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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 문화혁명 시기 오천만명 굶어죽어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형에게 띄우는 편지 '앙콜 중계'

박태우 박사 | 기사입력 2009/08/25 [08:11]
일요일 오후 숙소에서 학교 앞의 마이콩이 있는 산을 바라보며 장개석의 영문전기집을 읽고 있어요. 사람의 이름으로 살다가 간 수많은 역사속의 사람들  중에서, 이름도 없이 역사의 물결에 희생되고 잊혀 진 민초(民草)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세계무대에서 거대한 중국의 영토와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며 역사적 소용돌이가 칠 때마다 수 백만 명씩 자기들의 삶과는 별 상관도 없이 조작된 이데올로기와 위정자들의 독선(獨善)에 희생된 가엾은 영혼(靈魂)들을 생각합니다. 모택동의 문화혁명시기에는 오천만명이나 굶어죽었답니다. 그래서 소시민(小市民)들은 때로는 거창한 역사나 민족의 문제보다는 자신들의 삶 그리고 가족들의 행복과 안녕이 더 큰 과제로 다가옵니다.
 
20세기 초반 중국본토의 군벌들이 춘추전국시대를 연상하며 패권을 다투고 있을 시에, 오직 비축된 힘과 군사만이 자신들의 기반을 지켜준다는 믿음으로 자신들의 세력 확장에 반대하는 세력들에게는 힘을 상징하는 칼과 협박으로 모든 공포정치를 해 왔던 우리 주위의 역사의 모습에서 지금 북한의 억압받고 고통 받든 백성들을 생각해 보게 되지요. 잠시는 칼과 방패가 역사가 우리 역사를 지배하는 것 같았어도, 결국 긴 안목에서 보면 중국역사의 승리자는 정당성과 명분을 담은 삼민주의(民族,民權,民生)를 주창한 손문이 대세를 이루었고, 이를 기반으로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설수가 있었지요.
 
▲ 박태우  박사 
민초들에게 피부로 다가온  탐관오리(貪官汚吏)들의 부패와 지방관리들의 횡포문제,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외세의 침략을 지킬 수 없었던 국민당정부도 결국은 ‘외세배격과 전인민의 평등화’를 주장한 모택동 노선에게 밀리게 됩니다. 이러한 모택동의 자주민생노선이 혁명으로 성공하여 등소평의 개혁.개방으로 이어지는 역사전개과정에서 오늘날의 중화인민공화국의 발전이 보이지만, 중국공산당(ccp)의 철학적 테제가 앞으로 어떻게 21세기의 지배이데올로기와 접목이 될지 큰 숙제로 남아 있지요. 이러한 의미에서는 비록 작은 섬나라이지만 대만의 민주주의 발전이 큰 역사적 함의(implication)가 있어 보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작금의 21세기에도 이러한 역사의 악순환은 얼마든지 다른 형태로 혹은 똑 같은 모습으로 우리 주위에 널려 있습니다. 이것이 역사의 흐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른 역사의 흐름을 담아낼 수 있는 바른 식견(識見)과 경륜으로 국제정세를 진단하고 한반도 현재진행태의 모순과 해결책을 현실적으로 낼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국제적 안목과 민족적 자긍심을 균형감각 있게 갖춘 위대한 지도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개인의 문제도 마찬가지이지만, 사회공동체의 문제는 바른 역사의식과 경륜과 능력이 없는 사람에 의해서 해결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어서 역사의 불행으로 귀결될 수도 있음 입니다.
 
