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결손기업 통한 우회증여로 880억 절세
한화·한국철강 등도 약세장 틈타 지분 증여
이례적인 새해 첫날 주식 폭락, 17년만의 최대 낙폭
증시 폭락·기업 자본잠식도 재벌에게는 '좋은 기회'
새해 벽두부터 재벌그룹의 편법 상속 의혹이 떠들썩하게 불거져 나와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이 계열 내 결손 기업들에 자신의 보유지분을 무상 증여한 것이 자녀들에 대한 우회증여를 목적으로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사실 신격호 회장의 지분 무상증여 이전에 앞서 지난 연말에는 여러 재벌그룹들의 최대주주 보유지분에 대한 증여가 봇물을 이뤄왔는데, 이러한 증여 러시의 배경에 증시약세 지속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는 해석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런 증여시점 선택에 가장 중요한 변수는 '세금을 얼마나 덜 낼 수 있나'하는 것으로, 과거 재벌들이 자녀 소유 기업에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가치를 향상시키거나, 회사 지분을 헐값에 양도하는 방식을 벗어나 또 하나의 '절세'(탈세?) 방법이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시사주간지 <사건의내막>은 재벌들의 지분증여 이면에 가려진 또 다른 얼굴을 들여다봤다.
지난 연말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이 소유하고 있던 계열사 지분 1948억원어치를 결손 상태에 빠져있는 다른 계열사에 무상증여한 것에 대해 여러 언론들이 자녀들에 대한 '우회 증여'를 위한 '편법' 아니냐는 의혹을 쏟아내고 있다.
롯데는 이번 무상증여를 통해 무려 880억원에 달하는 증여세를 절약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분 무상증여를 받은 회사들이 재무건전성 회복을 통해 주식가치가 상승할 경우 이 회사들의 지분을 대량 보유하고 있는 신 회장의 자녀들이 가장 많은 이득을 얻을 전망이다.
롯데그룹의 의혹에 싸인 무상증여 파문과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재벌 회장들의 자녀에 대한 보유지분 증여는 최근 한달 사이 급증하고 있다.
갑자기 지분 증여가 늘어난 배경에는 주가의 가파른 상승세가 꺾이고 당분간 횡보할 것이라는 증시전망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으로, 증시가 폭락하고 기업이 손해를 봐서 결손기업이 되더라도 재벌들에게는 오히려 '좋은 기회'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재벌들이 증시가 약세를 보일 때 보유지분을 넘기는 이유는 역시 세금 절약에 있다. 증여일 전후 2개월 간의 평균주가가 증여세 계산의 기준가액이 되는데, 10년 간 증여재산 가액이 30억원이 넘을 경우 50% 세율을 적용받기 때문에 주가는 중요한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눈에 띄는 최근의 주식 증여 사례는 지난해 12월17일 증여가 이뤄진 한화그룹과 한국철강의 경우로, 특히 한국철강은 장세돈 회장이 아들인 장세홍 전무에게 11.67%, 총 1078억원어치를 증여함으로써 최대주주가 장 전무(15.01%)로 바뀌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지난해 보복폭행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던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수개월에 걸친 일본 장기요양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김동관·김동원·김동선 세 아들에게 총 300만주, 2022억여원에 달하는 ㈜한화 주식을 증여했다.
재계에서는 김승연 회장의 지분 증여에 대해 그룹의 중심이 ㈜한화라는 것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지주회사체제 전환 등 그룹의 향후 경영 방향을 보여주며, 특히 한화그룹 차원에서 ㈜한화의 현재 주가가 바닥권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증여세 산정은 증여일 전후 2개월의 평균주가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해당 기업들이 연말연시 주가가 급등하거나 상승세를 보일 것이라고 판단했다면 시기 조정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일반적으로 새 정부가 출범하는 새해 첫 거래일에는 이른바 '희망 매물'이 쏟아지면서 주가가 오르는 것이 지금까지의 증시 행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택일'이 어찌보면 무모한 것일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올해 증시는 새해 첫 거래일부터 17년 만의 사상 최대 낙폭을 기록하면서 증여를 단행한 기업들의 증여세 걱정을 덜어주었고,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 기업들이 최소한 연초까지는 증시전망이 밝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역설도 가능해 보인다.
