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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살 연륜 그는 어떤 소망을 미루었을까?

수채화 가득한 <박종규의 글 세상> 큰 나무

박종규 에세이스트 | 기사입력 2009/05/13 [23:15]
 

 * 이시대의 어른으로 살다 가신 장돈식 선생을 
     
       기리며 삼가 이 글을 영전에 바칩니다. * 

 

▲ 왼쪽부터 한상렬 문학평론가, 필자, 수필가 엄현옥, 장돈식선생

 
 
“내가 이리 안내했으니, 오늘 점심은 내가 삽니다.” 그는 우리 일행 한 사람 한 사람과 미소로 눈을 맞추며 말을 꺼냈다. 큼직한 체구에 걸맞는 큰 눈은 강한 흡인력으로 우리를 압도했다. 

“아닙니다. 오늘은 제가 낼 것입니다.” 우리 중 한 명이 바로 말을 받았으나 장 선생은 손을 내저으면서 장지갑을 열어 보인다. “아니에요. 이래 봬도 용돈이 두둑해요. 그리고, 이집 음식이 참 괜찮아요.” 

그 어른은 소형 승용차를 타고 내려와 우리를 맞았다. 큰 몸집이 작은 차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은 그 다운 생활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훤칠하게 큰 키에 백발이 성성하고 잔주름이 많았지만, 눈빛은 90살의 연륜을 무색게 할 정도로 총총했다.

서글서글하고 천진스러운, 누구라도 포용할 듯한 눈빛. 눈빛이 천진스러운 사람은 마음이 착하다. 그래서 눈은 마음의 창이라 하지 않던가. 

그가 우리를 데려간 곳은 중국 요리 집이었다. 30도를 웃도는 된더위 속에서 모처럼 시원한 치악의 언저리를 찾아들었는데 불로 요리를 하는 중국집이라니 좀 의아스럽기는 했다. 장 선생은 종업원들의 깍듯한 안내를 받으며 주저 없이 2층 계단으로 향했고, 두 사람이 그를 부축했다. 치악의 파란 하늘은 녹음이 치받고 있고 넓은 창이 트인 전망 좋은 방에는 동그랗게 회전식 식탁이 준비되어 있었다. 

장 선생 말대로 음식이 맛깔스러웠다. 그는 요리이야기며 건강이야기를 편하게 건네면서 젊은 후배들을 다독이듯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우린 젊다고 했지만 오륙십 대였다. 장 선생의 그런 여유가 부러웠다.

나이 90에 몸은 간암 진단을 받아 며칠 뒤에는 수술을 받으러 갈 사람이다. 나이 들수록 생에 대한 애착이 커진다는데 장 선생에게 저런 호기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언제 세상을 떠나실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우린 서둘러 방문길에 올랐던 것인데. 

장 선생은 그의 저서 <빈산엔 노랑꽃>에서 대만에 갔던 일을 적고 있다. 대만에는 객자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중국 고대역사상 가장 문명이 발달했던 나라가 송나라인데 이 나라를 이끈 종족이 객자 성씨였단다.

송이 패망할 때 객자 성씨는 대만까지 내려왔고, 장개석이나 손문 등이 그 후손들이라 했다. 장 선생이 만난 사람도 객자 성씨 중 한 사람이었는데 선생 일행에게 젊은이들 나이가 몇이냐고 묻더란다.
 
두 사람이 여든이라고 대답하자 자기는 아흔넷이라며, 젊은이들을 만나니 기쁘다고 호기를 부리더라 했다. 지금 그 장 선생 연세가 아흔이니, 우리 오륙십 대가 젊긴 젊은 편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들어서 지금처럼 내 스스로 젊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  장돈식 선생의 치악 산방에서 문학을 이야기하다.

 
식사가 끝나고 일행은 장 선생의 거처인 백운 산방으로 향했다. 치악의 계곡을 연한 곳에서 오른쪽으로 돌아들자 조그만 옥수수밭과 고추밭이 나타났고, 텃밭의 경계로 시멘트와 목조를 잘 조화시킨 현대식 건축물이 나타났다. 우선 눈에 띈 것은 회백색의 높다란 담이었는데 상단의 마감처리가 들쭉날쭉하여 영화에서 보았던 미개 부족마을의 울타리를 연상시켰다.

