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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 속에서 가슴만을 까맣게 태우고 있다네

감기와 사랑은 닮았나 봐 뜨거움이 온 몸을 사로잡고 있어

문일석 시인 | 기사입력 2008/10/08 [15:01]
최근에  쓴 시 두 편을 소개합니다.
 
**선릉 은행나무
 
은행 잎 한 잎 한 잎을
손에 들면
앳된 소녀의 젖가슴 속까지 물들인
여린 감정 미처 거두지 못한
원색의 낭만까지 엿보인다.
 
5백년 된 선릉 은행나무
수북이 쌓인 낙엽을
지근지근 밟으며 걷는다 해도
제발, 이파리에 아로새겨진
잎이 질 때의 아쉬운 사연만은
짓밟지 않았으면 좋겠다.
 
녹색이 진 노란색으로 바뀔 때의
쓰라린 가슴앓이를 그대는 아는가.
 
스산하게 부는 바람
잘생긴 큰 몸 높은 가지에 듬성듬성 매달린
잎사귀들의 마지막 절규가 들리는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있어도
바람 따라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사각사각 낙엽 뒹구는 쓸쓸함이
심장 속으로까지 슬며시 파고드는
 
가을, 끄트머리에.

*필자/문일석 시인.


▲ 연꽃    

**지독한 사랑
 
지독한 감기에 걸려
꼼짝달싹 못하고
며칠을 드러누운 적이 있는데
 
친구야, 난 지금
지독한 사랑에 빠져
영혼이 사로잡힌 채
안전부절 상태라네
 
감기와 사랑은 닮았나 봐
뜨거움이
온 몸을 사로잡고 있어
 
눈을 감고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아른거려
 
친구, 자네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는 것은
나 혼자 이 감동을
주체할 수 없어서야.
 
꽃길을 걷다
예쁜 꽃잎의 미소에 반하듯
난 그 사람의 인품에 반해
그 이의 그 넓은 마음속에
뽕당 빠졌어.
 
무게와 크기를 알 수 없는
미소, 그 미소…
미소가 날 꼼짝 못하게 하고 있어.
 
자기만큼
아니 자기 보다 더
날 사랑하고 있다는
예쁜 말에 포로가 됐다네.
 
인생의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일지는 알지 못하나
이런 사랑, 이런 지독한 사랑을
친구에게 말할 수 있어 행복하다네.
 
친구, 자네에게
지금의 솔직한 내 심정을
말한다면
그의 가슴에 하늘의 별을 몽땅 따다
안겨주고 싶어
 
그리하여 그 별들이
혹연 그이 마음이 어두울 때
반짝 거리며
새벽이 올 때까지
그이 곁에만 있도록
해주고 싶어.
 
하지만 사랑에 취한 나는
하늘을 다 가진 양 우쭐대지만
한줌 밖에 안 되는
나의 능력에
어두운 허공 속에서
가슴만을 까맣게
태우고 있다네.
 
그래도 그이를 사랑할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일거야.
 
친구야, 그래서
삶에 있어
사랑이 이처럼 귀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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