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허약체질의 제약업계에 대한 보약 처방에 나섰다. 신약개발을 위한 2조원대 펀드를 구성하고 연구개발이 우수한 기업에는 약가 인센티브도 부여한다고 한다. r&d비용에 대한 세액도 공제해 주는 등 국내 제약업계의 취약점을 보완할 다양한 방안들을 제시하며 제약업 살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런데 반응은 영 신통치 않다. 건강하라고 육성안을 처방해 줬는데 정작 당사자인 제약사들이 환호를 보낼 수 없는 속내는 따로 있다.
최근 정부는 제약 산업의 시장경쟁력을 높이고 신약개발 및 산업구조 혁신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나갈 수 있는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2월5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9개 관계부처 합동으로 위기관리대책회의를 열고 ‘제약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논의·확정했다. △신약 r&d 촉진 △산업구조 혁신을 위한 인프라 확충 △의약품 유통구조 개선 △해외시장진출 활성화 △국가적 질병에 대한 연구지원 확대 등 5대 핵심 과제 선정과 이에 대한 적극적인 추진이 골자를 이루고 있다.
r&d 지원 2조원 펀드 조성
정부는 ‘향후 30년 내로 글로벌 신약 16개를 만든다’는 당찬 포부 아래 신약 r&d 활성화를 위한 적극적인 지원에 나선다. 연구개발에 투자를 많이 하는 곳에 인센티브를 제공해 신약 개발에 대한 제약사들의 관심과 의지를 높여 국내 신약개발 시장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r&d 비용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세계최고 수준인 20%(중소기업 30%)로 확대하고 지난해 지식경제부가 700억원 규모로 조성한 ‘바이오-메디컬펀드’의 자금을 확충, 5년 내 2조원 규모의 펀드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시중 여유자금이 신약 r&d투자에 활용되도록 하는 것이다.
약가제도를 개선하고, 약가 결정기간을 단축하는 것도 포함됐다. 또 신약개발의 구심적 역할을 할 ‘신약개발 컨트롤타워’가 생겨나며 우수 외국인재의 국적 취득요건이 완화하고 바이오 전문 인력 양성사업을 확대하며 신약개발 전문 강좌도 개설한다. r&d를 많이 하는 제약사에 약가를 높여주고 세금을 낮춰주는 식으로 신약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m&a로 제약업계 다듬기
산업구조 혁신인프라 확충의 일환으로는 제약사들의 m&a를 적극 유도해 올해부터 m&a 자금도 지원하며 m&a 세제 역시 선진화할 전망이다. 또 내년 상반기 안에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바이오협회 등에 m&a 지원센터가 신설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제약사들의 기술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한 인프라가 구축되며, 제약벤처기업에 대한 기술보증지원도 확대된다. 해외시장 진출 활성화를 위해 지원센터를 확충하고 gmp(우수의약품의 제조·관리의 기준) 선진화 및 인력양성과, 지역임상시험센터를 확대하고 아시아 바이오제/제약 협의체 구축을 위한 방안도 올해 안으로 마련될 예정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신약을 잘 개발하면 막대한 수익을 거둘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공헌할 수 있는 것이 제약산업의 특징”이라며 “세계 1위 제품인 리피토의 경우 연간 매출이 136억 달러에 달하여 자동차 130만 대 수출분과 맞먹는 효과가 있다”고 제약산업의 육성 필요성을 못박기도 했다.
윤 장관은 이어 “이번 종합 방안을 통해 정부의 r&d 지원체계를 효율화하고 새로운 질병에 대한 연구지원도 강화해 나갈 것”이라며 “제약업계도 산업구조 혁신과 유통구조 개선 등에 자구 노력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국내 제약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 의약품 시장은 7731억 달러(2008년 기준)에 달하며 이는 456억 달러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17배에 달해 노다지 시장으로 볼 수 있다.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선도기업 배출 시급
또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고령화 인구가 늘어나고 신종플루 등 신종 전염병이 출몰하면서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제약 산업의 규모는 날로 커져 2020년에는 1조3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약산업의 발전은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 의지가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국내 제약업계는 영세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세계적인 선도 기업이 배출되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시각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약기업 스스로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데 무리가 있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 강화와 더불어 강력한 동기부여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분석이다.