담을 끼고 돌아선 뒷면은 적갈색으로 나무의 표면 같은 질감을 살려내고 있어 주변과 조화가 잘 되었다. 계곡을 가로질러 세워진 중앙고속도로의 둔중한 교각이 치악 골의 풍광을 막아서 있었는데, 이 담은 자연스럽게 시멘트 교각을 가려줄 뿐 아니라 방음벽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2층 구조인 백운 산방은 응접실에서도 침실에서도 계곡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도록 넓은 창을 내고 있었다. 장 선생은 이곳 백운 산방의 열린 처소에서 온갖 동식물들의 유희에 동참하며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는 자연인이었다. 

간암이라면 치명적인 병이다. 그러나 선생의 표정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남의 얘기 하듯 자신의 병에 대해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의사의 말을 듣고 참 기가 막혔지. 죽을 병 걸렸다고 생각하니 말이야. 나처럼 건강 확실하게 챙긴 사람도 드물 텐데 왜 하필 내가 그런 몹쓸 병에 걸렸나 싶었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어. 한 동안 그 분노를 삭혀내질 못했어요. 나중에는 나 빼놓고 모두 건강한 가족들까지 원망스럽더라니까.” 

“...... 예.” 
 
“그런데 말이야, 병원에 가보니 그런 환자들 천지더군. 그건 내게만 내려진 천형이 아니었다는 것이지. 그걸 보고서 맘을 고쳐먹었다니까. 나라고 병에 걸리지 말라는 법이 있겠느냐 생각하니 도리어 이젠 편해졌어. 사람이 아파 보아야 세상을 알게 되는 것 같아.” 

 
분노를 삭이기 어려웠다……. 나이 90인 사람이 병에 걸렸다고 분노를 삭이지 못하였다니!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젊어서는 건강 하나를 자산으로 모진 고생을 하면서 큰 기업을 이루어 냈고, 그런데도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기대지 못하게 하여 자수성가를 시켰던 장 선생. 이젠 몸이 쇠약해진 아내를 위하여 치악으로 들어와 새로운 삶을 시작한 지 10여 년이 되었다. 

그의 글을 읽어보면 산에 있는 모든 날짐승이나 들짐승, 꽃과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백운 산방의 식구들이다. 장 선생은 매일 산을 오르내리면서 그 많은 식구와 대화를 나누고, 자기를 자연에 동화시키며 살아가고 있다. 그가 나무라면, 나무 중에서도 큰 나무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병이 들었다. 하지만, 병으로 아픔을 느끼면서 비로소 삶을 알아가는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전쟁을 겪으면서 남쪽으로 내려와 어렵게 삶의 터전을 잡았고, 큰 기업까지 일구었다면 모진 세상의 풍상을 이겨내었을 것이다. 이제 나이 구십인데, 죽을병에 들어서야 새롭게 세상을 알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어른! 우린 얼마나 더 살아내야 세상을 바로 알게 될까. 

치악의 정상에서부터 수십 고비 흘러내리는 계곡물이 백운산방 마당 옆 웅덩이에 이르러서 잠시 쉬어 흐른다. 장 선생이 흐르는 물에게 쉼터를 만들어 준 것이리라. 오늘은 하얀 오리 네댓 마리가 한가로이 물 회오리를 즐기며 흐르는 물을 좇고 있다. 

우리를 배웅하는 장 선생은 와이퍼처럼 손을 흔든다. 백미러에 나타난 선생의 모습이 어느덧 큰 나무 한 그루로 자리하고 있었다.





▲ 박종규는 삶의 다원적 변수를 운치와 여운의 하모니 가득한 관용하에 삶의 동일체로 이끄는 심플리스트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어 그의 수필은 가히 생명의 빛이라 할 수 있다.   
삶의 무게 진솔하게 풀어내는 1949년 진도생의 박종규 작가는

 
14세에 이미 원고지 2,000매를 써 문학의 길을 예비했지만 서울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한 미술학도였다. 그 원고지가 ‘주앙마잘’ 이라는 소설로 태어난 것이 1995년, 글이 잉태된 지 32년만이었다.

2001년에는 의문사를 다룬 2부작 장편소설 ‘파란비’를 출간하여 추리적 기법과 반전의 묘로 화제를 모았다.

2007년 발간된 에세이집 ‘바다칸타타’는 독특한 편집과 이벤트성 퍼포먼스로 수필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표지가 없이 출간된 책, 들려주는 낭독수필집, ‘수필계의 게릴라’ 외에도 휴머니티를 실천하는 작가라는 평에 걸맞게 문화소외계층을 찾아다니며 벌리는 퍼포먼스는 한 작가의 역량을 이미 넘어서고 있다.

국립군산대학에서 광고디자인을 강의하는 그는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이며, 에세이스트문학회장을 역임했고, 문학동인 글숲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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