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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직계후손들…다시 새겨보는 형제애

수채화 가득한 <박종규의 글 세상> 천 년의 짝사랑

박종규 에세이스트 | 기사입력 2009/07/23 [03:52]
▲ 지중해의 한 나라가 한국을 짝사랑하고 있다. 우리 한국을 짝사랑하는 나라라고 혹 우습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 천 년을 넘어 이어 온 짝사랑 

아름답다고 하지만 가슴 아픈 추억으로 남는 것이 짝사랑 아닌가. 이억 만 리 지중해의 한 나라가 한국을 짝사랑하고 있다. 우리 한국을 짝사랑하는 나라라고 혹 우습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동로마인 비잔틴 제국, 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중앙아시아와 지중해 전역, 북아프리카, 동유럽을 장악했던 역사상 가장 강했던 나라, 지금도 상상을 초월하는 자원과 광활한 영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역사유적을 가진 나라, 바로 터키이기 때문이다. 

터키인들의 한국에 대한 사랑은 무조건적이다. 터키에 체류하는 이레 동안 다른 유럽의 국가들처럼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우리를 얕잡아 보는 시선을 단 한 번도 느낄 수 없었다.
 
거리에서는 누구라도 내가 한국 사람이라 하면 불쑥 손을 내밀며 반겼고, 항상 따뜻한 미소로 대해주었다. 상인들은 우리말을 꽤 알고 있었다. 한국 관광객들이 물건값을 많이 깎는다는 것조차 훤히 알면서도 일일이 대꾸해 주었고, 흥정만 해 놓고 안 사간다고 짜증 내는 일도 없었다.
 
가죽제품이 특산품이라서 구두를 사려는데 옆 사람이 반값으로 흥정을 시작하자 구두 한 짝만 가져가라고 익살스럽게 말하면서도 호의적인 표정은 여전했다. 또 하나 신기한 일은, 카메라를 멘 내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고, 내가 사진을 찍어주면 고맙다며 즐거워했다.
 
찍은 사진을 보내줄 것도 아닌데, 터키사람들은 한국인들 카메라에 자기들이 찍힌 사실만으로 행복해하고 있었다. 이런 터키인들의 호의는 경찰이나 공무원, 학생들 할 것 없이 똑같아서 우리를 진정한 형제 나라 사람들로 여기는 반증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곳도 아니 터키 땅에서 터키사람들 덕분에 행복했음에도 속으로는 민망했다. 정말 우리가 저들로부터 그런 환대를 받을 자격이 있을까 해서……. 저들이 언젠가는 우리 한국 사람들을 싫어하게 되지나 않을 가 해서. 

터키인들은 6·25 사변이 일어나자 형제 나라에 전쟁이 났다며 5,000명의 자국 젊은이들을 파병시키려 했으나 지원병이 15,000명이나 몰렸다고 한다. 그리고 3,000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먼저 형제라며 손을 내밀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우리였다. 터키는 미국, 영국, 프랑스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보내왔던 나라다.
 
역사적으로 용맹한 전사들이었던 튀르크 민족은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에서도 그 용맹성을 여지없이 발휘했다. 특히 ‘금오리’ 전투에서 터키군이 승리하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철책선은 훨씬 남쪽으로 내려와 있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휴전이 되고 나서도 터키군은 우리를 위해 전쟁피해 복구사업을 펼쳤다. 

터키인들은 우리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강하여 오늘날 환란의 때 임에도 우리 무역역조 개선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미국, 중국 다음으로 우리 물건을 많이 수입해 가는 나라이다. 이스탄불 등 도시에서 만나는 현대자동차, 삼성전자의 제품들이 터키인들에게 인기 상품이 된 있는 것은 한국에 대한 형제애 때문이라고 한다. 

 
 -‘지중해는 오스만 제국의 호수’ 

터키는 한마디로 자원대국이다. 이라크와 연한 동쪽의 광활한 대지는 엄청난 양의 석유 매장량이 있고, 산은 깎으면 대리석이며, 바다 같이 넓은 소금 호수가 있고, 드넓은 대지는 목화밭, 밀밭, 사탕수수밭, 올리브 밭으로 유럽을 대표하는 작물 생산국이기도 하다.
 