물론 국내 시장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08년 기준 제약 산업 총생산액은 전체 gdp 대비 1.3%에 이르는 약 13조9000억 원이며 이는 세계 시장의 약 1.5%를 차지한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의 제약생산 연평균성장률은 9.6%로 전체 gdp 5.5%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국내 제약사는 총 874개에 이르며 평균 생산액이 157억이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제약시장이 날로 급성장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 제약업계의 신약 개발은 부진한 실정이며 이 때문에 메이저급 제약사로 성장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신약 개발은 성공만 한다면 높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지만 평균 3억~10억 달러 정도의 많은 투자비용과 평균 10년에서 15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공제 효과 당장은 힘들어
이처럼 쉽지 않은 신약개발 투자를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나섰지만 정작 제약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우선 정부가 내놓은 기준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의견이다.
정부는 r&d 투자 장려를 위해 r&d 투자액이 500억원 매출액 대비 r&d 비중이 10% 이상인 제약사에 대해 기등재약 목록정비 사업에서 약가 인하 대상에 포함될 경우, 인하폭의 60%를 면제해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세액공제는 그동안 제약 업계가 지속적으로 정부에 요구해 온 것이 구체화된 것뿐이며 정작 정부가 내세운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약사도 몇 안 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전체 제약업계 중에 이 두 조건을 만족시키는 곳은 lg생명과학과 한미약품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국내 제약사의 평균 연 매출액은 157억원에 불과하며 매출액이 500억원 미만인 기업이 전체의 74%에 달한다. 2009년 매출액이 5000억원을 넘는 기업은 한미약품과·동아제약·녹십자·유한양행·대웅제약뿐이다.
하지만 한미약품을 제외하고는 매출액 대비 10% 이상이라는 연구비 투자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제약사들은 올해 당장 수백억 원을 들여 r&d 비용을 대폭 늘려야 한다. 지난해 700억원가량의 연구비를 쓴 동아제약은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최소 985억 원을 투자해야 한다. 이는 전년 대비 195억원가량 더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또 유한양행은 매출액 대비 10% 이상 연구비를 투자하려면 전년보다 445억원의 연구비용을 늘려야 하며 대웅제약 역시 336억원의 투자액이 필요하다. 수백억원이 드는 만큼 중소 제약사는 감히 엄두도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설사 지원을 받더라도 신약개발이 하루 이틀 걸리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당장 효과를 보장할 수 없는 r&d 투자에 대한 제약사의 망설임은 여전할 것이라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과연 세제혜택을 받은 연구비가 실제로 신약개발에 쓰일지에 대해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1944년부터 2007년까지 정부의 생명공학 육성기본계획으로 여러 제약사들이 연구비를 탔지만, 일부 제약사들은 이 돈으로 땅을 사고 건물 짓는 데 열을 올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번 육성안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올해 연구개발비를 늘리는 제약사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중소제약사들은 정리?
m&a를 통해 중소 제약사를 통폐합해 국내 완전제약품 제조업체를 50여 개로 개편하겠다는 것 역시 중소 제약사들이 실제로 혜택을 볼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m&a 활성화는 대형 제약사들의 중소 제약사에 대한 흡수합병 정책에 불과하며 m&a 전용펀드 역시 규모가 작아 효용가치가 없을 것으로 제약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한 중소 제약사 관계자는 “그동안 너무 많은 제약사가 난립하고 있어 이를 정리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이 반영된 것뿐 실질적인 혜택은 없다”고 말하며 “대형제약사에서 중소 제약사를 m&a 할 때 편의성을 봐준다는 정도로 밖에 안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래저래 중소 제약사들의 고통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혈압약 73% 퇴출 위기
제약업계가 r&d 투자에 망설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2월5일 열렸던 기등재 의약품 목록정비 본 평가에서 “다른 계열의 약물을 포함해 고혈압 약제 효과가 다 똑같다”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제약업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이뇨제·베타차단제·칼슘채널차단제(ccb)·ace-i·arb·알파차단제 등 모든 고혈압 치료제 사이에 혈압 강하 효과 차이가 없고, 전체 사망률·이환율 등 고혈압 합병증 예방 효과에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연구책임자인 서울대학교 김진현 교수는 “국내외 문헌과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를 실시한 결과 (고혈압치료제)의 계열 간 차이가 있다는 자료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가장 최소의 급여제외 품목을 산출하게 되는 상대적 저가 하위 33%와 계열 최소비용 하위 10%를 적용하게 되면 전체 832품목 중 228품목(27.4%)만이 급여를 유지하게 된다. 최소 73% 정도의 고혈압치료제가 퇴출된다는 결론인 셈이다.
