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두산그룹 용오·용성형제, 화해 이뤄지나?

[재계X파일] ‘형제의 난’ 이후 모처럼 만의 상봉 효과는‥

김영수 기자 | 기사입력 2008/09/24 [16:11]
 
▲ 지난 16일 두산그룹 명계춘 여사의 타계로 두산 총수 일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박용오 전 회장과 박용성 회장도 함께 자리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은 두산그룹 6형제 오른쪽붙 박용곤, 박용오, 박용성, 박용현, 박용만, 박용욱.   ©브레이크뉴스

 
지난 16일 두산그룹 고 박두병 초대회장의 부인인 명계춘(明桂春, 95)여사가 작고했다. 두산그룹의 정신적 지주로 알려진 그녀의 타계 소식에 두산 오너 일가가 총출동했다. 특히 박용오(성지건설 회장), 박용성(두산중공업 회장), 박용만 회장(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이 한자리에 같이 해 눈길을 끌었다. ‘형제의 난’이후 서로간의 접촉이 없었던 이들의 만남에 재계는 극적 화해무드 조성인지에 대해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한편 두산 그룹의 후계구도는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명계춘 여사의 타계로 서울대학병원 빈소에 함께한 두산 총수 일가 6형제


 
지난 16일 두산그룹의 ‘정신적 지주’였던 명계춘 여사의 타계했다. 이 소식에 정재계 인사들은 애도를 표하며 조문행렬을 잇고 있다. 이에 명 여사의 빈소에는 조문객 맞이를 위해 두산 오너일가가 총출동했다. 두산그룹 6형제가 나란히 조문객 맞이에 한창이었던 것. 여기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박용오, 박용성 회장이 한 자리에 한 것이었다. 이 두 사람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두산그룹 ‘형제의 난’의 주연들이기 때문이다.

상처뿐인 ‘형제의 난’

지난 2005년 두산그룹 회장직을 놓고 형제간에 비극이 시작된다. 당시 두산그룹 박용오 회장은 큰 형인 박용곤 명예회장 등의 종용을 받고 그룹 회장직을 박용성 회장에게 넘길 것을 요구받았다. 회장직 사퇴 후 경영권은 잃게 된 박 전회장은 두산산업개발(현 두산건설)의 계열분리를 요구했지만 두산 오너일가가 이를 거부하자 박 전 회장은 두산 비자금 실체를 폭로하면서 ‘형제의 난’이 시작됐다.

시작부터 오너의 기업소유라는 한국의 재벌집단의 부패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었지만 ‘형제의 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박용오 회장이 실각에 이어 두산산업개발 그룹 분리 거절에 앙심을 품고 두산 비자금을 폭로하자 박용성 회장을 비롯한 두산그룹은 강력한 대응을 했다. 폭로 당일 박용오 전 회장을 가문에서 영구제명했고 다음날 에는 두산그룹 및 두산산업개발 회장직을 박탈했다. 또 박 전 회장의 차남인 중원씨를 두산산업개발 상무직에서 해임시켰다.

박용성 전 회장은 다음날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두산산업개발 경영권을 탈취하려다 실패하자 허위 사실을 투서했다”고 주장했다.

두산그룹 오너일가의 비자금 조성 문제로 검찰이 조사에 착수하자 사태는 진정국면으로 접어드는 듯 보였다. 그런데 돌연 두산산업개발이 1995년~2001년까지 약 2797억원을 분식회계했다고 자진 공시하면서 다시 불걸이 거세게 타 올랐다. 당시 업계에서는 박용성 전 회장의 고도의 전술이 아니냐는 견해가 나왔다. 분식회계 시점이 박용오 전 회장의 재임기간과 겹치고 또 자진 공시 시점과 맞춰 박용오 라인 인맥 정리도 같이 했기 때문이었다. 실질적으로 2라운드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형제의 난’ 이후 함께한 용오·용성형제 이례적인 모습 극적화해를 이뤄지나



이러한 예상을 맞추기라도 한 듯 박용오 전 회장은 다시 두산산업개발이 박용성 회장 등 오너 일가가 유상증자에 참여하기 위해 빌린 대출금 5년치 이자 138억원을 회사돈으로 대납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연이은 폭로전으로 두산그룹은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 당시 두산그룹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이 나란히 사퇴를 하게 되고 박용오, 박용성, 박용만, 박용욱 4명은 집행유예를 선고받게 된다. 그리고 ‘형제의 난’을 촉발시켰던 두산산업개발은 분식회계 자진신고에 대해 과징금 최고 한도인 20억원을 부과받았다.

무엇보다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수천억원대의 분식회계와 비자금 조성이 사실로 밝혀졌고 검찰의 조사로 기타 오너 일가의 부정도 드러나게 됐다. 지난 1991년 페놀사태에 뒤이어 ‘형제의 난’으로 두산그룹은 이미지는 추락했고 총수 일가 동반 퇴진이라는 불명예를 다시금 맞게 된 것이다.

‘형제의 화해’ 가능할까?

