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하게 흩뿌리고 있는 봄비를 맞으며 덕수궁에서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나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 친구의 큰 손바닥이 우산 속처럼 포근했다.
궁궐의 여기저기에는 키 큰 나무들이 삐죽하니 서 있다. 파릇파릇 새싹을 틔우고 있다. 가지 끝에 함초롬히 물방울을 매단 버찌나무 살구나무 단풍나무가 보인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아이처럼 연녹색 이파리들이 곱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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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흙에 젖은 바지의 밑단을 털어내는 등 뒤에서 느린 음악이 흐른다. 따당 땅 땅 따땅······. 중모리 장단의 가야금 산조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그 옛날 스란치마 자락을 끌며 궁궐 뜰을 거닐었을 곱디고운 왕의 여자들은 어느 침소에서 머물렀을까. 궁궐의 작은 방들은 묵직한 자물쇠로 무겁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한 세월을 건너서 내 앞에 선 여인들의 모습이 마음속에 흐릿한 동경(銅鏡)으로 어른거린다.
나는 덕수궁 뜰의 나무마다 그녀들의 한 많은 사랑과 한 남자를 향한 염원들이 나뭇잎의 갈라진 잎맥마다 가늘게 뻗쳐있는 착각을 느끼며 돌계단을 올라갔다.
미술관에는 6,25때 월남한 최영림과 그의 스승 무나카타 시코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무나카타 시코는 오늘날 현대적 미감으로 승화시킨 일본의 전통적인 판화가라고 평가되고 있다.
최영림은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적 풍습을 표현한 민담과 설화를 기조로 건강한 에로티시즘을 표출한 화가라고 말한다.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기 전 찬찬히 그림들을 훑어보면서 나름대로의 느낌을 메모했다.
그러다가 ‘아! 이 그림은!’하고 발길을 멈추었는데 이를테면 오래 눈에 익은 반가사유상 같은 느낌을 주는 화풍이 있었는가 하면 강렬한 선의 터치가 피카소의 화풍을 연상시키는 그림도 있었다.
어느 그림들에는 섬세한 꽃들이 캔버스 가득 피어 있기도 하고 산과 숲이 조금씩 색의 변화를 주면서 표현되기도 했는데 이는 마치 고구려 벽화에서 본 느낌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강렬한 느낌을 주는 ‘해변’이란 그림 앞에서 호흡을 깊이 들이마셨다. 제목이 주는 아련한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어둑어둑한 저녁 무렵을 배경으로 한 그림 속에는 나무 막대기가 꽂혀있고 해안의 모래밭이 보였다. 어부가 걸어놓고 간 빈 어망은 하나의 섬으로 보이기도 했다.
어렴풋이 달빛에 비치는 음산한 바다와 해변의 풍경은 최영림이 그려내고자 했던 고향의 검푸른 바다색 만 큼이나 아픈 것이었을까. 그의 우울한 생활이 그대로 캔버스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의 시대상을 최영림은 자기 내면의 상처와 함께 유화물감으로 덧칠하면서 삭히고 있었으리라.
바짝 마른 한 마리의 검정색 말이 그려진 작품 앞에서 검정색만을 고집한 최영림의 피폐해진 정신세계를 엿 본 것 같아 가슴이 아려왔다.
등가죽이 붙을 정도로 허약해보였던 흑마(黑馬)는 그때 화가 자신의 심정을 나타낸 것이 아니었을까.
그 당시 최영림은 가족과 재산을 모두 북에다 두고 혈혈단신으로 월남했다고 한다. 혼자라는 지독한 외로움과 고통을 표현하고자 한 것 같다. 거친 터치의 이 모든 작품이 주조를 이룬 검정색이 주는 의미는 죽음을 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차츰차츰 북에 두고 온 처자식을 생각하며 암울해하던 그의 화풍이1960대로 들어서면서 비교적 안정감을 찾아가는 듯 했다. 그가 그림 속에서 안정감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재혼한 아내와의 사이에 태어난 새 생명을 얻고서 그의 작품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 한다
그림 ‘꽃바람’속에는 여자가 있고 꽃이 만발했다. 어머니의 이미지와 아이들이 있는 그림이 나오기 시작하고 그림은 점차 부드럽게 변해 가는 듯 보였다.
그의 화풍은 차츰 검정색에서 황토색으로 목가적으로 변화를 주는 듯 했고 자연에 순응하는 한 인간의 변모된 과정을 그리고 있었다.
최영림은 격변기의 한 시대를 산 작가이다. 그가 가지는 화풍의 깊은 터치는 결국 목가적 자연주의를 대변하는 것이다. 그의 스승 무나카타 시코 역시 일본의 전무후무한 전통 판화를 세계적으로 승화시킨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나는 두 예술가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문학과 그림에 대해 잠깐 생각해보았다. 작가들은 글의 행간 사이사이마다 많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한다. 화가 역시 캔버스 위에 때로는 화려한 색채로 때로는 무채색으로 강렬한 선(線)의 이미지로 자신의 내면을 통렬히 쏟아낸다.
최영림의 그림에는 시대를 건너갈 때마다 느꼈던 아픔과 고통이 잘 반영되어 있었다. 무한한 시간의 좌표 위에 남기고 간 작가의 혼. 결국 예술은 한 영혼이 걸어가는 발자국이란 말을 조용히 되뇌어보았다.
사람은 죽는 순간 줄어드는 몸무게는 동전 다섯 개의 무게 21그램이라고 한다. 영혼이 빠져나간 무게라고 말하는 시인도 있었다.
하지만 예술의 혼이 남긴 흔적은 그 어떤 무게나 질량으로도 가늠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미술관의 돌계단을 내려오는데 풍경소리처럼 청아한 가야금 산조가 또 다시 들려왔다.
따땅 땅 땅 땅땅······.
덕수궁 뜰에는 눈물처럼 봄비가 내리고 그 옛날 여인들의 한숨 소리도 이봄 젖어든다. 봄은 소리 없이 빗소리에 묻혀 지나가지만 여전히 예술가의 혼을 따라 화려한 외출을 하고 있었다.
<수필가 이현실 프로필>
부산출생.
한국예총 <예술세계> 수필 등단
2008. 제5회 영농신문주최 농촌문학상 작품상(시 부문) 수상
2008 한국 육필문학 주최 타고르 문학상 작품상(시 부문) 수상
2005. 한국 문화원 연합회주최 창작시 공모 금상(문화관광부 장관상) 수상
예술시대 작가회 회원.
농촌문학 회원
수필집 <꿈꾸는 몽당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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