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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나누어 주는 행복한 마음

이미선 | 기사입력 2009/09/03 [15:41]
난 봉사를 많이 해보진 않았지만 봉사하는 마음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봉사의 세계에 한 발씩 다가가고 있다. 봉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분들에 비하면 무척 부족하기에 봉사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조차 참 쑥스럽지만, 봉사하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이런 글을 한 번쯤은 쓰고 싶었다.

내가 봉사에 대한 마음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장손 며느리로 제사와 명절을 지내면서부터이다. 아버님 댁에서 지내다 결혼 후 5년 째, 막내아들이 돌 때부터 제사와 명절을 지금까지 이십년 째 지내고 있다. 대소사 일을 치르면서 잘하지 못하는 음식솜씨로 나름대로 열심히 맛있게 음식준비를 해서 친지들을 대접했다. 친지들이 오셔서 맛있게 드시고 가면 참 보람되고 마음이 흐믓했다. 처음에는 음식을 못해서 힘겨웠지만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음식이 늘어가면서 조금씩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제삿상을 차려서 어른들과 조카들이 절을 할 때, 그리고 제사를 다 마치고 나서 음복하며 화목하게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면 제사 준비하느라 힘들었던 힘겨움이 다 사라져간다. 그러면서 내가 조금 이렇게 헌신하면 친지들이 좋아하는구나 생각했고 마음 한구석 따뜻한 기운이 온몸에 퍼지는 것이다. 내 몸 조금 희생하면 사람들에게 이런 기쁨을 줄 수 있구나 하는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남을 대접하면 내가 정신적으로 만족감과 행복감을 더 얻는다는 것을 조금씩 터득하면서 봉사에 대한 마음을 체험해 갔다. 이십 년 동안 제사에서 얻은 경험은 봉사하는 마음에 가까이 다가간 계기였고 내적인 성숙을 얻었다. 만약에 막내 며느리 같은 편안한 자리에 있었더라면 이런 내적인 성숙은 결코 얻지 못했을 것이다. 종종 사람들에게 많은 제사와 큰 일을 한다고 이야기하면 고생도 많이 하고 참 힘들었겠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사를 통해서 더 얻은 것이 많다. 큰며느리로 친지들에게 헌신하면 행복하다는 기쁨을 알게 되었고 내면적인 성숙과 성장이 왔다. 물론 음식 준비하기 힘들지만 한 해 두 해 세월이 갈수록 음식도 늘고 힘겨운 고비가 지나면서 정신적인 희열감이 오는 것을 경험했다. 물론 그런 마음이 든 것은 십 년 정도 지나서였다.

베품이란 것. 베풀어주는 것이 받는 즐거움보다 훨씬 더 내적인 충족감을 가져오고 행복하다는 것을 나도 모르게 알아갔다. 어쩌면 난 기관에서 봉사를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작은 나눔의 봉사를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1년 전에 장애인 재활원에 가서 6개월 동안 봉사했던 경험이 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중도에 관두고 말았지만 참 좋은 경험이었다. 나이가 이십 대인데도 몸과 마음이 열 살 아이들 같은 사람들부터 음식도 혼자 먹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옆에서 돌보아 주지 않으면 혼자 거동도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을 보면서 참 안타까움이 많았다.

그렇게 정상인들에 비해 부족한 면들이 많지만 영혼은 호수처럼 아주 맑았다. 그중에서 어떤 아가씨는 시를 쓰는데 시가 얼마나 맑은지 모른다. 돌보고 떠나려고 하면 우리와 헤어지기 얼마나 아쉬워 하는지. 정상인보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보지 않아서 사람들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모른다.

그들을 보면 가슴이 아픈 적이 많았다. 평범한 행복조차 누리지 못하는 그들이 안타까워 보였다. 그들을 보면서 이렇게 두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고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시실이 참 행복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 앞에서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미안한 일이었지만...

봉사를 하는 사람이 봉사받는 사람보다 더 행복을 느끼는 것이 맞는것을 경험했다. 짧은 시간 그들을 돌보고 집에 오면 그 날은 잠을 자지 않고 꼬빡 지새워도 맘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행복감이 몰려와서 잠도 안자도 피곤하지 않을 만큼 좋았다.

봉사를 열심히 적극적으로 하는 분들의 얼굴을 보면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기쁨과 충만감으로 가득차 있다. 난 아직도 그런 경지에 이르려면 한참 멀었다고 생각하지만 나누고 베풀고 오면 희열감이 왔고 봉사가 맞는다는 사실을 그 때 경험했다.