이는 가장 최소의 급여제외 범위를 계산한 것으로 또 다른 대안인 상대적 저가 범위와 계열 최소비용의 범위에 따라 퇴출되는 의약품은 더 늘어나게 된다. 특히 청구액이 가장 많은 arb 계열의 경우 총 181품목 중 29품목인 16%만이 급여유지를 하게 돼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제약업계는 허탈하다는 반응을 감추지 못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극단적으로 말해 50년 전에 나온 베타차단제와 최근에 출시된 arb 제품의 효능이 같다는 이야기”라며 “arb 제제의 경우 베타차단제 보다 훨씬 이후에 출시되면서 그 만큼 막대한 신약 r&d 비용이 투입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 하면 제약업계의 80%가 문을 닫아야 한다”며 울분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확정된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관계자는 “연구진의 연구내용을 토대로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사회적 가치 반영 요소 등을 고려해 평가할 예정”이라며 “업계 의견을 받은 뒤 연구자의 검토를 거쳐 최종 보고서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결과가 어느 정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책임자인 김진현 교수가 설명회 내내 고혈압치료제 목록정비를 위한 연구 방법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 점으로 보아 현재 결과에서 크게 수정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평가로 인한 제약업계의 타격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목소리다.
약값 내리고 문닫을 판
제약사들의 목을 죄는 것은 또 있다. 정부가 건보재정 안정과 유통시장 투명화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저가구매 인센티브제(시장형 실거래가제) 역시 국내 제약업계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리베이트 근절을 목표로 오는 2월 말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저가구매 인센티브제는 병원이나 약국이 정부에서 제시한 약가보다 저렴하게 의약품을 구입하면 구입한 금액의 일부를 인센티브로 지급하는 제도로, 현행 실거래가상환제를 대체하는 것이다.
하지만 제약업계에서는 의료기관에는 이득이지만 상대적으로 제약사에는 손해라며 반대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복제약 의존도가 높고 영업력과 자금력이 취약한 중소제약 업체들은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국내 중소 제약사 관계자는 “저가구매 인센티브제가 도입될 경우 약 50~60개 제약사를 제외하고 모두 정리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대부분의 중소제약사가 이 순위 안에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일본과 대만의 예를 들며 대만은 저가구매 인센티브제를 시행해 지난해 한화로 5444억원의 약제비를 절감했으며 일본은 2008년 5.2%의 약가인하 효과를 봤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인센티브제가 리베이트를 근절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동안 제약업계의 몸집 키우기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진 리베이트 문제가 제약사들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리베이트 쌍벌 제도 촉구
하지만 제약업계는 리베이트 근절을 위해서 제약사뿐만 아니라 받는 쪽도 처벌한다는 ‘쌍벌제도’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 소속 최영희 의원은 지난 2월4일 의약품 리베이트 대가로 경제적 이익을 취득한 의료인·의료기관 개설자·의료기관 종사자·약사·한약사를 5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발의안에 따르면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개설자 등이 금품·노무·향응 등 경제적 이익을 취득한 경우 50배에 상당하는 금액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내부고발 활성화를 위해 고발자의 신분보장과 신변보호를 규정하고 있어 제약 리베이트를 척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리베이트를 제공하다 적발될 경우 제약사는 벌금형을 받지만 제공받는 측은 자격정지와 같은 행정처분으로 끝나 한쪽에 불리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리베이트 근절을 위해서는 제약사는 물론 받는 쪽도 리베이트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을 만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리베이트를 근절시키고자 하는 노력의 시작일뿐이다. 공정위와 경찰·검찰·식약청에 이어 복지부도 리베이트 관련 수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제약업계의 내우외환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제약사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제약업계 육성방안은 장밋빛 미래를 위한 ‘당근’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제약업계의 목을 죄고 있는 약가 인하나 리베이트 문제라는 현실의 ‘채찍’도 여전하다는 것이 업계의 목소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