바로 오늘날 시대착오(時代錯誤)적인 가부장적 독재 권력을 억지로 유지하려는 북한의 모습에서 거짓의 논리로 권력을 일구어오고,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전술로 정권만 연장하는 위선성(僞善性)에서 바르지 못한 철학과 지도자의 오만이 낳고 있는 크나큰 한민족 역사의 불행을 우리가 묵도하고 있는 것이지요. 어떠한 우주논리와 학문의 정당성인지는 모르지만 이러한 수구좌파의 위선성에 동조하는 우리 사회내의 일부 세력들에게 전략.전술의 문제를 떠난 반(反)인륜성에 기반 한 북한정권의 본질에 대해서 국민들의 함의를 모아서 단호한 목소리로 물어야 합니다. 열정과 자기주장만으로 국가의 운영이 가능한 인류의 역사였다면, 오늘날 우리의 역사는 지금보다는 훨씬 발전하고 안정적이 되었을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바른 발전측면에서 보더라도 국민의 ‘일반의지(general will)’을 가장 잘 제도화하는 철학을 실천하고 공공복리(公共福利)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지배엘리트의 양성에서 국가의 운영의 흥망성쇠(興亡盛衰)가 달려있다는 실험을 뼈아프게 우리 선배들이 피땀으로 이룬 국익(國益)을 상실하면서 우리가 톡톡히 치루고 있지요. 그러한 역사의 진실(眞實)의 문제와 그리고 정권욕에 어두운 현실정치인들의 교언영색(巧言令色)과 불성실함을 보는 깨어있는 국민들의 아픔은 너무나 크고 깊기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간파하는 거짓과 위선의 역사는 ‘항상 힘을 갖은자의 논리로 전개되고 또 그 바탕위에서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리다가 그 시대가 마감한 다음에 평가를 받았기에 자기들은 살아서의 부귀영화에 만족 한다’고 소인배들의 반(反)역사적 논리를 들먹이고 있을지 모르지요. 아니면, 정말로 자신이 무지와 미숙함이 얼마나 큰 역사적 실책으로 훗날 국민들에게 큰 고통으로 다가갈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考察)과  사색(思索)에 대한 이유를 망각한 체, 혹은 이마져도 모르는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서 이렇게 어려운 시간들을 무슨 의도와 목적으로 잉태하는지 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오도된 권력이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담는 정책을 실천해온 과거의 역사에서 ‘민주주의의 결핍(democratic deficit)’을 이론적으로 그리고 지금은 현실정치구도 속에서 학자로서, 현실정치인으로서 느껴온 필자이기에, 우리사회에 팽배한 ‘출세지상주의 혹은 물질지상주의’에 매몰된 많은 지식인 및 엘리트 집단을 보는 필자의 마음이 무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신념과 가치는 헌 신짝처럼 팽개치더라도 대통령.장관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는 출세가도(出世街道)를 가는 것이, 마치 똑똑하고 한 세상에서 제일 잘 나가는 위인처럼 착각하는 지식 인 층이 많을 때 그 나라는 철학적 측면에서 정신건강에 멍이 들고 훗날의 희망을 일구는 건전한 역사발전의 추체세력이 적어져서, 종국에는 후손들에게 커다란 멍에로 다가 갈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 전에  한 장관임명자의 파동과 그의 비굴한 처신에서 이런 교훈을 얻기도 했습니다. 자리가 높아지고 자신의 권한이 커질수록, 더욱더 역사와 국민 앞에 겸손해지고 바른 길을 가려는 스스로의 노력이 없는 사람은, 한 나라의 주도계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나, 자신의 소인배적인 정치적인 이득과 주위환경의 족쇄 적 구조 때문에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탈하고 건전한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는 위장된 논리(論理)와 이론에 집착하는 것은, 민주를 가장한 ‘민주주의 결손(democratic deficit)’의 가장 큰 사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멀리서 한반도의 모습을 그려보니,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더불어서 지금 현세의 분단과 이로 인해서 빚어지는 우리사회내의 갈등의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위장된 논리와 강압적 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은 단시간의 목적에는 충실할 수 있지만, 결국 바른 철학과 목적의식을 갖은 역사의 대의명분(大義名分)에 패퇴하게 되어 있습니다. 불행한 것은, 정의(正義)가 승리하는 날까지 죄도 없는 일반 민초들이 보이지 않게 겪게 되는 물질적, 그리고 정신적 방황과 고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21세기의 정보통신시대, 지식산업시대, 지구촌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은 더 큰 눈으로 시야를 넓히고 자신과 가족의 영달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북한문제도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 모두 더 큰 관찰과 관심으로 바른 시각으로 그들의 문제를 보고 처방을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대북(對北)문제는 소수의 폐쇄적인 정책 입안자들이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생략한 자신들의 왜소한 민족철학으로 주도하고 있기에, 오히려 장기적인 관점에서 남북문제의 핵심을 흐리고 해결의 실마리를 멀게 하는 아주 우둔한 행진을 하고 있다는 걱정스런 단이 섭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본질을 건드리지 않고 땜방만 하는 처방으로 인류의 역사가 승리하는 것을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국민들의 표를 먹고 살아가는 현실적으로 불완전한 제도라 할  지라도 때로는 역사적 혜안을 갖은 깊은 경륜과 지혜의 소유자들에게서 의견을 구하고 현실적인 처방을 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지금 대한민국에 대통령을 하겠다는 많은 지도자가 있고 앞으로도 나오겠지만, 당장 눈앞에 있는 자신들의 정치적인 이득을 위해서 역사적 왜곡과 민의의 왜곡(歪曲)이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데에도 침묵하고 소리를 취하지 않는 못된 관행을 보게 됩니다. 그 좋은 예가 한미동맹의 근간인 한미연합사를 지탱해주는 ‘전시작전통제권문제’에 대한 대권주도들의 침묵과 그리고 이를 저지하기 이한 행동의 부재라는 생각입니다.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철학적 깊이를 이 정도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하는 역사적 불행이 있는 것이고, 이를 깨닫지 못하고 일부 정치인들의 선전선동에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국운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의 의사결정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는 국민들이 침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큰 목적의식을 새롭게 세운바탕위에서 민족적 자긍심을 일으키고, 대외적으로는 보편적인 인류의 문제를 간파하고 지구촌위의 편견과 가난을 몰아내고 보편적인 지구촌사회를 건설해나가려는 양심세력들과 연대하여, ‘정신적으로 아름답고 물질적으로 풍요로는 사회의 건설’을 위해서, 누가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온 힘을 합쳐야 할 것입니다. 역사(歷史)가 나를 알아주지 않고, 국민들이 그리고 지인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그들을 욕하고 탓하지 말고, 역사 속에서 거짓과 위선이 짧은 시간 숨 쉬다가 패망한 사실들을 직시하고, 오직 진실(眞實)과 용기(勇氣)로써 이 민족과 나라의 정의로운 선진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곳곳에 팽배한 유무형의 관념적 억압과 탄압의 쇠사슬을 분쇄하는 역사적 대장정(long march)을 열어가야 합니다.
 
