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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시> 무일푼의 영혼들께 바칩니다.

제5회 노숙인위령제를 마치고

고명자 시인 | 기사입력 2008/11/10 [13:52]
아주 먼길 떠나려는 사람처럼 이제 막 도착한 사람처럼
지친 눈으로 숨을 고르는 여기, 부산 역 느티나무 아래가 당신의 마지막 주소지입니까
하루의 일과인 듯 오로지 바라만 보았으니
그리 간절했던 소원 하늘에서는 다 이루셨는지요.
배고파서 바라보고
눈물을 감추느라 분노를 삭이느라
그리움이 바닥날 때까지 바라만 보았으니
그리 애 터지던 부모 자식 아내 남편 다 만나셨는지요.
바라보다 눈멀고 귀 멀어 마침내 입까지 굳어버렸으니
이 땅에 살았던 고통스런 이야기들
다 털어놓지도 못하고 떠나셨겠군요.
사기 당하고 누명 뒤집어쓴 일들
하루 종일 중얼거렸지만
광장의 수많은 군중은 모두 멀리 달아나 버려
비둘기나 쓰레기통을 붙잡고 억울한 속마음을 털어 놓으셨겠군요.
 
지금은 맨발로 앉아있어도 발이 시리지 않는 계절입니다
신문지를 덮고 새우잠 자던 이 땅에서 당신이 이루고 싶었던 꿈처럼 푸르른 날입니다.
쌓아야할 벽돌과 나사와 망치와 못, 바이러스 먹은 컴퓨터와
결제를 기다리는 문서 속에서
뜬눈으로 밤을 보내도 피곤을 몰랐던 찬란한 날입니다  
손 흔들어주던 모두를 위하여 무쇠처럼 열심히 일만하던
그런 눈부신 날입니다
 
 
으스스한 어둠이 저기 계단을 딛고 내려오면
지난날 떠올리며 가슴을 치셨겠지요.
아내 같은 뒷모습이 걸어가면 무작정 따라가기도 했겠지요.
비가 휘몰아치는 밤을 어떻게 넘기셨습니까.
회한은 장대비처럼 쏟아지고
씻을 수 없는 오욕 뼛속까지 파고들어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천형의 밤을 
역사 건너 5부두에서 겨울바람이 미친 듯 불어 닥치는 밤은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껴입을 옷도 덧신을 양말도 없이 눈 부릅뜨고 새워야 하는 밤
눈감으면 영원히 잠들 것 같은 공포의 밤
살아가는 일이 고통인 것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누구를 함부로 원망하지 않았던 밤
차가운 바람보다 더 차갑고 매서운 이 세상
그렇게 저 먼 별나라로 건너가신 겁니까.
 
무일푼의 영혼들이시여
한 장 두터운 구름을 깔고 누우신 하늘 거기 포근합니까.
이별 없고 그리움 없을, 억울함과 사기 돈도 권력도 필요 없을 하늘 거기 편안하십니까.
그렇다면 영혼이시여 이 불쌍한 땅을 용서하소서.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하거늘  
한 마리 벌레도 죽음 앞에선 행복해야 하거늘
당신을 비통 하게한 이 메마른 생명들을 용서하소서.
저 먼 하늘나라로 당신을 홀로 보내고 살아가는 자들을 용서하소서.
무일푼의 영혼들이시여
천 겹 만 겹의 날개처럼 자유로우소서.  
아름다운 음악처럼 저 높푸른 가을 하늘에 스미어 평안하소서. 
 

고명자(2006년 ‘시와정신’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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