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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의원, 제주에서 DJ 대북정책 이야기 강연!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공동성명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김충열 정치전문기자 | 기사입력 2016/10/27 [13:47]

최경환 국민의당 국회의원(광주 북구을)은 28일 국민의당 제주도당 당사에서 ‘김대중대통령의 대북정책 이야기’라는 주제로 남북화해협력 아카데미 강연을 갖는다.

 

▲ 최경환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은 어려움 속에서도 남북 화해와 평화통일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며“위기를 맞은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서 김대중의 북핵문제 해법에서 그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할 계획이다.     © 김충열 정치전문기자

 

최 의원은 미리 배포한 강연문에서 1994년 1차 북핵위기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일괄타결 방식, 즉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은 북한의 체제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협력을 하는‘주고 받는 협상’방식의 해결을 소개하고, 대결국면을 대화국면으로 바꾸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 북미간의 제네바 협정이 체결된 사실을 강조했다.

 

또한 최 의원은 2006년 북한이 1차 핵실험을 단행한 노무현 대통령 시절 김대중 대통령께서 햇볕정책을 둘러싼 논란을 잠식시키고, 노무현 정부의 대북강경구상을 돌려놓은 사례도 소개했다.

 

최 의원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 시절에는 제1,2차 남북정상회담, 북미회담, 북일회담, 6자회담과 9.19공동성명 등을 통해 북한의 핵개발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권하에서는 대북 강경정책으로 4차례의 핵실험을 초래하고 북한의 핵능력은 커졌다”며 “역사에서 보듯이 대화와 협상의 시기에는 북한의 핵능력은 검증할 수 있었고, 통제할 수 있었다.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공동성명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은 어려움 속에서도 남북 화해와 평화통일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며“위기를 맞은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서 김대중의 북핵문제 해법에서 그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강연할 계획이다.

 

한편 최경환 의원은 지난 9월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박근혜정부의 북핵 정책실패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통일·외교·국방 장관의 사퇴를 촉구한바 있다. 다음은 강연문 전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정책 이야기

-북한핵문제와 김대중의 해법

 

1990년대초 시작된 북한핵문제는 사반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를 위협하는 최대 현안이 되고 있습니다. 2016년 9월 9일 북한은 5차 핵실험을 단행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김 대통령의 해법은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입니다. 제재와 압박이 아닌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했습니다.

 

1차 북핵위기와 김대중의 일괄타결론(1994)

 

1993년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를 탈퇴했습니다. ‘제1차 북핵위기’가 발생합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정계에 은퇴한 후 영국 캠브리지에 있었습니다. 북핵위기를 맞은 김대중 대통령은 영국과 미국에서 일괄타결(Package Deal) 방식의 해결을 주장합니다.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은 북한의 체제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협력을 하는, ‘주고 받는 협상’(Give and Take)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빌 클린턴 정부는 북한을 압박했지만 북한은 미국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결국 미국 펜터곤은 북한의 핵시설로 의심되는 영변지역에 대한 외과적 수술 방식의 정밀공격(Surgical Strike)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윌리엄 페리 미국 국방장관은 금지선(red line)을 넘은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준비에 들어갑니다. 전쟁은 피할 수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펜타곤의 예측은 엄청났습니다.

 

“북한의 특정지역에 대한 정밀공격은 전면전으로 확대된다. 한국에 다시 전쟁이 발발하면 3개월 안에 미군 5만 2000명, 한국군 49만명, 민간인 100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다. 남북 산업시설 또한 대부분 파괴된다.”

 

한편 미국을 방문중인 김대중 대통령은 1994년 5월 12일 워싱턴 내쇼날프레스클럽(NPC)에서 연설을 합니다. 이 연설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일괄타결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안합니다.

“북한과 미국은 두 가지씩을 양보해야 합니다. 북한은 핵에 대한 야심을 포기하고 남쪽의 안보를 보장해야 합니다. 미국은 북한과 외교를 통해 경제협력에 나서고 팀스피릿 훈련을 중단하는 등 북한의 안보를 보장해야 합니다.”

 

동시에 김대중 대통령은 이 연설에서 김일성 주석과 대화가 가능한 인물을 평양에 보낼 것을 권합니다. 그리고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북한특사로 추천합니다.

 

미국 정부는 김대중의 주장을 수용합니다. 전쟁 일보직전에 평양으로 날아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을 만나 회담을 하게 됩니다. 김대중의 제안은 당시 대결국면을 대화국면으로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같은해 12월 북미간에 제네바 협정이 체결되고 제1차 핵위기를 넘기게 됩니다.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에 대한 충언>이란 제목의 김대중의 내쇼날클럽 연설은 이렇게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낸 유명한 연설이 되었습니다.