한 나라나, 개인이나 큰 뜻을 이루고 역사를 주도하는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그 만한 희생과 노력을 요합니다. 요행히, 운과 시대적 상황으로 해서 얻은 권력이나 출세 길은 후세의 사가들에 의해서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큰  공명정대(公明正大)한 영광과 인류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오늘 조금 희생되고 힘이 들어도 바른 소리를 내고,  혼돈 속에서 방황하는 국민들을 일깨워서 공동체의 문제, 그리고 인류의 문제에도 한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는 요구를 할 수 있는 당당한 사회구성원이 되어야 합니다. 간신배(姦臣)와 소인배들이 온갖 권모술수(權謀術數)와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자신들의 영달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을 때에, 온 몸을 던져서 이를 저지하고 국민들의 부름을 일구어 낼 수 있는 당당한 대의명분(大義名分)의정치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일을 하는 성스러운 작업은 수상개화(樹上開花)의 정신으로 일구고 또 일구어 내야 합니다.
 
국민들은 비록 그 존재를 잘 모르고, 혹은 시류에 영합하는 세력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업신여기는 시간이 있어도 그의 철학이 바르고 그의 민족과 국민에 대한 사랑이 한 없이 강하고 깊을수록, 그러한 아픔과 고통의 시간은 더욱더 값어치 있는 모습으로 인류를 위해서 쓰일 수 있는 보석을 만들어내는 약이 될 것입니다. 한 시인(詩人)의 말대로, 누구나 예뻐하고 아끼는, 좋은 향을 내는 꽃이 되는 작업은 부단한 노력과 아픔의 골자기를 지나오지 않은 사람에게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다시는 인류의 역사에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전제로 한 동물군상과 같은, 물욕(物慾)과 이기적인 탐욕(貪慾)으로 자신만의 권력과 명예를 위해서 권력을 행사해서, 더 많은 국민들에게 불행과 고통을 주어 온 부끄러운 역사들이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대립의 정치경제문화구조, 그리고 같은 인간의 이름으로 지구촌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아와 폭력 그리고 인권유린의 현장을 보고서 아파하지 않은 문명인들이 많다면, 또 다시 우리 역사가 반복한 어두운 수렁의 역사를 다시 쓰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요즈음 cnn을 많은 시간 듣고 있노라면, 지구촌 뉴스의 70%가 중동전과 알카이다를 중심으로 한 테러전 이야기로 도배하고 있는 슬픈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 모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우선 우리사회 주변의 문제, 민족의 문제, 그리고  그 문제 해결이후, 지구촌의 문제로 눈을 돌리고 바른 철학과 바른 처방으로 우리 사회의 혼돈을 일소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진정한 민주사회, 국민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정당하게 반영할 수 있는, 편견(偏見)과 오만(傲慢)의 지도자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물욕과 권력욕, 명예욕에만 사로잡혀서 국민들에게 봉사를 할 수 없는 위인들이 하루빨리 자각하고 스스로 물러남으로써, 위대한 역사의 교훈을 존중하고 아끼는 사회건설을 꿈꾸어 봅시다. 이것이 시대를 앞서가는 지식인과 선각자들의 신성한 의무인 것입니다.
 
*필자/ 박태우(국제정치학박사, 시인), 이 글은 2006년 8월에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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