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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세 바꾸고 운발(運發) 높이는 개운(開運) 비결에 뭐가 있나?❸

청명한 영혼으로 좋은 운을 받을 수 있는 그릇(身)을 준비하는 노력이 필요해

노병한 사주풍수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12/21 [10:01]

 

▲ 노병한 자연사상칼럼니스트     © 노병한 사주풍수칼럼니스트

[노병한의 운세코칭] 자신의 과거 30년 동안 건설업과 부동산업의 외길을 걸어온 A모 사장이 있었다. 그는 복덕방을 운영하며 꾸준히 사서 모은 땅이 한때 100억 원대에 달했던 땅 부자였다. 그러나 잘 나가던 건설사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1995년도에 땅값이 폭등하자 정부가 토지시장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강력한 토지시장 안정화대책으로 A모 사장은 막대한 투자손실을 입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1997년 말에는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운영하던 건설회사의 문을 닫아야 했다. 회사가 망하고 나자 수십억 원의 빚만 남게 되었다. 여기저기 조금씩 사두었던 알토란같던 땅들은 빚을 상환하다보니 남은 게 거의 없었다. 사정이 급하다 보니 대부분 헐값으로 넘길 수밖에 없었던 터다.

 

조금이라도 조급하고 급박한 눈치를 보이면 거저 빼앗아 가려고 달려드는 것이 세상의 인심인 것도 실로 절감했다. 어느 정도 빚을 상환하고 나자 점심 값이 없어서 굶고 다닌 적도 있었다. 견디다 못해 부동산 중개사사무실을 운영하던 친구에게 몸을 의탁하고 2~3년을 버텨도 보았다. 가장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심정으로 1년에 10이상 달리며 전국의 땅을 연구하고 또 연구하는데 열중했다.

 

그는 곤경에 처하면서 그동안 자신에게 쌓였던 거품들을 걷어내려고 화려한 의상을 벗어던지니 비로소 새로운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재기할 방법은 부동산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사실 그 에게는 아직 최후의 보루가 남아있었는데 바로 고향에 사뒀던 1만여 평의 과수원이었다. 빚쟁이들로부터 채무변제 압력에 시달릴 때마다 그냥 팔아버릴까도 여러 번 생각을 했지만 끝까지 남겨놓은 땅이었다.

 

후일 재기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복잡한 계산이 깔렸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사업으로 돈을 벌어 제일 처음 매입했던 땅이라서 애착이 컸을 뿐이었다. 자식으로 치자면 큰아들과 큰딸과 같은 땅이라 차마 팔아넘기지 못했던 것이다.

 

회사가 부도가 난지 5년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전화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그 동안 잊고 지냈던 그 과수원을 팔라는 전화였다. 사정을 알아보니 그 땅과 접해 있는 인근지역이 도시계획변경으로 시가지가 될 날이 멀지 않았다. 평당 10만 원에 매입했던 땅이 55만 원을 호가하고 있었다. 산과 산이 겹쳐지는 곳에 넓게 자리 잡은 평평한 토지이라 용도가 다양하기 때문이었다.

 

고민 끝에 그는 그 땅을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해 보이는 사람에게 평당 45만 원을 받고 넘겼다. 55만 원을 모두 받아낼 수도 있었으나 뒤에 오는 사람도 먹을 것을 남겨두자는 계산이었다. 그리고 땅을 팔아 얻은 차익은 고스란히 다시 다른 지역에 재투자했다. 친구의 중개업소에서 일하면서 봐두었던 땅이었다.

 

수도권광역 교통망계획에 따라 곧 경량전철역사가 들어설 부지였다. 호재가 점차 가시화하면서 땅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현재 주변시세가 평당 70만 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그는 계속 기다릴 생각이다.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면 평당 200만 원을 넘어서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재기의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인내가 현재의 상황을 무작정 견디는 것이라고 한다면 희망은 견디면서도 곤경의 건너편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 말에서 옛사람들의 지혜를 읽게 된다. 수많은 세월을 면면히 겪어오면서 터득한 옛사람들의 유장함을 떠올리게 된다.

 

위쪽에 산()을 상징하는 간()괘가 있고 아래쪽에는 땅()을 상징하는 곤()괘가 상하로 조합되어 있는 상(), 산지박괘(山地剝卦☶☷)를 읽을 때마다 고향의 감나무가 생각난다. 장독대와 우물 옆에 서 있는 큰 감나무다. 무성한 낙엽을 모두 다 떨 구고서 앙상한 가지로만 서있는 초겨울의 감나무는 겨울들판의 전신주와 함께 겨울바람이 가장 먼저 달려드는 곳이기도 하다.

 

겨울의 입구에서 그 앙상한 가지로 서 있는 나무는 비극의 표상이며 절망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 앙상한 가지 끝에 달려 있는 빨간 홍시의 감 1개는 글자 그대로 희망이다. 그것은 따서 먹는 것이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씨를 남기는 것이다.

 

나무의 가지 끝에서 빛나는 가장 크고 탐스런 씨 과실은 그것이 단 한 개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희망이다. 그 속에 박혀 있는 씨는 이듬해 봄에 새싹이 되어 땅을 밟고 일어서기 때문이다. 석과불식이 표상하는 이러한 정경이 더없이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희망의 언어를 이처럼 낭만적 그림으로 갖는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낭만은 흔히 또 하나의 환상이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곤경에서 갖는 우리들의 희망이 단지 소망이나 위안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의미로 이 정경을 읽어야 할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희망은 우리들 스스로가 키워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밭을 일구고 씨를 심는 경작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한 희망을 갖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환상이나 소망이 아닌 진정한 희망을 키워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당면한 과제다.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앙상하게 드러난 나무의 뼈대를 똑바로 보는 일이다. 무성한 잎이 떨어지고 한파 속에 깨를 훌렁 벗고서 팔 벌리고 서있는 나목(裸木)의 뼈대를 직시하는 일이다.

