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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면서 화가인 김석현 박사…그림, 잔잔한 감동줘

서양화가 송용 “오로지 그가 선택한 그림의 소재와 그것에 대한 따뜻한 애정 어린 이해 ‘진솔’”

문일석 발행인 | 기사입력 2020/01/17 [16:33]

시인인 김석현(문학박사)은 화가이기도 하다. 시인이자 화가이다. 시적 상상력으로 그림도 그린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화가로 시로 써왔다. 일반인이라면? 두 세계를 습득하기가 힘들다. 그는 "시인이 그린 서양화"라는 시화집도 출간했다. 그의 시-그림 속에는 아픔을 승화시킨 족적이 완연하게 담겨 있다.
 
그는 “사랑 산을 넘으면”이란 시에서 “사랑이 넘쳐서 사랑의 산을 넘으면, 산은 산대로 눈물을 짓는/가을이 오고, 사랑은 사랑대로 눈물을 흘리는 겨울이 오더라.//티 없이 맑은 사랑 하였더라면, 이 같은 고생이 없었으련만/허물어진 세상에 흩어진 꽃잎 같은 사랑의 얼굴 보아라./보고 물어라. 이 삶의 끝자락 몸부림치는 아픔에 또 무엇이/있을 거냐고. 지조는 정조를 낳고 정조가 지조를 받아도./허망한 세월 허망한 시간//그래도 일어서야지. 찬란한 태양이 일어서듯 일어서야지”라고, 시어를 이어갔다.

 

“고백”이란 시에서는 “별 빛 출렁거리는 밤하늘을 바라 봤지요.//별똥별 한 개가 찌익,/하늘에서 산으로 떨어졌어요./밤이었어요. 여름이었고요./별똥을 바라보며 나는 어느 어르신이,/어느 어르신이, 하고 외쳤어요./가을이 오는 밤에, 가을이 오는 밤에/나는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거리를 걸어야했어요.//왜냐고요. 추우니까요./한기가 솔솔 들어오니까요.//떠나야겠어요. 가을 달밤에 떠나야겠어요./허물어진 사랑의 옷자락에 새겨둔/사랑의 씨앗. 이제는 아무것도 아니고,/또 크나큰 사랑의 밑바닥을/스치고 갈 처량한 바람 한줄기./아, 나는 바보던가./당신을 잊어버린 바보였던가”라고, 한탄(?)하고 있다.

 

▲ 시-그림, 두 세계를 섭렵해온 김석현 박사.     ©브레이크뉴스

 

시인-화가인 김석현은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과거를 고백했다.

 

그는 “제 나이 18세, 고등학교 2학년, 어린 동생들과 저를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떠나가시는 어머니의 한 많은 운명(殞命)을 홀로 맞이하며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고향집에 머물러 있다가, 고학(苦學)을 해서라도 법을 공부해서 검판사가 되어서 금의환향(錦衣還鄕)하여 어려운 집안 형편을 도와드리자는 청운의 꿈을 품고 1966년 어느 가을날, 완행열차를 12시간 타고 서울역에 내렸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서울역 광장은 참으로 춥고 쓸쓸했다. 100일 동안 입시공부를 했으나, 여러 가지 여건상 법 공부를 뒤로 미루고, 서울교대에 진학 초등학교 교단에 섰던 이 사람은 스물세 살, 청춘의 나이에 어려운 병마-법정전염병 장질부사-에 걸려 병마에 시달리다 살아나, 재생의 길을 걸어가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을 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제자들을 가르치며 아름다운 시를 지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드리는 시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낮에는 사랑하는 제자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이 대학 저 대학원 찾아가 주경야독(晝耕夜讀)을 시작했다”면서 “지명(知命)의 나이, 오십대 초반에 또다시 찾아온 병마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뇌에 생긴 종양이 커질 대로 커졌다가 스스로 폭발하여 산산조각 나버렸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어려운 뇌수술을 받은 후 기적 같이 다시 살아났다. 수술로 인하여 잃어버린 왼쪽 눈 시력(視力)과 후각(嗅覺), 비틀거리는 몸과 마음을 시심(詩心)으로 달래가며, 그 어떤 계기(契機)에 의해, 늦은 감은 있었으나 박사학위 과정에 도전하면서, 그림에 입문(入門)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초등학교 다니던 어린 시절, 선생님 계시는 교무실 벽에 걸린, 어느 분이 그렸는지 알 수 없는 어린이들을 품에 안은, 근대교육의 아버지 페스탈로치 선생님을 그린 먼지 묻은 그림과  도시에서 공부하고 귀향한 사촌 형님의 방에 걸린, 어디선가 울려오는 종소리를 듣고 일하다 멈추고, 기도하는 밀레의 그림, 저녁 종. 그리고 박물관 미술관을 견학하며 보았던 그림들이 늦게 그림의 세계에 입문한 이 사람의 흔들리는 무의식, 원형(原型)을 붙잡아 잠재력을 찾아 주었다”고 덧붙였다.

 

그의 고백대로라면, 그는 극보이 힘든 인간적인 아픔을 수용한 이후, 미술-예술세계에 입문한 셈이다.

 

▲ 김석현 박사의 작품.    ©브레이크뉴스

▲ 김석현 박사의 작품.      ©브레이크뉴스

▲ 김석현 박사의 작품.     ©브레이크뉴스

▲ 김석현 박사의 작품.      ©브레이크뉴스

 

서양화가 송용은 그에 대한 그림 평에서 “나 시를 쓰며 살아온 시인이 그린 그림이 나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며 관심을 갖게 한 것은 오로지 그가 선택한 그림의 소재와 그것에 대한 따뜻한 애정 어린 이해와 진솔함 때문이다. 수많은 자연과 우리 인간의 일상 화소(畵素) 중, 김 시인이 선택한 화소는 특이하고 남달랐다. 그가 그려 낸 그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적처럼 살아온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작품 안에, 그가 써온 시의 이미지, 심상처럼 하나하나 담겨있음을 느낄 수 있다”고 전제하고 “김 시인은 늦게 그림에 입문한, 불운한 운명의 길목에 자주 섰던 사람이지만, 그의 말처럼 현실의 고통(苦痛)을 극복하고 기적 같은 작품을 쏟아내는, 종심(從心)의 나이에 다가가면서도, 붓을 쥐고 색의 밀도(密度)를 높여가는 늦깎이이지만, 문학박사라는 학문의 끝점에 도달한, 대기만성(大器晩成)시인이며 화가인, 만인의 귀감(龜鑑)이 될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운, 나의 고교 후배 김 시인은 참 행운아”라고 평했다.

 

▲ 김석현 박사의 작품.      ©브레이크뉴스

▲ 김석현 박사의 작품.     ©브레이크뉴스

▲ 김석현 박사의 작품.       ©브레이크뉴스

▲ 김석현 박사의 작품.       ©브레이크뉴스

 

쉬지 않고, 줄기차게 화업(畫業)-시작(詩作)에 정진하고 있는 김석현 작가-박사. 폭넓은 그의 예술세계가 모든 이의 아픔을 껴안는 듯하다. moonilsuk@naver.com

 

*필자/문일석. 시인.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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