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을 준비한 송근우 원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시 100년의 미래’를 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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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권은 20개 시군(10개 시 10개 군)에 농업인구는 38만 명이다. 그러나 송원장은 단순히 경남 농업인구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의 소비자 전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진다는 마음가짐으로 30년을 일 해왔다. 점차 농지규제가 완화되고 있으나 통일이 될 때를 대비하여 절대농지를 확보해야한다고 말하는 송원장은 쌀 자급률이 98%이나 더 높여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파프리카 수출 1위를 올리기도 한 송원장의 애환은 남다르다. 지난 82년에는 폭우로 캐비넷이 물위에 뜨고 농업관련 자료들이 물에 젖어 장서를 말려서 재본을 다시 뜨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현재 기술원 식구들은 168명으로 이중 68명이 연구사로 대부분이 농업관련 박사들이다. 진주농대를 나와 경상대를 거쳐 기술원에 입사한 송원장은 어디를 가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좌우명이었다. 그리고 현재에 충실하자는 것, 오늘도 현재 추진하는 현안 문제와 100주년 행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축산과로 입학하여 대학 2년때 농학과로 전과를 했고, 교사자격증을 따 교사를 꿈도 키워봤다. 그러나 농업한국의 미래를 생각해서 농업기술원을 노크했다.
1975년 경상대학교 농대 농학과 졸업. ‘81년 동 대학원에서 농학 석사를 다시 ’96년 농학 박사를 땄다. 박사과정까지 시간이 걸린 이유는 업무를 보면서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않았다고. ‘92년 경상남도 농촌진흥원 함양약초시험장장을 거쳐, ’95년 경상남도 농촌진흥원 원예과장, 2002년 경상남도 농업기술원 시험연구국장, 2008년 올 해로 농업기술원 원장에 이르게 되었다.
여행이 취미라고 밝힌 송원장은 1986년 벼 연수를 위해 국제미작연구소와 필리핀을 다녀왔고, 동경, 오사카와 네덜란드 정도를 다녀왔는데, 이는 전부 농업관련 현지답사로 결국은 업무 외에는 해외여행 한 번 해 본 일이 없는 워커 홀릭인 셈이다.
먹고사는 것이 첫 번째라고 밝힌 송원장은 지난 100년의 농업기술원의 역사를 회상해보면, 체계적인 기술개발을 위해 노력해 온 것이고, 가장 큰 과업은 뭐니뭐니해도 쌀의 자급도를 높여 보릿고개를 해결한 것이라고 한다. 1970년대의 통일벼는 확실하게 보릿고개를 해결했고, 현재는 경남만하여도 200여개가 넘는 벼 관련 브랜드가 탄생되어있다.
다양한 브랜드의 범람으로 생산성이 높은 것을 위주로 쌀의 체계화를 이루는 것도 일이 되었다. 남도지방의 특성을 잘 살려 과채류 수출위주로 수출장려를 해왔고, 농민교육을 위해 네덜란드를 농업을 견학하고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해외원정을 가야했던 농업교육을 국내로 끌어들이기 위해 현재 짓고 있는 atec(농업기술교육센터)가 건립되면 3천평시설의 규모에 2천평 정도의 유리온실을 갖추고 경남농업인의 교육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매년 1천 8백 여명의 교육을 해온 농업기술원은 귀농가정을 위한 개발도 서두르고 있다. “이제 농업은 괭이 호미질 하는 시대가 아니라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첨단기술의 사업으로 전화되어가고 있다고 밝히면서 농업이야말로 4차, 5차 산업으로 갈 수 있는 비전 있는 개발 산업”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농업기술 100주년 축제를 준비하고 있는 송근우 원장은 1990년 농수산부 장관 표창을 했고, 1995년 청민기술상, 2006년에는 농촌 진흥청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농업기술원 100주년 기념축전=
▶일시:10월 9일~10월 11일
▶개최장소: 경상남도 농업기술원 , 진주
▶경남농산물 홍보, 판매, 20개 시군 농식품, 벤처 가공품 바이어 상담
주제 기술성과관, 특화사업단관, 친환경농기자재관
농업인 소비자 참여 경진 체험
▶공식 부대행사: 개막식, 기념조형물(타임캡슐 포함)제막, 100주년 기념책자발간
▶학술대회: 감, 버섯, 화훼, 벤처, 암예방 심포지엄
농업기술센터 진주 농업기술원은 어떤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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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 농업기술원은 한국최초의 농업기술센터이다.1908년 3월 종묘장 관제 공표에 따라 진주와 함흥에 설치한 기술원이 한국최초의 농업기관이다. 당시 주요 임무는 지방에 맞는 품종과 재배법을 시험 보급하는 것이었으며, 전국에 걸쳐 광주, 춘천 등 9개소에 이를 확장하기에 이른다. 후에 군단위까지 확대 설치하여 전시포장(展示圃場) 및 채종포 기능을 두었다. 1910년~1945년까지는 일제하의 관권에 의한 농사 개량 사업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한일합방과 더불어 식민지 수탈농업이 시작된 것이다. 일제는 그들의 식량, 공업원료 등을 한국에서 확보하고 상공 판매시장으로 만들기 위하여 토지 조사사업과 화폐금융 개혁을 단행하여 그들이 필요로하는 쌀 면화 잠견 소 등의 증산에 집중하였다. 1945~1948년 미군정하의 농사 개량 사업이 행해졌던 시기로 1946년 미 군정청은 조선총독부 농사시험장을 개편하고, 도에는 농사시험장 지장(農業試試驗場) 晋州支場, 1947, 4)을 설치하여 지역 특성에 맞는 농사시험연구와 지도 체제를 강화하게 되었다. 그해 각도에 시험장과 지방교도국을 분리 설치하였으며 각 시군에 농사지도소를 설치하였다.
