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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프러포즈'의 재미와 한계 몇 가지

기본적 대비기법 속의 웃음과 비극의 적절한 배치

김헌식 | 기사입력 2004/10/22 [18:23]

드라마가 현실을 완전하게 반영할 수 없듯이 드라마를 완전하게 평가 분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드라마 <두번째 프러포즈>에서 보이는 흥미로운 요소와 그 한계에서 몇 가지 의미 있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먼저 <두번째 프러포즈>가 눈길을 잡아끄는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다.

- 기본적인 대비법의 지속

새로운 행복을 찾은 남편 이민석(김영호 분)과 황연정(허영란 분)의 행복한 모습 반대편에서는 장미영(오연수 분)의 고통스럽고 초라한 모습이 대비되는 화면이 배치된다. 이렇게 될 때 비극성을 최대화되고 장미영의 상황이나 눈물에 공감을 일으킨다.

- 약자에 대한 동정심

장미영은 이혼과 함께 하루아침에 경제적인 여력이 없는 약자가 되어 버렸다. 중산층 주부에서 하루아침에 극빈층으로 떨어진 셈이다. 여기에 아이들까지 잃었다. 경제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가치관이나 정체성의 극심한 혼란이 일어났다. 이렇게 된 것은 자신이라기보다는 외부적인 요인이 크다는 데 동정심이 더한다.

- 불안 심리 자극

이러한 불안심리는 한국 사회의 사회 심리와 밀접하다.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지 못한 많은 여성들의 많은 현실에서 이러한 상황은 비단 드라마의 상황이 아니라 많은 여성들의 일상일 수 있다. 또한 실제로 남편의 사랑 찾기뿐 아니라 외도으로 많은 여성들이 이러한 불안을 경험하여 왔고 그럴 가능성이 많다.

- 동조과 동일시 현상

불안과 충분한 개연성, 사회적 위치에 대한 공감에 따라 동일시와 동조 현상이 일어난다. 장미영이 겪고 있는 상황은 단지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일이라는 시청자들의 동조와 동일시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동조와 동일시는 시청자 몰입을 증폭시킨다.

- 절대 악인의 배제

그런데 이렇게 장미영이라는 주인공을 슬프고 애절한 구렁텅이에 떨어뜨린 인물들이 절대 악인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절대 악인이 주인공을 비참하게 만들었다는 설정은 식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전적인 멜로물 그칠 수 있다는 점을 잘 고려한 것이다.

또한 절대 악인의 설정은 이분법적인 통속 복수극 인상을 주어 식상하게 한다. 드라마에서는 이러한 이민석과 황연정의 인간적인 고민과 갈등을 배려하면서 상대적인 관점도 넣고 있어 장미영을 찬성하지 않는 쪽까지 포괄하는 방식을 겨냥했다.

- 전개될 성공과 보복에 대한 흥미

단지 이혼해서 고통은 받았지만 남편과 다시 재결합한다는 식의 설정이 아니라 장미영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름대로 성공 이야기를 펼쳐간다는 암시와 가능성의 내비침은 이혼과 고통을 어떻게 승화하여 결과를 만들어낼 지 궁금하게 만든다.

- 나름의 부와 경제적 독립에 관한 소신

장미영은 남편이 준 위자료와 재산을 받지 않는다. 그러면서 마음을 가져가 버렸기 때문에 돈은 필요 없다고 말한다. 또한 호텔에서 팁을 되돌려주는 것이라거나 보스(정형일)가 제안한 내용을 거절하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보스는 돈만 밝히는 젊은 여자애들은 필요 없고 자신을 옆에서 보필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강남아파트 한 채, 차 한 대를 주고 3년 동안 부장급 대우의 월급을 주며 계약이 끝나면 1억의 위자료를 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장미영은 가난하지만 아이들과 할 삶이 있다면서 거절한다. 이러한 점은 다른 드라마들에서 자주 보이는 신데렐라 콤플렉스나 부에 대한 무분별한 동경을 경계시키며 차별화 시키는 것이다.

- 웃음과 비극의 적절한 배치

다루자면 한없이 비극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상황 개입이나 대화들을 통해 웃음을 주면서 비극과 희극의 주기적인 조율을 이뤄내려 했다. 이를 위해 재미난 조연들을 배치하는 걸 잊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요소 외에 지적할 점도 있다.

지나치게 남자가 버리고 간 이후의 상처에만 함몰되는 경우에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난다. 독자적인 생활 영역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생활하는 여성들에게는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가족과 그 속의 남편 사랑만이 절대적인 기준인 것으로 오해를 준다. 오연수라는 인물을 너무 경제적 무능력자로 부각시켜 극적인 상황을 과장한 면이 있다. 이 때문인지 무엇보다 오연수의 눈물에 호소하는 것은 이제 역효과 낼 시점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수많은 여성들이 억척스럽게 젊은 시절부터 생활 전선에서 노동을 해오고 있다는 점을 본다면 장미영이라는 캐릭터의 뒤늦은 고생은 그렇게 비극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글·김헌식(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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