비자금 조성과 분식회계로 인한 공판 자리에서 눈길조차 피하던 박용오, 박용성 회장이 모친상을 계기로 화해가 가능할지에 대한 추측이 일고 있다. 특히 올 초 박용오 전 회장이 성지건설 인수를 통해 재계로 돌아오면서 화해 가능성이 조금씩 점쳐지고 있었다. 성지건설인수가 박 전 회장의 경영권 획득보다는 아들들인 경원씨와 중원씨의 재계 복귀 발판이기 때문이다. 즉 성지건설을 통해 아들들의 경영능력을 보이며 멀어졌던 두산일가와의 관계를 회복해 향후 경원씨와 중원씨가 두산그룹 경영에 참여하게 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러한 예측이 한층 힘이 실리는 것은 총수일가 방계의 행동이 기업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박용오 전 회장의 차남인 중원씨가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수사를 받았다. 지금은 대우조선 인수를 포기한 두산이지만 당시에 두산그룹은 중원씨의 행동이 기업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쳐 인수전에 피해를 볼까봐 난감해했었다. 특히 중원씨는 두산 오너 일가라는 이유 때문에 ‘얼굴 마담’으로 뉴월코프 대표에 영입됐다고 한다.
 

두산그룹과 오너 일가의 도덕성 회복측면에서 ‘화해’ 수순으로 전망하기도



▲ 성지건설 인수로 재계에 복귀한 박용오 회장은 두 아들들의 재계 발판이 되어줄 심산으로 보인다. 두 아들의 두산그룹 복귀를 위해 실제로 머리를 숙이며 화해의 제스쳐를 취할지 재계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 브레이크뉴스
두산그룹의 입장에서 방계이긴 하나 총수 일가이고 이들의 행동이 기업이미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밖(뉴월코프 등)에서 있게하기 보다는 안(두산그룹 및 계열사)에서 활동하게 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들의 소란이 두산그룹의 발목을 잡을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또 박용오 전 회장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화해 모드 조성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경원씨와 중원씨를 제외한 두산가 4세들은 두산그룹이 지주사 체제 전환 선언 이후 주식 대박을 경험했고 경영일선에서 전진 배치가 가속화 되고 있다. 이어서 5세들에게 주식 지분을 늘리하고 있다. ‘일가의 결속성을 위해 그리고 그룹에 대한 책임을 어릴 때부터 심어준다’는 원대한 계획이지만 이 계획속에 박용오 전 회장의 두 아들은 없다. 이러한 소외상황 타개를 원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화해’가 모두에게 이롭다

일련의 과정에서 박용오, 박용성 회장의 화해모드는 자연스러운 모양새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형제의 난’으로 대표되는 두산그룹의 도덕성 문제를 갈무리하기 위해서라도 화해는 필연적인 방법일지도 모른다. 현재 두산그룹은 굵직한 m&a를 통해 중공업 주력그룹으로써 덩치와 입지를 키워가고 있지만 여전히 ‘형제의 난’이 회자되며 오너 일가의 도덕성을 문제삼고 있다. 두산그룹 회장직이 공석인 것만 봐도 도덕성 결여 문제를 쉽사리  떨치기는 어렵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또 실질적인 두산그룹 회장으로 여겨지는 박용성 회장이 중앙대학교 인수 후에 이사장에 취임으로 이미지 회복에 나선 것만 봐도 도덕성 문제는 두산그룹의 주요 사안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시점에 형(박용오 전회장)과 아우(박용성 전회장)의 극적 화해는 두산의 새로운 지평을 써내려 갈 수 있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 지난 페놀사태 때 두산 총수 일가가 일제히 퇴진하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사태를 극복하려한 사례를 봐도 그렇다.

후계자 문제부터 해결돼야

그러나 실제로 박용오·박용성 두 사람의 화해는 가야할 길이 멀어 보인다. 우선 두 사람 사이의 앙금이 다 가라앉았을지가 의문이다. 박용성 전 회장의 입장에서 보면 경영권 승계를 받자마자 박용오 전 회장의 폭로로 회장직에서 낙마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도 전에 비리에 연루되어 지금도 공식적인 두산그룹 회장직을 맡지 못하고 있다. 박용오 전 회장도 경영권 승계에서도 밀렸고 그토록 원하던 두산산업개발마저 얻지 못하게 한 박용성 전 회장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현시점에서 두 사람의 화해가 가능하지 않은 것은 아직도 확실히 정해지지 않은 후계자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포스트 박용성’ 누가될까? 차기 두산그룹 회장 선정이 ‘화해’보다 앞설 전망



▲ 차기 두산그룹 회장의 강력한 후보인 박용만 회장은 크고 작은 인수합병을 성공시키며 두산인프라코어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지금껏 두산은 창업 3세대들이 돌아가며 회장직을 맡고 있다. 지금은 그룹 회장직이 공석이기는 하지만 3남인 박용성 회장이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공석인 상태로 그룹 회장직을 그대로 둘 수 없을뿐더러 박용성 회장의 나이가 올해로 69세이고 전 회장들이 60대에 회장직을 물려줬다는 것을 볼 때 후계자 선택의 시간이 임박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가장 강력한 후보는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이다. 4남인 박용현 두산건설 회장이 있지만 그는 서울대 병원장 출신으로 기업의 경영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그룹을 총괄하는 그룹회장직을 맡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다.