도시는 재개발에 손을 못 댈 정도로 무수한 유적의 무덤이라서 유네스코는 이스탄불 시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을 정도이다.
 
그뿐만 아니라 고대 7대 불가사의 아르테미스 신전 등 기독교의 중요 유적지이면서 수많은 고대유적이 발굴되는 ‘에베소’, 안탈랴의 아폴로신전, 클레오파트라가 별장으로 삼았다는, 석회석 위를 흐르는 노상온천지 ‘파묵깔래’, 지구 위에 솟아난 외계 천지라는 꿈의 땅 ‘파카토기아’, 신화의 역사가 살아있는 <호머>의 고대 유적지 ‘트로이’, 세계 7대 불가사의인 ‘성 소피아사원’ 외에도 발굴하고 있는 고대 문명의 유적들은 즐비하다.
 
또한 ‘에게해’와 동서양을 잇는 ‘보스파로스 해협’ 등 드러난 관광자원만 해도 엄청난 나라다. 지리적으로는 유럽에서는 가장 중요한 지형학적 위치를 점하는 나라가 터키이다. 

술래이만 대제 때, ‘지중해는 오스만 제국의 호수’라고까지 칭해졌을 정도로 터키의 위세는 대단했다. 일찍이 역사학자들은 ‘신은 터키에 모든 것을 주었다.’고 단정했던 이유를 알 만하다. 그러나 신은 늘 공평하다. 터키인들이 수 천 년 동안 세운 모든 문명은 일시에 몰락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백 년마다 찾아오는 대지진이 제국의 위세를 땅속으로 매몰시키곤 했던 것이다. 그러니 터키에 매장된 문화재는 발굴에 끝이 없으며,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지정된 성소피아사원의 경우는 복원에만 100년이 걸릴 것이라 한다.

  이 나라의 빈자와 부자의 격차도 대단히 크다. 그러나 길거리의 거지에게 동전을 건네주면 ‘신이 당신의 지갑에 축복을!’이라 한다. 세계 역사의 중심에서 제국의 터전이 되었던 대국 터키가 보여줄 것 변변치 않고, 자원도 없는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을 무엇이 아쉬워서 짝사랑하는 것일까. 그것은 본디부터 뿌리가 같은 이유 때문이다. 


▲ 동로마인 비잔틴 제국, 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중앙아시아와 지중해 전역, 북아프리카, 동유럽을 장악했던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나라가 바로 터키이다.

 
 - 짝사랑의 흔적, 흔적들 

‘터키’라는 이름은 튀르크에서 왔다. 고대 동양의 역사서에서 ‘돌궐(突厥)’이라고 칭했던 민족들이 바로 오늘날 튀르크 민족들의 직계 조상이다. 튀르크를 중국어로 표기한 것이 돌궐이다.
 
돌궐은 6세기경부터 중국 역사에 등장했으며 그들의 조상은 중국이나 한반도에 철기문화를 전해주었고, 기습과 약탈로 진시황제를 괴롭혀 만리장성을 쌓게 하였던 흉노족이었다. 흉노족 이전의 조상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와 같은 알타이어계 언어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또한 우리 민족도 그 기원이 북방 기마 민족에 있었다는 점으로 볼 때, 우리 민족이나 튀르크 민족의 조상은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함께 생활했던 이웃이었으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같은 민족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의 한 민족의 뿌리에 튀르크가 함께 있었던 샘이다. 

돌궐은 세력 확장을 꾀하는 수나라에 대응하기 위해 고구려와 외교관계를 맺었다. 572년에 돌궐의 왕 무칸(mukhan, 木杆)이 사망하자 고구려가 돌궐에 조문 사절을 파견했다는 기록이 오르혼 강의 비문에 기록되어 있다. 돌궐이 지배했던 중앙아시아의 고분 벽화에도 고구려의 사신도가 그려져 있다. 

중앙아시아는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이슬람화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몽골의 원나라는 고려의 왕세자를 인질로 데려다가 몽골 공주와 결혼시켜 고려로 돌려보냈다. 당시 충렬왕의 왕비였던 원나라의 제국공주가 고려로 시집을 가게 되자 수많은 시종이 딸려 보내졌다. 그 시종 중의 상당수가 튀르크-위구르 출신이었음은 물론이다.
 
