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인신공양 대체용으로 쓰인 만두(饅頭)의 탄생은 제갈공명의 아이디어

<호떡>은 중국을 뜻하는 호(胡)자를 붙인 <중국떡>

노병한 사주풍수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05/02 [09:13]

 

▲ 노병한 자연사상칼럼니스트     © 노병한 사주풍수칼럼니스트

[노병한의 음식풍수] 밀가루를 반죽해 얇게 만든 <반죽=><고기·두부·채소 등을 반죽한 소()>를 넣어 빚고 만든 음식을 만두라고 한다. 만두는 삶거나 찌거나 기름에 튀겨 조리하는데 떡국에 넣기도 하고 국을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잔칫상이나 제사상에 주로 쓰여 왔고 지금도 즐겨 먹는 음식 중의 하나다.

 

만두의 비슷한 말에는 교자(餃子) 포자(包子) 등이 있다. 만두는 본래 중국 남만인(南蠻人)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인데 우리나라 조선반도에는 고려시대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두에 대한 기록이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성호 이익(李瀷) 선생의 글에서 엿 보인다.

 

성호 선생의 저서 <성호사설> 4권 만물문(萬物門)<만두·기수·뇌구>라는 제목으로 만두에 대해 소개하는 글이 들어 있다. 중국의 문헌에서 만두(饅頭)<뇌환(牢丸불탁(不飥박탁(餺飥습면(濕麵석류탕(石榴湯병시(餠匙탕병(湯餠)> 등으로 적혀 있다.

 

조선시대 상류층만의 <특별음식·별식>이었던 만두가 요즘처럼 누구나 즐기는 서민음식으로 탈바꿈한 것은 개화가 되고 난 후의 일이라 할 것이다. 만두를 빚어서 장국에 넣고 끓인 것은 만둣국, 쪄서 국물 없이 먹는 것은 찐만두, 차게 식힌 장국에 넣은 것은 편수라고 불린다.

 

재미있는 것은 만두의 서민화가 20세기 초 화교들이 이주해 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1882년 임오군란을 계기로 우리나라에 이주해오기 시작한 화교들은 다양한 직업들에 종사했지만 초창기에 가장 많이 종사했던 업종이 바로 요식업이었다.

 

당시에도 자본을 모아 대규모로 고급음식점을 여는 화교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보편적인 형태는 규모가 작은 호떡집을 여는 정도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화교들의 호떡집은 가격이 저렴하고 한국인들의 입맛에도 맞아 특히 서민들에게 인기가 매우 좋았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당시 호떡집에서 만들어 판 호떡 중에는 만두도 포함되어 있었다. 떡에 중국을 뜻하는 <()>자를 붙인 것이니 <호떡집><중국떡집>이란 의미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화교들의 <떡집=빵집>에서는 <당화소(糖火燒계란빵·깨빵·구운빵·만두·교자·포자> 등을 팔았다고 전해진다.

 

호떡집에서 팔던 빵을 통칭하여 호떡이라 불렀으니 만두도 호떡의 일종이었던 셈이다. 당시 호떡집에서 가장 인기가 있던 호떡은 당화소였다. 당화소는 둥글납작한 밀가루 반죽에 검은 설탕을 넣어서 만든 빵인데 지금은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튀겨내지만 당시는 화덕에서 구워내던 빵이었다고 한다.

 

만두(饅頭)의 역사는 <유비·관우·장비·제갈량>이 활약하던 삼국지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만두는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의 일화에서 유래함을 알 수 있다. 만두는 중국 삼국시대 때 촉한(蜀漢)의 승상으로 역사상 최고의 킹메이커였던 <제갈량(諸葛亮)=제갈공명(諸葛孔明)>의 기지로 탄생해 유래된 음식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만두는 신()의 노여움을 잠잠하게 만들었을 정도로 특별한 맛을 자랑하는 아주 오래된 음식요리다.

 

제갈량이 <()남만(南蠻)=남쪽 오랑캐의 왕인 맹획(孟獲)정벌>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노수(瀘水)라는 강가에서 심한 강풍과 파도로 풍파(風波)가 심해 발이 묶이고 말았다. 사람들은 노수에는 황신(黃神)이라는 수신(水神)이 살면서 주재하고 있는데 그 수신이 노한 것이니 <49명의 사람의 목>을 베어 강에 던져 인신공양(人身供養)을 통해 수신을 위로해 주어야만 <귀신의 음조(陰助)와 수호(守護)>로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다고 제갈공명께 보고하며 권했다.

 

여기서 인신공양(人身供養)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처럼 산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를 일컫는다.

 

하지만 억울하게 사람의 생명을 죽여 수장(水葬)시킬 수 없었던 제갈량은 밀가루로 사람의 머리 모양을 49개를 만들고 그 안에 <((돼지()>의 고기반죽으로 속을 채워 넣어황신(黃神)에게 제물(祭物)로 바치게 하였다. 얼마 후 노수의 강풍과 강물은 잠잠해졌고 제갈량이 이끄는 군사들은 강을 무사히 건넜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남만(南蠻)인들은 제갈량이 바친 <사람머리 모양으로 만든> 음식 때문에 강물의 파도가 잠잠해진 것으로 생각하여 이때부터 <황신(黃神)을 기만()하기 위한 머리()>라는 뜻으로 <만두(饅頭)>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그때부터 사람 머리 모양의 만두가 북방지역으로 전해져 오늘날 중국의 대표 음식 중의 하나가 되었고, 한국과 일본으로 전해져 모두가 즐기는 별미음식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도 중국 북방의 한족들은 춘절(春節)을 맞이하면 섣달 그믐날 밤에 모든 가족들이 모여서 다음날 아침까지 <지아오쯔=교자(餃子)>를 빚는다. 밤을 새워 교자를 빚으면 가족 간의 화목이 이루어지며 복이 온다고 믿는다. 춘절 아침에는 <지아오쯔=교자(餃子)>를 펄펄 끓는 물에 넣고 익혀서 먹는데 이를 다른 말로 <수이지아오=수교(水餃)>라고도 부른다.

 

만두의 탄생과 유래에서 얻은 교훈처럼, <사람머리 모양의 만두 49>를 빚어서 <노수의 풍파를 극복한 제갈량의 기지>와 비교해 보았을 때에 <진도 앞바다에 인명 304명을 수장>시킨 2014416<세월호·침몰사건>과 관련한 사후처리의 우매함을 성찰하거나 그에 적절한 사후 대응이 적절하지 못하였기에 불어 닥친 201611월에 <서울광장·광화문광장의 촛불혁명><박근혜 대통령의 하야촉구·탄핵정국>이라 할 것이다.

 

이어서 2016129<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탄핵결의> 2017310<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 만장일치 인용판결>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교도소행> 등은 국정을 책임지는 정부가 스스로 불러들여 자초(自招)한 업보(業報)라 아니할 수 없다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과장일까? nbh1010@naver.com

 

/노병한:박사/한국미래예측연구소(소장)/노병한박사철학원(원장)/자연사상칼럼니스트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