봉사는 남을 위해서 하지만 반대로 봉사하는 사람의 마음이 더 마음이 좋고 행복을 얻는다. 난 아직 봉사를 많이 해보지 않아서 나눔과 베푸는 마음을 깊이 알지 못하지만 봉사하기 좋아한다. 아직 가정적으로도 무척 바쁘고 여러 가지 개인적인 일로 여건이 안 되니 마음만 남겨두고 있다. 예전에 다니던 재활원에 다시 그 사람들을 돌보려고 다시 그 곳에 가려고 하고있다.

한 달 전부터 내가 일하고 있는 계간 문학지에서 문학 일을 하고 있다. 어떤 일이든 봉사의 세계에 있는 셈이니 위안이 된다. 오늘도 하루 종일 문학지 한 권 교정을 보느라 무척 힘들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문학일인데다가 남들에게 도움주고 봉사할 수 있어 스스로 대견했다. 혼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하니 좋았다, 이러면서 내 마음이 조금씩 성숙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봉사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그 세계에 가까이 다가가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하면 좋다, 얼마전에 근처 복지관에 문의를 해보았는데 복지관 식당에서 일할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주방에서 음식을 해도 되고 설거지라도 돕는다면 그것이 봉사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그곳에 가서 주방 일을 도우며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내년엔 막내아들이 대학에 가니 몸과 마음이 좀 한가해서 열심히 봉사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집살이 
 
지난주 목요일 모처럼 대학 친구들을 만나고 왔다. 캠퍼스에서 대학 4년의 낭만과 추억을 고스란히 함께 보낸 친구들이다. 친구들 모습이 바로 내 모습으로 비추어졌다. 나이가 들어가니 학창시절 친구들이 참 그립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객지에서 나이들면서  맘에 맞는 친구들을 만나기 참으로 어려운 일이니 학교 때 친구들이  제일 편하고 스스럼 없어서 학교 친구들을 자주 만난다.
 
대학 친구들은 거의 성장한 시기에 가치관이 뚜렷한 나이에  만나서, 서로 주장이나 개성이 있어서 이야기 나누기에 아주 명쾌하다. 그리고 친구들 다 하나같이 가정에 충실하다. 시댁에도 잘하고 착하게 순종하고 사는 것 같다. 그런데 아쉽게도 친구들 둘은 만날 때마다 시집살이에 대한 고충을 털어 놓는데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이 겪는 시집살이가 다 내가 겪는 것처럼 속상해서 시집살이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즈음은 시대가 바뀌어서 거꾸로 시어머니가 시집살이를 한다는 시대가 되었다지만 진정 그러한지 잘 모르겠다. 요즈음엔 김치를 며느리에게 갖다 주어도 경비실에 맡기는 시어머니가 제일이며, 시어머니가 아들 집을 잘 못찾아오게 월드 메르디앙같은 영어 이름으로 아파트 이름을 짓는다는 세간에 유행하는 이야기가 재미있게 들린다.
 
그래도 마흔 후반의 우리 세대는 며느리로 시집살이를 많든 적든 설움을 겪은 사람들이 많다. 친구들 이야기도 들어보면 대단한 시어머니들이 많다. 며느리한테 함부로 언어 폭력을 하는 것은 예사이고, 딸은 여행갈 때나 즐거운 일이 있을 때나 부른다. 궂은 일은 모두 며느리를 시킨다고 참 힘들다고 한다, 우리 며느리들도 다 친정 집에서 곱게 사랑받고 자란 귀한 딸인데, 배려하지 않고  쉽게 함부로 대하는 시부모들이 의외로 많다. 결국 시어머니도 시집와서 수십 년 살면서 그 집안에서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은 것인데도 말이다.
 
시어머니도 시집와서 다 어려운 일 겪었을 처지로 다 며느리의 마음을  헤아릴만도 한데 결혼해서 며느리가 들어오면  스트레스를 주며 마음고생을 시킨다, 간혹 좋은 시어머니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 시어머니 세대들은 우리 세대보단 더 독하고 매서운 시집살이를 겪었을텐데 다 알면서 며느리에게 독한 시집살이를 시키는 심리를 무엇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나도 시집살이 했으니 며느리도 똑같이 겪어야 한다는 심리일까? 보통 시집살이 독하게 한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더 힘들게 고생시킨다는 통계가 있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힘들게 하면 남편과의 애정 전선에도 문제가 온다. 아들 부부사랑도 식어진다. 어른이 옆에서 자꾸 힘들게 하면 그 여파가 남편에게 가서 부부사이도 소원해지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러니 아들있는 시어머니들은 나중에 며느리를 얻을 것을 대비해서 지혜롭게 며느리를 대하는 방법을 미리 연구해보면 어떨까 ? 아버지 학교도 있듯이 시어어머니 학교 교육도 있으면 좋은데 아직 드문 것  같다,
 
아들 부부를 행복하게 해주려면 며느리에게 잘해 주어야 한다. 며느리도 내 자식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에 안드는 면을 보듬어 주고 지혜롭게 며느리를 감싸며 내 집안 사람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 난 며느릴 얻으려면 세월이 더 있어야 하지만 후일 얻을  며느리를 그런 마음으로 보듬어 주려 한다.
 