그중에서 위구르 출신의 삼가(三哥)라는 인물이 고려의 풍수에 반해 충렬왕에게 귀화를 간청했으며 충렬왕은 이를 받아들여 고려 여인과 결혼시키고 덕수 장(張)이라는 본을 하사해 ‘장순룡’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 사람이 바로 오늘날 덕수 장 씨의 시조가 된 것이니 혈연적으로도 형제임이 분명하다. 

 
- 부끄러운 형제 나라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터키 대통령은 한국을 3번이나 방문했는데, 한국의 대통령은 유럽 방문길에서까지 한 번도 터키를 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제기구에서 늘 우리의 손을 들어주었던 이 터키에 우환이 닥쳤다.
 
1999년에 대지진이 발생하였고, 세계 각국에서 구호금품을 보냈으며, 가장 가난한 나라 방글라데시도 10만 불을 내 놓았다. 우리나라의 구호금은 겨우 7만 불. 일본의 20분의 1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 단체에서 들고일어나 각종 모금 활동을 통해 100만 불을 만들어서 터키 주재 한국대사에게 전달함으로써 겨우 채면치례를 했다. 

2002 월드컵이 형제 나라 한국에서 개최되었다. 터키는 48년 만에 본선에 진출했고, 조별 예선을 한국에서 치르게 되었다. 지진 성금 모금을 위해 결성되었던 ‘터키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또 다시 터키에 은혜를 갚을 기회라 생각하고 손님을 맞을 준비에 착수했다. 이제는 우리 국민도 터키가 형제 국가요, 우리의 은인임을 알고 있었기에 손님맞이에 적극 호응했다. 

터키는 브라질과 만났다. 주심은 한국인이었다. 터키의 하산 사스가 천금 같은 선취골을 뽑았다. 터키는 축구밖에 모르는 나라라 할 정도로 축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나라다. 월드컵이 형제 나라에서 열리게 되자 48년 만에 월드컵 진출의 꿈을 이뤘고, 최강 브라질에 선취골을 얻은 것이다. 그것도 전반 종료 직전이었다.
 
후반전, 한국인 주심이 명백한 터키 팀의 후리 킥을 두 번이나 놓쳐 버리더니 호나우도가 동점 골을 넣어 비긴 상황에서 브라질 팀에 또다시 페널티 킥을 선언했다. 결국, 터키는 브라질에 졌고, 터키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형제에게 배반당했다고 흥분한 터키사람들은 반 한국 구호를 외치며 시가지를 활보했고, 교민들은 조마조마 애간장을 태워야 했다.
 
한국인 주심의 페널티 킥 판정이 오심이라는 보도가 잇달으면서 첫 월드컵 주심의 영광은 땅에 떨어졌고, 그는 결굴 심판자격을 잃게 된다. 그러나 터키인들의 대 한국 증오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국이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연파, 4강에 오르자 터키도 4강까지 올라 약속이라도 하듯이 준결승전에서 나란히 져 한국에서 3-4위전을 치르게 되었다. 상암 경기장 관중석에 펼쳐 올랐던 대형 터키 깃발 하나에 그들은 ‘역시 형제 나라!’를 외쳐댔으며 경기 종료 뒤 함께 어깨동무를 한 선수들을 보면서 다시 한국에 대한 애정을 되찾았던 것이다.
 
이 대형 터키 깃발은 시민단체인 ‘터키를 사랑하는 모임‘ 애서 준비한 것임은 물론이다. 승패를 떠나 치러진 3-4위전은 두 민족이 절묘하게 해후한 잔치판이었다. 월드컵이 끝난 뒤 드디어 2005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이 수교 48년 만에 처음 터키를 방문하였다. 비로소 두 나라는 진정한 형제국가로서 우의를 다져나갈 수 있는 초석이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과연 터키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 물은 스스로 흐르게 하라 