2003년 이후 '5년 주기' 깨져
한편 우리투자증권 강현철 애널리스트는 최근 "2003년 이후 대통령 선거와 증시의 변화를 연결짓는 이른바 5년 주기설 트렌드는 깨졌다"며, "대통령 취임 1∼2년차에 주식시장이 오를 것이라는 논리는 달라진 경기상황이나 경기주기를 감안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의 gdp 성장률과 코스피의 흐름을 비교하면, 1988년 이후 경제성장률이 대통령 취임 4∼5년차에는 하락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취임 1∼2년차에는 반대로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주가도 비슷한 궤적을 그린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를 시장에서는 5년 주기설로 부르며 대통령 취임과 관련된 이례적 현상 중 하나로 받아들여 왔다.
강 애널리스트는 "실제 대통령 취임 이후 100일 이내에 대규모의 경기부양책이 시행되었으며, 증시에서도 관련 테마주들이 큰 폭의 주가 움직임을 보인 적이 많았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3대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6월 자본이동자유화 조치를, 14대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7월 신경제 5개년 계획, 15대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5월 외국인주식투자한도 철폐를 단행했다.
강 애널리스트는 "5년 단임제가 시행된 13대에서 15대(1988∼2003년 2월)까지는 약 5년을 주기로 kospi와 실물경기 흐름이 상승과 하락을 반복했으며 특히, 임기 2년차에 해당되는 시점에서 공교롭게도 주가가 고점을 형성하는 모습을 보여왔다"고 분석했다.
강 애널리스트는 "다만 대선 자체는 경기나 주가흐름과 무관하다는 점과 대통령 취임 2년차에 주가가 급등한다는 이른바 5년 주기설도 2003년부터는 기존의 트렌드가 바뀌었다는 점에서 취임 2년차에 주가가 무조건 급등할 것이라는 '상상'은 버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 50개월을 주기로 사이클이 형성되었던 한국의 경기주기(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와 맞물린 우연한 현상에 불과하며, 2003년부터는 경기주기가 26개월 정도로 짧아지면서 사이클이 잘 맞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강 애널리스트의 분석.
강 애널리스트는 대외 환경도 이전과 달라 과거에는 취임초기 해외경기도 바닥권을 지나면서 국내경기 및 증시에 우호적 환경을 제공했으나, 최근에는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미국 및 oecd 선행지수가 하락세를 이어가는 등 대외경기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은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강 애널리스트의 분석은 한 가지 주요 변수를 '일부러' 빠뜨린 것으로 보인다. 2003년 이후 5년 주기설이 깨진 가장 큰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이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강 애널리스트는 보고서에서 노 대통령이 "2003년 6월 추경 및 경기활성화 조치"를 했다고 지적했지만, 추가경정 예산 편성과 경기 활성화 조치는 정부가 매년 하는 것으로, 이를 인위적인 경기부양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도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있었던 '2008년 신년 인사회'에서 비슷한 지적을 했다. "새로운 정부에게 많은 국민들이 경제에 기적을 만들어 달라고 한다"며 "지나친 기대는 정부를 맡은 사람으로 하여금 무리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이날 노 대통령은 "신경제 100일 뜨거운 맛을 봤고 90년 4·4경제조치도 뜨거운 맛을 봤고 결국 이것이 축적되고 축적돼서 imf 외환위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됐다"며, 인위적 경기부양책이 오히려 역효과가 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경제가 진짜 특효처방만 하면 쑥 크는 것이냐"며, "앞으로 5년 간 우리는 큰 실험을 하게 될 것이다. 토목공사만 큰 것 한 건 하면 우리 경제가 사는 것인지 확인해야 하고 실험해야 될 일"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