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내 잔등에 한 번 올라 보라고. 아주 오래전부터 자네 조상이 대대로 수도 없이 올라탔던 나의 등마루에! 나무숲을 가르고, 능선을 따라 끊이지 않고 구불구불 이어진 길은 오래도록 밟아온 당신들의 발자국이며 내 상처이기도 하지. 자네들은 나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이용하고, 내 살을 퍼내고, 종단에는 내 허리를 쩍 잘라놓기까지 하잖나.
허리를 잘라 놓을 뿐만 아니라 배를 가를 때도 있어서 나로서는 식구들 건사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어. 그래도 나는 단 한 번도 자네들을 마다한 적이 없을뿐더러 탓하지도 않았고, 철에 따라 갖은 조화를 다 부려 자네들 지친 심성에 도리어 위안을 주었네. 나는 자네들 인간사에 몰아치는 태풍을 잠재울 뿐 아니라, 예나 지금이나 세상을 품어 살라고 끊임없이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그 가르침을 그대들은 얼마나 알까.
시야가 시멘트 구조물들에 갇혀 살아가는 그대들은 내 등성에 올라와 보아야 비로소 세상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걸세. 자네들이 사는 서울이라는 큰 도시가 내 푸른 핏줄을 얼마나 끊어 놓았는지, 옛 성곽을 따라 쭉 돌아보게나.
얼마나 많은 추억의 그루터기들이 괴물 같은 구조물들에게 먹혀 버렸는지 보일 거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쌓아 올리는 빌딩 탑들을 보게나, 하지만 여전히 내 발아래에 놓이질 않았나! 그대들은 아등바등 살면서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보려고 나의 등성에 오르지만, 이곳도 차츰 사람들 부대끼는 곳이 되어가다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네.
주말이면 모든 산마루에 자네들 모습이 파도 되어 일렁이고, 정상에 서서 깃발을 펄럭이는 자들에게 바람 한 줄기 날려줄 때면 내 기분도 말할 수 없이 시원하다네. 골짜기마다 오색의 꽃 파도가 일고, 희고 거대한 바위 틈새로 굽이쳐 흐르는 계곡에 비친 하늘이 퍼렇게 너울거리는 한낮은 평화로움의 극치이지.
모든 능선 위에 색색으로 사람 꽃을 피워내어 꽃 파도를 만드는 자네들! 그중에는 정말 나를 아끼고, 보듬을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네. 사람 꽃은 꽃물이 되어 골짜기로 흐르고, 능선을 타고 번질 때 자네들은 오르는 모든 산마루마다 쉼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일 세. 애써 오른 정상 아래로는 반드시 가야 할 내리막이 있다는 것도 잘 알 것이고.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는데 명심하게, 산마루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오르막보다는 내리막에서 많은 사람이 예기치 않은 고통을 당하게 되지. 실족하여 영영 세상을 등지는 사람까지 있지 않겠나, 사람들은 그것이 내가 보여주는 자기들 삶의 투영인 것을 알아야 할 거야. 나, 얘기 하나 할까?
내가 엿들은 자네들의 이야긴데, 먹는 것 갖고 호들갑 떠는 이들 중에 식사에 대한 자기 절제를 무척 잘하는 사람이 있었다는구먼. 그는 바쁜 점심이라도 한 시간을 넘길 정도로 음식을 정성껏 씹어 먹는 것이 버릇이었데. 식사는 반드시 정량과 정해진 시간을 엄격히 지켰으며, 음식이 비록 냉면이라 하더라도 오래 씹어 천천히 식사를 마치는 사람이라 성질 급한 사람은 그와 함께 식사할 엄두를 못 냈다고들 떠들데.
게다가 그는 담배를 하루 두 갑 정도 피우는 애연가였고 술도 많이 마시는 편이었다더라고. 그런 그가 최근에 자식들 권유로 건강검진을 받고 나서 두 번이나 놀랐다는 거야. 자기가 이미 위암에 걸려 있어서 놀랐고, 사십여 년간 피워온 담배와 마신 술이 있는데도 뜻밖에 폐와 간은 깨끗하다는 검사결과를 보고 또 한 번 놀랐다는 얘기야.
그가 그렇게 편집증처럼 잘 관리하던 위에 왜 탈이 났을까. 탈도 보통 탈이 아니고 돌이킬 수 없는 암癌 탈이 나서 세상을 등졌다고 하니 자네들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못할 것이네. 평소의 생활 태도대로 병이 난다면 그는 위암이 아니라 폐암이나 간경변이 났어야 합당했겠지. 그렇게 잘 관리해 왔는데도 그곳에 탈이 난다면 예방이라는 것이 도대체 왜 필요하냐고 되물어야 할 판 아닌가.
그러나 난 그 답을 알아. 아는 게 병이라는 말 있잖나. 그 사람, 아마도 자기를 자연스럽게 놓아두지 않고 지나치게 편협한 관리를 했을 거야. 그래서 무균상태의 청결함이 도리어 저항력을 떨어트렸을 거라구. 어린아이들이 병에 잘 걸리는 것을 생각하면 될 걸세. 보균이 많아서가 아니라 무균상태에 가까워 저항력이 없기 때문 아니겠는가. 모든 것은 적당할 때가 가장 좋은 것이야. 그 적당이 쉽지 않아서들 탈이지만.
과도한 열량 섭취로 만들어진 비개덩이를 덜어내려고 비지땀을 떨어뜨리며 내게로 오르는 작자들은 마땅찮아. 나는 자네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깨닫고,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데 요긴한 정신을 살찌워가길 바랄 뿐이지. 요즈음 잘 살아 보자는 생각들이 팽배해지면서 웰빙은 모든 생활의 화두가 되어 버렸더라고, 정작 잘사는 게 뭔지나 알고 그러면 좋으련만.
심성이 고운 사람도, 거친 사람도, 돈이 많은 사람도, 가난뱅이 노숙자도 나는 거부하지 않아. 좌로 우로 치우치지 않는 나이기에 자네들보다 열배 백배 더 장수하면서 푸름을 유지하는 것 아니겠나. 나처럼 산다면 자네들도 천수를 누릴 걸세. 약은 척하지만 어리석고, 강한 척 하지만 한없이 약한 자네들에게 난 언제나 침묵으로 말을 걸지. 내가 거느린 온갖 나무들, 온갖 짐승들, 온갖 미물들을 품어 사는 내 모습을 보이면서 말이야.
참, 이건 나만의 살아가는 비법인데 혼자만 듣게나. 말은 말이야, 말하는 게 아니라 나처럼 듣는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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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에 이미 원고지 2,000매를 써 문학의 길을 예비했지만 서울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한 미술학도였다. 그 원고지가 ‘주앙마잘’ 이라는 소설로 태어난 것이 1995년, 글이 잉태된 지 32년만이었다.
2001년에는 의문사를 다룬 2부작 장편소설 ‘파란비’를 출간하여 추리적 기법과 반전의 묘로 화제를 모았다.
2007년 발간된 에세이집 ‘바다칸타타’는 독특한 편집과 이벤트성 퍼포먼스로 수필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표지가 없이 출간된 책, 들려주는 낭독수필집, ‘수필계의 게릴라’ 외에도 휴머니티를 실천하는 작가라는 평에 걸맞게 문화소외계층을 찾아다니며 벌리는 퍼포먼스는 한 작가의 역량을 이미 넘어서고 있다.
국립군산대학에서 광고디자인을 강의하는 그는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이며, 에세이스트문학회장을 역임했고, 문학동인 글숲을 이끌고 있다.
pparao1@hanmail.net, blog.naver.com/badacantata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