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테르 효과’는 정말 있는 것일까. 탤런트 고 안재환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사 방법으로 자살한 사람들이 잇따라 발생, 충격을 주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최근 자살한 3명의 사람이 모두 고 안재환과 같은 방법인 연탄불 질식사로 사망했다는 점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유명인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해 유사한 방법으로 자살하는 ‘베르테르 효과’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주간현대>는 고 안재환 자살 ‘베르테르 효과’를 계기로 유명인들의 자살과 사회 현상인 ‘베르테르 효과’에 대해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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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11월 개그우먼 정선희와 결혼식을 올리고 각종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해 행복한 모습을 자랑하던 탤런트 안재환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고 안재환의 죽음 당시 많은 사회학자들은 자신이 모델로 삼거나 존경하던 인물 또는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유명인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 자살을 시도하는 ‘베르테르 효과’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안타깝게도 이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울산, 부산, 강원도 등지에서 고 안재환의 자살 이후 모방 자살로 추정되는 자살 사건이 보고된 것.
‘베르테르 효과’ 벌써?
지난 9월12일 오후 5시20분께 강원 양양군 서면 가리피리 인근 44번 국도 옆 공터에서 김아무개(65)가 자신의 스타렉스 승합차 앞 좌석에서 숨져 있는 것을 주민 박아무개(65)가 발견했다.
박씨가 숨진 차량 뒷좌석에서는 소주병과 연탄난로가 발견됐으며, 경찰은 함께 발견된 유서의 내용 등으로 미뤄 박씨가 연탄을 피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루 뒤인 9월13일에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연탄 자살을 해 충격을 줬다.
부산에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이아무개(18) 군은 지난 9월13일 오후 1시50분께 부산 동래구 온천동 소재 한 호텔 객실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 군의 시신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호텔 직원 장아무개(여·44). 발견 당시 이 군은 연탄 4장에 불을 피우고 침대에 누워 숨져 있는 채 발견됐다.
장씨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현장에서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세요”라는 메모가 발견된 점과 이 군이 지난해부터 우울증세를 보였다는 유족들의 말에 따라 이 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어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에도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9월14일 오후 5시께 울산시 북구 매곡동 모 아파트 공사현정 인근에서 김아무개(여·32)가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김씨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인근 아파트 주민 김아무개(35). 김씨는 “차 옆에 연탄이 떨어져 있어 안을 살펴보니 사람이 고개를 젖히고 다리는 조수석 쪽으로 한 채 누워 있었다”면서 “이틀째 똑같은 상태라 의심스러워서 확인해 봤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숨진 김씨의 승용차 안에는 연탄불을 피우는 데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화덕과 연탄재가 남아있었으며 “학원 운영이 잘 안돼 고민이 많았다.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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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안재환 사망 이후 비슷한 방법으로 자살 선택 사회적 충격 |
같은 날 오후 강원도에서도 모방 자살 사건이 벌어졌다. 이날 오후 2시 25분께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천진해수욕장 인근 모텔 객실에서 김아무개(36)가 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가 투숙했던 객실에서도 피우다 남은 연탄과 화덕이 발견됐다.
경찰은 지난 9월9일 집을 나선 김씨가 이날 오전게 “나 먼저 갈께”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아내에게 전송한 점으로 미뤄 객실에서 연탄을 피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연예인 자살 등의 영향으로 자살 충동을 느낄 경우,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주변 사람이나 전문가에게 자신의 문제를 토로하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유명인의 죽음과 모방 자살
‘베르테르 효과’는 1974년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빗 필립스가 처음 언급한 것으로 괴테의 소설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기인했다. 소설의 주인공 베르테르가 권총으로 자살하자 유럽에서 모방 자살이 유행처럼 번져 나갔던 것.
데이빗 필립스는 1947년부터 1968년까지 미국 유명인의 자살 사건을 조사한 결과 언론에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후 2개월간 자살률이 급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런 사실을 확인한 데이빗 필립스는 이후 자신이 모델로 삼거나 존경하던 인물 또는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유명인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 해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은 ‘베르테르 효과’라고 지칭했다.
실제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1977년 미국에서 록스타 앨비스 프레슬 리가 사망하자 그를 추모하는 동조 자살 성행했고, 1986년 일본에서 10대들의 우상이었던 오카다 유키코가 실연을 비관해 투신자살 하자 2주 동안 청소년 31명이 동조 자살했다. 2003년 홍콩 배우 장궈룽이 자살하자 같은 장소에서 목숨을 끊는 팬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자신보다 처지가 나아보이는 사회적 모델의 죽음은 단순한 자살 충동을 ‘실천’으로 바꿀 수 있음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국내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지난 2007년 1월 가수 유니, 2월 정다빈, 2005년 2월 이은주 사망 이후 자살 사건이 증가한 것.
특히 2005년 고 이은주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 후 모방 자살이 급증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은 고 이은주 사망 이후 관내 1일 평균 자살자가 0.94명에서 2.13명으로 2.5배 늘었다고 밝혔다.