그러자 자연히 5남인 박용만 회장이 부상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을 잇따라 인수하는 데 공을 세워 그룹 총수에 가장 근접해 있다. 두산그룹의 m&a는 박 회장의 의중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얘기까지 돈다.
 
일례로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대한 이야기도 대부분 박 회장의 입에서 시작됐다. 더욱이 지난해 7월에는 해외기업 인수규모로는 사상 최대인 50억달러에 미국 소형건설장비 회사 밥캣 등 3개 사업부분 인수를 성공시키며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하기까지 했다. 그룹을 이끌만한 포석은 다 깔아놓은 셈이다. 그러나 아직 단언하기는 이르다.

두산 오너일가 4세인 박정원 두산그룹 부회장이 있기 때문. 박 부회장에게 그룹 2인자격인두산그룹 부회장을 맡긴 것은 ‘포스트 박용성’을 겨냥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박 부회장은 숙부인 박용만 회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린데다 사내외에 거론될 만한 특별한 경영성과가 없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그러나 최대 강점은 그가 장자라는 데 있다. ‘장자 승계의 원칙’이 엄격히 지켜지는 우리 재벌들의 풍속을 봤을 때 박 부회장이 차기 회장직을 맡는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건 없다. 특히 총수 가문의 좌장이며 아버지인 박용곤 명예회장이 박 부회장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줄 것이기에 차기 회장직은 누가 될지 속단하기 어렵다.

또 올 초에 이뤄진 두산 4세들의 경영정면 배치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대목이다. 박용성 회장의 장남인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전무도 지금 두산의 실세이며 아버지인 박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차기 회장직을 놓고 이해관계와 맞물려 물밑 암투마저 벌어질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용성 회장이 화해의 모드를 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후계구도가 가려진 이후라도 늦지 않는다고 판단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영권 문제가 비화 돼 ‘형제의 난’을 촉발시켰던 박용오 회장과의 섣부른 화해가 이후 있을 후계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찌됐던 장기적으로 볼 때 두산그룹에게 박용오 회장과 박용성 회장의 극적화해는 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도덕성 문제를 탈출하며 방계의 소란이 그룹 이미지를 실추시킬 가능성도 차단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명계춘 여사의 타계로 만남을 가진 두 사람. 이 만남이 두산그룹과 오너 일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취재 / 김영수 기자  minikys@lycos,co,kr
 
▲ 두산인프라코어가 참석한 세계 최대 공작기계 전시회인 imts 2008현장

 

두산가 명계춘 여사 별세
 
정재계 인사들의 문상 발길 이어져

 
▲ 경영권 문제로 시작된 ‘형제의 난’으로 두산 총수 일가는 ‘상처’만이 남았다. 특히 도덕성 문제는 계속 두산그룹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사진은 고 명계춘 여사.
고(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부인인 명계춘 여사가 16일 오전 4시 40분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16일 두산그룹에 따르면 1913년 서울 출신으로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지난 1931년 고 박두병 회장과 백년가약을 맺은 명 여사는 6남 1녀를 기르며 자상한 어머니로 일생을 살아왔다. 명 여사는 18세에 집안의 맏며느리가 되어 평생을 대가족과 직원들을 뒷바라지해 왔으며, 1973년 박두병 회장이 타계한 뒤부터는 두산가의 '정신적 지주'로서 가풍인 근검절약과 인화의 정신을 아들과 며느리들에게 전수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명계춘(明桂春, 95) 고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 부인은 강한 정신력과 포용력을 갖춘 현모양처의 표본이었으며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대가족과 직원들을 뒷바라지를 해 왔다.

그 동안 명 여사는 매년 1월 자신의 생일에 조촐한 축하연을 갖고 또 수시로 가족모임을 통해 인화의 정신을 몸소 보이는 등 집안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으며, 두산이 1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창업정신을 지키며 꾸준히 제 갈 길을 걸어가는 데 뿌리가 되어 왔다고 두산그룹은 평가했다.

한편 명계춘 여사의 타계 소식에 각계 각층의 인사들이 조문의 발길을 잇고 있다.

재계에서는 16일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을 시작으로 구본무 lg그룹 회장, 이구택 포스코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자홍 ls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박승복 샘표식품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등이 빈소를 찾았다. 특히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뛰어든 기업의 회장들은 기자들의 질문에 ‘조용한’ 대처로 일관했다고 전해진다.

또 고건 이수성 전 국무총리,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 정대철 민주당 상임고문, 김진선 강원지사, 맹형규 대통령실 정무수석비서관, 박형준 대통령실 홍보기획관 등 정계 및 관계 인사들도 문상했다.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