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신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중문화 콘텐츠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화랑세기』덕분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화랑세기』는 신라인 김대문이 그의 조상을 기리며 풍월주(화랑의 우두머리) 32명의 전기를 정리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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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끔 술자리에서 “신라가 삼국을 통합하지 않았다면 우리 국토가 이렇게 쪼그라들지 않았을 것이야”라는 얘기를 하며 비분강개하기도 한다.
그렇다. 지금까지 신라 그리고 김춘추는, 이른바 ‘민족 형성사’로서의 고대사에서 ‘과거사 청산’ 대상 1호였다. 김춘추의 신라, 신라의 김춘추는 삼한통합의 원대한 꿈을 이루어 오늘날 한국인을 있게 한 장본인이다. 그런데도 거대한 외세 당나라에 사대해 동족(同族) 백제와 고구려의 자랑찬 역사와 문화를 짓밟은 파렴치하고 패륜적인 세력 정도로 치부되고 있다.
연구자들 중에서도 많은 수는 신라가 수행한 삼한통합(이른바 삼국통일)의 의의는 인정하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데 동원된 방법에는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하는 게 현실이다.
심하게 말해 ‘공공의 적’으로까지 평가절하 된 춘추와 대신라(통일신라). 이런 평가에 대해 저자는 ‘춘추’에서 관학파가 민족사학이라는 이름으로 김춘추와 신라에 가한 테러라고 말하며, 이런 평가가 나오기까지의 한국 사학계와 교육 현장에서 일어난 일들을 차근차근 추적하여 바로 잡고 있다.
1945년 이후 해방 공간의 사학계에서, 김춘추와 그가 건설한 대신라는 ‘한민족의 웅혼한 기상을 앙양’하기 위한 프로젝트인 ‘민족사’ 구축의 첫 번째 희생 번제(燔祭)가 되었다. 왜 하필 그들이었을까?
저자는 이른바 ‘민족사’라는 한국사학의 계파에 주목한다. ‘관학파(官學派)’는 ‘민족’이라는 개념을 한국고대사에 도입·적용해, 논의의 핵심을 ‘민족’의 문제로 치환했다. “국민은 민족”이고 “한국사는 민족사”라고 명토 박아, 한국 역사 속의 모든 나라와 그 안에 살았던 모든 사람을 단군의 자손인 한민족(韓民族)이라 규정했다.학문 권력을 장악한 이들의 표적이 된 게 바로 김춘추와 신라였다. 당나라라는 거대한 외세와 결탁해 ‘동족’ 백제를 치고, 나아가 ‘만주벌판을 말달리던’ 고구려의 ‘웅혼한 민족 기상’까지 거꾸러뜨려 놓고선, 그것을 통일 대업의 완성으로 포장했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1974년 이래 국가가 주도해 만든 국정교과서 고등학교 『국사』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신라의 삼한통합은 이른바 ‘불완전한 통일’로 규정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후 김춘추는 을사오적에 준하는 반민족 행위자의 표상이 되었다.
저자는 이 점을 분명히 밝히는 데서 시작하고, 또한 끝맺는다. ‘민족’ 개념이 일제 강점 이후 이 땅에 유입되고 사용되기 시작했음을 도외시한 채 관학파는 십수 세기 전의 역사에까지 ‘민족’을 소급 적용해 고대사를 연구하는 촌극을 벌여왔다. ‘단군의 순수 혈통을 물려받은 단일민족’의 이념을 발명해 국민에게 강요한 이들의 역사하기는, 결국 오늘날 한국인의 왜곡된 역사의식에 단초를 제공했다. 김춘추와 대신라, 바로 그 시대의 역사를 올바로 재구성하는 데서, 저자는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한국·한국인의 근원(origin)’이라는 말로 그의 업적에 대한 위와 같은 구구한 설명을 압축한다. 김춘추, 그리고 신라(혹은 대신라)를 한국·한국인의 기원으로 보는 데에는 분명한 역사적 근거가 있다. 한국인의 대다수가 신라인을 시조 또는 중시조로 하는 김(金), 이(李), 박(朴), 정(鄭), 최(崔), 손(孫) 등을 성으로 하는 씨족에 속해있다는 간단하고도 명쾌한 현실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는 자명하다.
한마디로, 춘추는 삼한통합이라는 대역사(大役事)를 기획해 추진했고, 생전에직접 백제를 평정함으로써 그 길의 과반(過半)에 도달했다. 그의 아들 문무왕은 선왕의 유지를 이어받아 고구려를 평정하는 데 성공했고, 통합된 삼한을 병탄하려는 야욕을 드러낸 과거의 우방 당나라를 격퇴함으로써 삼한통합의 대업을 완성했다. 그 과정에서 백제와 고구려의 혈통은 도태되어갔고, 문화 등 사회 제분야 역시 신라의 사회 체제에 흡수되었다.
서로 정복하느냐 정복당하느냐라는 절체절명의 운명을 안고 피 튀기게 싸운 삼한의 각 나라는, 동족의식이라는 것은 알지도 못한 채 자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투쟁했다. 그 결과는 바로 신라의 삼한통합으로 귀착되었다. 고려, 조선을 지나 현재에 이르는 한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결국 신라의 혈맥과 역사적 유산만이 계승되고, 백제와 고구려의 존재는 역사의 저편 어딘가에 조용히 안장된 것이다. 이 모든 역사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수원(水原)에 춘추가 당당히 앉아있다.
저자는 이러한 춘추의 일대기와 그의 활동으로 성사된 삼한통합의 과정을, 다양하게 수집한 역사 자료의 교집합을 통해 생생하게 재구성해냈다. 신라사의 진면목을 알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가뭄 중 단비와 같은 자료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