 

숨 가쁘게 달려온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그러한 역사를 살아온 우리들 스스로의 자화상을 대면하는 일이다. 어떻게 하든지 겨울을 넘기고 나면 다시 봄이 오겠지 하는 것은 안이한 답습의 낡은 언어이며 결코 희망의 언어가 아니다. 희망은 새로운 땅에 싹튼다.

 

그러므로 진정한 희망은 새로운 땅을 일구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동토(凍土)에 쟁기를 박아 넣는 견고한 의지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더 이상 패배할 수 없는 천근의 땅에 씨앗을 심는 각오여야 하기 때문이다. 무더위로 그지없이 힘든 여름이었다.

 

이제 바야흐로 가을이다. 그러나 등 뒤에 매서운 겨울한파를 거느리고 있는 금년 가을은 우리에게 시련의 시작을 알리는 파발마일 뿐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가을을 잃어버리고 겨울의 한파를 견뎌야 할지 모른다. 그럴수록 더욱 간절해지는 것이 희망의 언어이므로 희망을 키워내려는 각오가 필요함이다.

 

권력도 마찬가지로 석과불식(碩果不食)의 자세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100의 권력과 권한을 가졌다고 해도 80의 권력과 권한만을 사용하고 남겨두는 자세가 바로 이러한 자세일 것이다.

 

그래야만 그 권력에서 향기가 나는 법이다. 만약에 100의 권력과 권한을 가진 사람이 그 이상으로 권한을 쓰려고 한다면 그때부터 그 권력에서는 썩은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것인데 이는 그 권력의 뿌리가 썩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권력에도 품질이 있음을 느끼게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나 자기에게 주어진 팔자대로 산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기 팔자대로 살 수가 없는 것이고 팔자와 운세를 고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팔자와 운세를 고치는 방법을 알아보자.

 

첫째 방법은 지천명(知天命)하는 것이다. 즉 팔자를 뜯어고치려면 우선 운명을 깨닫는 일부터 먼저 해야 한다. 예컨대 하늘의 명()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자신의 천명(天命)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 어디를 뜯어 고칠지를 판가름할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문제점을 알면 고치는 방법을 모색할 수가 있게 된다.

 

둘째 방법은 적선(積善)을 하는 것이다. 적선은 착한 일을 뜻한다. 예컨대 착한 일도 하지 않으면서 팔자를 고치고 좋은 운을 바라는 자는 도둑놈의 심보다.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이라고 해서 적선을 행한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스러운 일과 크고 많은 홍복이 있다고 했다.

 

이러한 적선을 지속적으로 할 경우에는 그 복이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자손에게까지도 미친다. 이렇게 적선을 많이 한 사람에게는 귀신도 함부로 어쩌지 못하는 법이다. 이렇게 선행에는 조물주인 천지신명의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적선이나 선행이 복이 되려면 반드시 그 수혜를 받는 사람이 적선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게 이루어져야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점을 명심해야만 한다. 이렇게 적선을 통해서 팔자도 고치고 운세도 향상시킬 수가 있음이다.

 

셋째 방법은 명상(冥想)을 하는 것이다. 고요함 속애서 눈을 지그시 감고서 깊이 만물과 사물의 이치를 생각하는 것이 명상이다. 일반적으로 삶()3부작을 명상(冥想), 영상(靈想), 환상(幻想)이라고도 한다. 명상을 통해서 이치를 깨달으면 그 지혜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가 있게 됨이다.

 

넷째 방법은 팔자와 운세를 고치는 방법은 풍수(風水)의 생활화다. 풍수는 음양오행에 기초한 방위와 공간이 가지고 있는 자연력을 활용하는 기술이다. 자연력은 생명의 근원이지만 자연 공간 속에 공짜로 널려있다. 이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활용을 못하는 자에 비해서 훨씬 앞설 것임은 자명한 이치가 아닐까?

 

다섯째 방법은 독서(讀書)를 많이 하는 것이다. 독서의 진정한 의미는 글이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의 내용과 의미를 헤아리거나 정확히 이해하면서 책을 읽는 것을 뜻한다. 독서를 통해서 사물의 이치를 많이 터득하게 된다면 시행착오와 실수할 수 있는 확률을 그만큼 줄이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가 있음이므로 이 또한 운세를 향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들의 운수대통(運數大通)을 소망하고 기리며 살아간다. 눈이 빠지게 마냥 기다린다고 좋은 운()이 그저 오지 않음도 다들 안다. 운수대통을 달라며 하나님, 부처님, 천지신명님, 조상님 전에 기원하며 신앙생활도 한다. 운수대통이 언제 올지 궁금해 철학관, 영매, 무당들을 찾아가 묻기도 한다.

 

운수풀이와 점사를 해주는 그들도 자신의 운수대통을 몰라서 다들 그렁그렁 살아간다. ‘좋은 운나쁜 운은 늘 상대적이다. 즉 자기하기 나름이다. 사람들은 참으로 알고 싶어서 궁금한 것들이 많다. 진행하는 일(), 가족(家族), 미래(未來), 근심 걱정거리 등등.

 

운수 대통해 좋은 운을 받으려면 그 방법이 뭔가를 먼저 알아야만 한다. 첫째 좋은 운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좋은 운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마음, 정신, 영혼이 청명(淸明)치 않으면 좋은 운을 받을 수 없다. 넷째 자기분야에 1인자, 최고실력자, 고수(高手)가 되는 것이 도통(道通)하는 지름길이고 운수대통의 지름길이다. nbh1010@naver.com

 

/노병한:박사/한국미래예측연구소(소장)/노병한박사철학원(원장)/자연사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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