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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투명한 그림은 그림의 밑바탕을 전혀 알 수가 없다. 잘못 그려진 그림에 다시 덧칠하여 작품을 완성하더라도 당초의 밑그림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가 없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깨끗한 물 속을 들여다 보면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고 혼탁한 물을 바라보면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과 같다.
수채화는 붓 터치를 한번이라도 잘못하게 되면 그림을 버리게 된다. 그래서 수채화를 그릴땐 채색의 순서나 물감의 배합 등을 아주 세심하게 하지 않으면 의도하는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없는 그림이다.
여백의 미를 느낄 수도 있고 여러 겹으로 채색된 투명한 색깔들이 하얀 켄트지에서 서로 혼색하여 다른 색으로 보여지게하는 기법은 수채화가 아니고서는 느낄 수 없는 매력중의 하나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색감의 투명함을 통해 화가의 생각도 읽을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매력이다.
잘 그려진 수채화를 보면 마음이 평온해 진다. 유리를 통해 바깥 자연의 아름다운 그대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소재가 수채화속의 완성된 피사체로 표현될 때, 투명한 색들의 만남으로 이뤄지는 미적인 완성도는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감상법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 수채화는 마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맑은 마음은 느낌으로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둡고 불투명한 마음은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가 없는 법이다. 그러나 밝고 투명한 마음은 상대로 하여금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와 순수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마음이 어둡고 불투명하면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수채화 또한 투명하지 않으면 수채화로서의 가치는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만남의 모양을 통해 일상의 삶을 이루고 있다.
눈을 뜨면 가족과의 만남으로 시작해서 문밖을 나서면 많은 사람과의 만남이 시작된다.
만남은 인간적 교류라는 고리를 통해 어떤 결과를 이루기 위한 필연적인 사회적 과정이다. 어떤 만남을 오래 유지하려면 서로의 마음이 투명해야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수채화 물감은 예민하여 혼색이나 채색방법상이 잘못되면 혼탁한 색으로 변해버린다. 심할 경우엔 화면이 뿌옇게 되기도 한다. 투명하고 신선한 맛도 단 한 번의 잘못된 겹 칠로 생기를 일시에 잃어버린다.
즉, 물감을 잘 배합하여 투명하게 그림을 그리다가도 혼탁한 물감 한 방울 잘못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투명했던 색깔은 금 새 어둡고 탁한 색깔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만남이라는 일상이 불투명함으로 이어 진다면 그 만남은 혼탁해지기 마련이다. 진실과 순수성은 찾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거울 같은 순수성과 맑음, 그것은 서로에게 진실성과 믿음을 준다.
검은 커튼과 같은 장막으로 둘러싸인 마음이라면, 그리고 그런 만남이라면 오래가지 못할 것은 뻔하다.
일상 속의 만남은 어떤 모양이어야 할까. 투명하고 잘 그려진 수채화는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수채화 한 폭을 보며 나의 마음은 어떤 맑은 물감으로 채색돼 있을까하고 돌아본다.
이혜순 서양화가. 경기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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