이크뉴스 |
"이병철 회장, 치열한 삶을 살았다"
우선 이맹희씨는 아버지가 치열한 삶을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나는 경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일생을 치열하게 살았던 모습으로도 아버지를 퍽 존경한다. 내가 나의 아버지라고 해서 그렇게 존경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이해하리라 믿는다. 항상 일상생활에서도 퍽 존경할 만한 점들이 많았다."면서 "바로 일상생활에서 보여준 것은 정확한 일과이다. 워낙 매일의 일과가 시계바늘 같이 정확한 주변 사람들이 정해진 일과대로 맞추어 드리기만 하면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퇴근 후에 집에 돌아오면 식사를 하고, 저녁 8시면 늘 목욕을 하는데 목욕물의 온도도 일정해야 했다. 1도 정도의 수온 차이를 쉽게 알아차리기 때문에 언제나 목욕물의 온도를 맞추는 것은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는 평생을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맹희씨는 아버지 이병철회장에 대해 "기상시간도 늘 아침 6시였고, 일어나기 전에 가만히 누워서 이것저것 생각을 하곤 했다. 아마 중요한 결정 등은 이 시간에 하는 것 같았다. 퇴근은 저녁 6신데 일을 하다가 시계도 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6시였다. 더러 시간이 틀린다해도 5분 정도의 차이였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늘 밤 10시에서 5분 정도의 오차 밖에 없었다. 평생을 두고 어김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삼성의 인재 제일주의 기업경영의 핵심적 주체
세상에는 이병철 회장이 돈을 아꼈다고 하지만 가까이서 본 이병철회장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맹희씨는 "아버지가 소유에 대한 욕망이 강했던 편은 아니었다. 그저 보고 즐기는 편이었고 단 한가지 상당히 욕심을 내고 소유하기를 원했던 것은 잘 지은 한옥이었는데 결국 노년에는 용인에 있는 한옥에서 소일했다. 한옥 이외에는 큰 소유의 욕심을 가진 것이 없었다."면서 "주변사람들에게 엄하게 대하면서도 아버지가 평생 동안 제일 아꼈던 것을 바로 사람의 능력이었다. 삼성의 인재 제일주의는 평범한 말이 아니라 아버지가 평생 동안 좌우명으로 삼았던 기업경영의 가장 핵심적인 주체였다."라고 회고하고 있다.
이병철회장은 인재선발에 누구보다 큰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이맹희씨는 "면접시험을 볼 때 역술가나 관상가를 옆에 두고 관상과 사주를 보았다는 이야기는 잘못 전해진 것이다. 워낙 험한 시대에 사업을 하다보니 더러 주변 사람들이 아버지의 사주를 여기저기 들고 다녔는지는 모르지만 입사 시험장에 역술가가 있었다는 것은 와전이다."면서 "입사시험에서 사람을 골라 뽑는 것을 중히 여기긴 했다. 그래서 이틀이나 사흘 동안 계속 면접을 보기도 했는데 면접 중간에 아버지가 화장실에라도 가면 다른 면접위원들이 수험생을 자연스럽게 앉혀두고 아버지가 올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아버지는 면접자의 서류에 o표를 하시면 무조건 합격을 시켜야 했고, ×표는 아무리 면접 위원들이 좋게 판단을 해도 탈락시키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 >표로 이 표시는 면접위원들이 알아서 처리하라는 뜻이었다."고, 옆에서 직접 본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
그토록 깐깐한 분에게 고집으로 부딪혔다는 것은?
천하의 이병철 회장도 사람을 뽑는데 대해서만은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이맹희씨는 "과연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을 뽑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버지도 평생동안 어려워했다. '사업의 승패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는데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반반의 확률밖에는 자신이 없다' 아버지는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늘 힘들다면서, 당신께서도 사람을 잘 판단한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 확률이 반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밝힌 적이 있다."라고 공개했다.
이맹희씨는 종국에는 부정(父情)에 맞선 자신이 패배자였음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겉으로는 물 흐르듯이 고요하지만 속으로는 그토록 깐깐한 분에게 아들인 내가 맞서서 고집으로 부딪혔다는 것은 잘잘못을 넘어 송구스러운 일이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