 

북한의 1차 핵실험과 김대중(2006)

 

2006년 10월 9일 북한은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단행합니다. 당시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는 크게 당황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화만 계속하자고 강조할 수 있는 입지가 없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습니다. 한명숙 총리는 국회 답변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한 마당에 포용정책을 계속해야 하는지 검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핵실험에 혼란에 빠진 노무현 정부는 햇볕정책 수정론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의 흔들리는 태도에 큰 걱정을 했습니다.

 

이때 김대중 대통령은 전남대 강연을 위해 광주의 한 호텔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의 포용정책의 한계를 인정한 발언과 햇볕정책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포용정책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포용정책은 남북의 긴장을 완화시켰지 악화시킨 적이 없는데 어째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죄없는 햇볕정책에 북한의 핵 실험을 갖다 붙이는데 동의할 수 없습니다. 햇볕정책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답했습니다. 그 이후 노무현 정부는 대북강경구상에서 벗어났습니다.

 

이와 함께 김대중 대통령은 수많은 국내외 언론들과 연쇄 인터뷰를 갖고 “북한의 핵실험은 제네바합의 파기와 함께 미국 부시 대통령의 대북핵 정책의 실패를 입증한 것이다. 미국은 대북강경책에서 벗어나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북한과 대화를 시작한 미국은 2007년 2.13합의문을 채택하고 북한은 핵 가동 문서를 미국에 넘겨주고 영변의 냉각탑도 폭파했습니다. 그해 노무현 정부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10.4선언을 발표했습니다.

 

9.19로 돌아가자

 

햇볕정책을 펼친 노무현 정부에서 1차례(2006년) 핵실험이 있었습니다. 반면 강경정책을 펼친 이명박-박근혜 정권하에서는 4차례의 핵실험(2009, 2012, 2016.1, 2016.9)이 있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 시절에는 제1,2차 남북정상회담, 북미회담, 북일회담, 6자회담과 9.19공동성명(2005년) 등을 통해 북한의 핵개발을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강경정책은 오바마 정권의 ‘전략적 인내’와 맞물리면서 4차례의 핵실험을 낳는 결과를 초래했고 북한의 핵능력은 커졌습니다. 남북관계는 전쟁 일보 직전의 상황까지 치닫게 만들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핵 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안을 갖고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실패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제5차 핵실험 이후 미국의 조야에서는 “오바마의 대북정책 ‘전략적 인내’는 실패했다. 제재도 필요하지만 대화와 협상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말레이시아에서는 북-미간 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오로지 제재와 압박만을 강조하며 이런 대화와 협상 노력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북한핵문제의 해법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2005년 남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참여한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공동성명이 해법입니다. 9.19공동성명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북한은 핵무기, 핵계획 폐기, NPT와 IAEA 복귀

둘째, 미국은 북한의 안전을 보장

셋째, 북미관계·북일관계 정상화, 대북 에너지 지원

넷째,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

다섯째,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이행

 

김대중 대통령은 2009년 서거하시기 전 연설에서 “남북관계는 6.15로 돌아가 풀고, 북핵문제는 9.19로 돌아가 풀자”고 주장했습니다. 이 말은 김대중 대통령의 유언입니다.

 

보수진영에서 선제타격론, 핵무장론, 전술핵무기 반입과 같은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길은 민족공멸의 길입니다. 우리가 핵을 가지면 일본도, 대만도 핵을 가지려고 할 것입니다. 동북아를 핵지뢰밭으로 만드는 길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반대하고 있습니다.

 

9.19공동성명에서 길을 찾아야 합니다. 역사에서 보듯이 대화와 협상의 시기에는 북한의 핵능력은 검증할 수 있었고,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핵 폐기 방안과 수순도 합의되었습니다. 반면 압박과 제재의 시기에 핵실험은 잦아졌고 북한의 핵능력은 커졌습니다.

 

성공의 역사와 실패의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끝)

 

최경환 약력

광주 장성 출생, 광주상고, 성균관대 졸업

민주화운동으로 두 차례 구속(81년, 86년)

김대중 정부 청와대 공보비서관

김대중 전직대통령 비서관(마지막비서관)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 겸 대변인

연세대·전남대 객원교수

20대 국회의원(국회 국토교통위원, 남북관계특위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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