1949년에는 농업기술원 직제가 공표되어 농업개량원은 폐지되고 새로운 기술로 개편도었는데, 농과대학은 문교부로 편입시키고, 기술원은 수원에 두고 시험부와 지도부의 2부로 설치하고 기존 교도국은 도농사시험장과 통합하여 도농업기술원으로 개편하여 시험부와 지도부 2부를 두었다.
1956년 한국정부와 미국원조당국인 한미간의 농사교도 사업발전에 관한 협정이 설립되었으며 이는 40년간 강제적 지도와 10년간의 혼란을 겪은 우리 농민에게 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교도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하는 계기를 마련했다.57년 농사교도법의 제정으로 농업발전에 획기적인 상황을 마련했다.
농촌진흥청의 창설과 농촌진흥사업의 정착은 1962년~1997년 사이에 주로 이루어졌다. 1962년 4월 1일 농촌진흥청과 농촌진흥원이 발족되었고, 1971년에는 농촌진흥원 기구에 국(局)설치에 따라 시험국, 지도국, 서무과로 승격되었다. 시험국에는 작물과와 식물환경과를 두고 지도국에는 지도과와 기술보급및 농촌사회과로 직제가 개편되었다.
1982년에는 농촌진흥사업의 일원화를 위해 통합청사의 필요성에 따라 현 위치인 농촌진흥원 청사로 이전하면서 부산 도청사에 분산되어 있던 지도 서무업무가 이전 통합되면서 지도 기반을 마련한 새시대 개막을 맞게 된다.
1986년 경남 중간산고냉지에 적응하는 벼 신품종 보급과 새로운 소득작물 개발을 위하여 기존 농산물원종장 소속의 함양분장을 흡수하여 함양 안의에 중간시험분장을 설치하였다.
1987년 도의 지역특성에 맞는 새로운 소득작물의 개발과 농업생산성 향상을 위한 연구기능을 강화하기 위하여 지방자치단체에 두는 국가공무원의 정원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시험국 아래 경제작물과를 신설하였다.
1992년에는 농촌지도사업 체제의 개편에 이어, 이른바 우루과이라운드협상이라는 세계적인 무역전쟁과 아울러 세계농업의 흐름에 첨단기술을 농업에 도입하는 농업종합산업화를 지향하면서, 농촌진흥청에서 농촌진흥사업의 활성화를 위한 체제개편 계획을 마련하여 경제사회발전5개년계획에 포함하여, 지방시험연구기관의 역할분담 및 전문화의 일환으로 경남 직제규칙제 1,969에 의거 시험국 아래 경영과를 신설하였다. 이에 원장 직속하에 지역특화작목시험장을 신설하였다.
1996년 행정의 효율성과 유사 기관 통폐합지침에 따라 잠업지도과와 교육훈련과가 흡수 이전되어 지도국 아래 부서로 편입되었다.
1996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세계화와 지방화를 통한 정부 생산성 향상의 일환으로 작은 정부의 구현에 따라 농업부문도 wto체제에 대비한 농업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역 중심의 특화 농정을 구현한다는 시책에 따라, 1997년 1월 1일 자로 도 행정단위 소속하의 농업기술원으로 이관되어 원장 및 시험국장, 지도국장, 3명은 국가적으로 나머지는 지방직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7년 7월 국 및 과 명칭이 다시 시험기술개발국에서 시험연구국으로 , 기술보급과는 농촌지원과로 수출지원과는 기술보급과로 변경되었으며 2000년 1월 조직개편에 따라 지역특화작목연구소로 운영되던 약초시험장이 작물연구과 소속의 약초연구팀으로 축소 개편되었다. 이후 2003년 12월 제 2조직개편에 따라 농업생명공학의 연구기능 강화를 위하여 식물환경과 소속의 생명공학담당이 신설되었고, 잠업업무도 가공을 통한 농가소득 증대를 위하여 가공기능을 강화 식물환경과 소속으로 이관 조정되었다.
2005년 6월에는 농산물원종장이 농업기술원에서 분리되어 도 직할 소속으로 이관되었다. 2005년 11월(도 규칙 2,755호)에는 1998년 조직 슬림화에 따라 폐지되었던 농촌생활자원과가 새로이 신설 농촌의 어메니티 향상 사업에 이바지 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2008년 정부 조직 개편 계획 및 농촌진흥사업 재편 계획에 따라 경상남도 행정구설치조례시행규칙(제 2,830호, 1998년 7월 3일)에 의거 시험연구국이 연구개발국으로 변경되면서 그 아래 작물연구과, 친환경연구과, 수출농식품연구과, 양파연구소, 단감연구소 및 화훼연구소를 두고, 기술보급국은 기술직원국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1개과가 축소되면서 기술지원과, 소득생활자원과 및 농업기술원센터로 개편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