초승달과 별이 선명한 터키의 붉은 깃발은 터키인들의 기상이면서 동시에 정복자로서의 붉은 역사를 상징하고 있다. 그들은 자국의 깃발에 대한 강한 애정과 함께 터키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민가에도 깃발이 꽂혀 있는 집이 많고, 국토를 횡단하다가도 대형 깃대 위에 펄럭이는 붉은 깃발을 자주 보게 된다. 이스탄불에서 앙카라로, 파묵깔레로 가는 길 일천 킬로미터 내내 설경이 절경이었다. 피로 일궈낸 수천 년 제국의 역사를 담은 붉은 깃발이 우뚝우뚝 솟아 하얀 대지에 대비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흐르는 물은 절대로 가두지 않는, 그래서 목욕물, 세숫물마저 물마개가 없이 흐르게 하여 사용하는 터키인들. 그들은 수많은 정복전쟁을 치르면서 선혈의 붉은 역사와 함께 했지만, 물이 스스로 흐르게 하듯 피의 역사를 닦고 또 닦아 하얀 제국으로 거듭나는 것은 아닐까.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동방의 작은 나라, 대지면적 8분의 1밖에 안 되는 코리아를 짝사랑하는 터키. 이제 그들만의 짝사랑은 그만이었으면 한다. 터키인들이 아는 만큼 우리도 그들에 대해 더 학습하고, 그들의 진정한 형제애를 품어주면서 우리들의 애정을 보내주어야 할 차례가 온 것이다. 우리는 어느 나라보다도 정 많은 민족이 아닌가.   



 
▲ 박종규는 삶의 다원적 변수를 운치와 여운의 하모니 가득한 관용하에 삶의 동일체로 이끄는 심플리스트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어 그의 수필은 가히 생명의 빛이라 할 수 있다.   
삶의 무게 진솔하게 풀어내는 1949년 진도생의 박종규 작가는

 
14세에 이미 원고지 2,000매를 써 문학의 길을 예비했지만 서울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한 미술학도였다. 그 원고지가 ‘주앙마잘’ 이라는 소설로 태어난 것이 1995년, 글이 잉태된 지 32년만이었다.

2001년에는 의문사를 다룬 2부작 장편소설 ‘파란비’를 출간하여 추리적 기법과 반전의 묘로 화제를 모았다.

2007년 발간된 에세이집 ‘바다칸타타’는 독특한 편집과 이벤트성 퍼포먼스로 수필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표지가 없이 출간된 책, 들려주는 낭독수필집, ‘수필계의 게릴라’ 외에도 휴머니티를 실천하는 작가라는 평에 걸맞게 문화소외계층을 찾아다니며 벌리는 퍼포먼스는 한 작가의 역량을 이미 넘어서고 있다.

국립군산대학에서 광고디자인을 강의하는 그는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이며, 에세이스트문학회장을 역임했고, 문학동인 글숲을 이끌고 있다. 

pparao1@hanmail.net,
blog.naver.com/badacant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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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웃기지 않는데요 2010/04/27 [04:31] 수정 | 삭제
  • 웃기네님 그럼 터키 사람들이 지금도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가 6.25전쟁으로 그네들의 실업자를 처리해주었기 때문입니까? 터키 안 가보셨죠? 시간되면 한 번 다녀 오시고 말씀하세요.
  • 웃기지 않음 2009/10/02 [15:57] 수정 | 삭제
  • 김춘추의 나당연합군 때문입니다. 김춘추가 당나라와 연합하자 고구려는 돌궐로 연합했는데 알다시피 고구려는 패했고, 그후 당나라가 돌궐을 치려하자 돌궐의 민족 대이동이 시작된 거죠. 그래서 원래 자리잡고 살던 곳에서 돌궐은 쫓겨나 중앙 아시아를 거쳐 지금의 터키에 정착하게 된 것입니다.

    터키가 파병한 것이 자국의 실업문제 때문이라 해도 터키가 우리나라에 파병해서 많은 사상자를 낸 것은 사실이고 그에 대해서는 고마워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인지상정이죠. 그렇게 따지면 미국은 우리를 사랑해서 원조했습니까?
  • 웃기네 2009/07/31 [17:19] 수정 | 삭제
  • 한국이 이뻐서 그런게 아니라, 그 당시 자국에 넘쳐나는 실업자들 처리로 골머리를 앓다가 미국이 이걸 알고 파병 댓가로 경제지원을 약속해서 얼씨구나~ 하고 파병한것에 불과하다. 마치 우리가 월남전에 고육지책으로 파병한것처럼.. 그 당시 우리는 월남을 사랑해서 파병했나? 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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