남편 역할도 중요하다. 친구들도, 남편이 시어머니와 아내 중간에서 역할을 못해서 시어머니편만 드니까 남편이 밉고 마음의 앙금이 생겨서 애정도 없어진다고 한다. 남편도 두 사람 사이에서 잘해야 하고 어른도 역할을 잘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주위를 보면 지혜로운 어른들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우리 세대가 바로 후발 주자로 아들 며느리 서로 사랑하고 잘 살게 어른 역할을  잘 해야 하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시댁에 처음 시집온 며느리에게 조금만 배려해 주면 며느리가 적응하기에 어려움이 없는데, 처음에 맘에 안든다고 힘들게 하면  며느리에게 심한 상처를 준다. 처음에 잘해주면 며느리가  시부모  마음을 알고 나중에 시부모가 나이들어 중병이 걸리거나 힘들 때 잘해준다, 이런 이야기는 주위에서 들은 이야기와 경험한 것을 종합해서 생각한 것들이다.
 
 우리 옛 조상들의 시집살이가 궁금해서 자료를 조사해 봤던 난 무척 놀랐다. 시집살이가 당연히 우리나라의 보수적인 가치관에서 흘러나온 것인줄 알았건만, 오랜 세월동안 제도적인 것에서부터 시집살이가 굳어지고 이루어 진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고구려의 데릴사위에서 유례가 된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 은 고려를 이은 조선의 혼인 풍습이었다. 남귀여가혼은 혼인 후에 남자가 여자 집에 머물러 생활한다. 이것이 조선의 기본적인 풍습이었고 장가간다는 것이 일반적인 말이었다. 이런 예가 있다.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이 결혼 이십 년인 마흔의 나이에, 율곡과 다른 자식들을 데리고 친정인 강릉을 떠나 시집인 한양으로 올 때 발길이 안떨어진다는 애절한 한시까지 지은 심정과 정경이 남귀여가혼의 혼인 형태이다..
 
그러나 유교를 본보기로 삼고 왕권을 강화하려던 조선의 세종은 중국의 결혼제도인 친영제도(親營製度) 로 결혼제도를 바꾸려 한다. 친영제도란 지금의 결혼제도처럼 부인이 남편 집에 들어와서 사는 것이다. 세종은 즉위한 지 십칠 년에 본인의 혼인을 친영제도로 치르며 사대부들과 민중들에게 친영을 강요한다. 이것이 시집살이의 기원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제일 과학적이고 창조적인 글자인 한글을 만들고 조선을 번영하게 만든 세종대왕이 이런 제도를 만들어 오늘날 우리를 이렇게 시댁에서 마음고생 시키게 하다니 ...,그렇게 많은 업적을 남긴 휼륭한 분이지만 솔직히 인간적으로  편안하게 받아들이기 힘겨웠다.
옛 조상들이 만들고 행한 결혼제도의 후유증으로 현대인들인 우린 아직도 은근히 시집살이를 하고 있지 않은가. 만약에 고려의 결혼제인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 이 지금까지도 이어졌다면 우리는 시댁에서 구속과 설움 없이 맘편하게 당당하게  살 수 있을텐데...
 
역사의 수레바퀴속에서 옛부터 우리 여인들의 시집살이가 내게도 이어져 내려오는 것 같아 가슴이 아리다. 우리 조상의 여인들이 얼마나 심한 모진 시집살이를 겪었을지 미루어 상상이 간다. 요즈음엔 시어머니가 거꾸로 시집살이를 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며느리 시집살이가 일반적인 통념인 우리 사회에서 며느리 시집살이가 점점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자로 태어나 불합리하게 대접 못받는 것도 서러운데 시집살이까지 겪어야 하는건지 의구심까지 생긴다.
  
앞으로 계속 당당한 모습으로 우리 여인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와 똑같은 인간으로 자존감을 지니고  아주 소중한 존재로 우뚝 설 날이 오길 기원한다.
 
 
이미선 프로필
 
강릉 출생
 
숙명여자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한국 예총 <예술세계> 수필 등단

 
한국 수필가협회 회원

 
 





  

 


이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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