자세히 살펴보면 고 이은주 자살 전 53일 동안에는 45명의 자살자가 발생한데 반해 고 이은주 자살 후에는 23일 자살인원이 49명에 이른다.
또 이은주의 사망은 단순한 수치 증가뿐만 아니라 자살하는 연령층에도 뚜렷한 변화를 가져왔다.
고 이은주 사건 이후 전체 자살 인원 가운데 청장년층 점유비가 증가했고 자살자 평균연령이 54.8세에서 44.9세로 크게 줄었다. 특히 20~30대 점유비가 고 이은주 사건 전 28.8%에서 사건 이후 49%로 크게 늘었다.
자살방식 또한 고 이은주처럼 목을 매는 형태가 79.6%로 이은주 사망 전 53.3%보다 늘어났다. 특히 고 이은주처럼 20대이면서 목을 매 자살한 사람은 종전에는 7명 중 3명이었으나 이후에는 15명 중 14명으로 압도적으로 늘어났다.
‘자살 바이러스’ 백신 절실

그런가 하면 올해 초 고려대 보건대학원 석사논문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논문의 주인공은 고려대 안암병원 유정화 간호사로 그는 ‘한국에서 베르테르 효과에 대한 연구’를 통해 사회 저명인사가 자살한 뒤 모방 자살하는 ‘베르테르 효과’를 통계적으로 확인했다.
유씨는 1994년부터 2005년까지 12년간 국내 유명인의 자살 후 국민자살 증가율을 비교·분석 한 결과 유명인이 사망하면 월 평균 137명이 더 자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유씨의 연구에 따르면 12년간 유명인의 자살을 분석한 결과 영화배우 이은주의 자살 이후 모방 자살이 가장 많았다.
또 2003년 8월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자살 이후 안상영 전 부산시장(2004년 2월5일 자살),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3월12일 자살), 박태영 전 전남지사(4월30일 자살) 등 유명 인사들의 자살이 잇따랐다.
이런 유명인사의 자살이 사회 전반의 자살을 부추겼다는 설명이다. 안 전 시장이 자살한 날부터 박 전 전남지사가 사망한 후 1개월까지 총 4095명이 자살해 평상시보다 751명이나 늘었다.
또 5일 간격으로 자살한 가수 서지원(1996년 1월1일 자살)과 가수 김광석(1996년 1월6일 자살)의 경우에는 사건 후 1개월간 424명이 사망해 평소보다 100여명 가량 자살이 늘었다.
유씨는 연구를 통해 “대부분의 모방 자살은 나이와 성별에 있어 자살 모델과 비슷한 사람들이 같은 방법으로 자살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연령별로 고 이은주 자살 사건 이후에는 대졸로 사무직에 종사하는 20대 여성의 자살이 늘었으며, 안상영, 남상국, 박태영의 자살 이후에는 대도시에 거주하며 배우자가 있는 40~50대 남성의 자살이 증가했다.
특이한 케이스로는 고 김광석의 자살 이후 모방 자살자들의 추이인데 김광석 자살 사건 이후에는 10대와 60대 이상의 연령에서 자살이 많았다는 것이 유씨의 연구 결과다. 마지막으로 유씨는 유명인 자살사건의 여파는 평균 1개월간 지속됐으며, 2개월부터 감소해 3개월 뒤에는 평소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베르테르 효과를 지지하는 논리 못지 않게 이를 반박하는 주장도 많다. 이들은 주로 ‘자살은 전염되는가?’라는 논제에 대해 실증적 사례를 들어 반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살 풍조 확산을 막으려면 생명 존중의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먼저 유명인의 자살은 모방성이 강한 만큼 언론의 흥미위주 보도 관행 개선이 필요하고, 검찰 차원에서는 자살사건에 대한 세심한 주의가 절실하다. 동시에 상담센터 활성화 등의 사회적인 지원체계 마련 또한 시급한 당면 과제이다.
이를 위해 세계보건기구(who)는 몇 해 전 언론의 자살 보도에 관한 기준을 발표했다. 모방 자살,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를 막아보자는 취지에서다. ‘유명인의 자살은 될수록 작게 보도하라’, ‘ 주검과 현장, 자살 수단의 사진을 싣지 마라’, ‘복잡한 자살의 동기를 단순화하거나, 고통에 대처하는 선택이나 해결책인 것처럼 표현하지 마라’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4년 보건복지부와 한국기자협회, 한국자살예방협회가 함께 ‘언론의 자살 보도 권고 기준’을 만들었으며 내용은 wto의 기준과 유사하다.
한국자살예방협회 관계자는 “언론이 자살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거나 원인을 뚜렷하게 명시하는 일이 없도록 ‘자살 보도 권고 기준’을 자율적으로 지키고, 대중매체도 자살을 미화하거나 낭만적 행위로 포장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보배 기자 bobae3831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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