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전설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 까. 그러나 46명의 영령들은 어떤 선택의 여지도 없이 죽어 동해의 수호자로 남겨졌다. 너무 ‘잔인한 4월’이다. 안타까움과 가슴 먹먹함에 일상의 손마저 놓게 한다. 15일 실종자들의 시신이 속속 도착한 평택 해군 2함대는 하루 내내 유가족들의 절망과 애통함, 동료 장병들의 울음으로 뒤덮였다.
아들의 주검을 막상 접하자 “우리 새끼 어떡해, 내 새끼야”라고 통한의 한(恨)을 뱉은 故이상준 하사 어머니의 절망 앞에 온 대한민국 부모들과 국민들이 함께 울음을 삼켰다. 특히 아직 시신마저 찾지 못한 나머지 8명 희생자 부모, 가족들의 애통함은 아마 더할 것이다. 감히 어떤 말로 그 한을 표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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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정의 금싸라기 같은 귀한 아들이자 손자이며 또 가장, 남편, 약혼자, 조카, 사위였던 46명의 젊은 못다 핀 영혼들은 그렇게 한 순간 아무 준비 없이, 가족들과 마지막 이별도 채 못 나누고 차가운 바다 속에서 숨져가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사고원인조차 오리무중이다. 갖은 추정과 예단만 난무하고 있다. 어쩌면 영구미제로 남겨질지 모른다는 섣부른 관측도 대두 된다.
이 와중에도 정부와 정치권은 여전히 갖은 부산만 떨고 있다. 그들이 진정 희생자 가족들의 처절한 심경과 국민적 애환을 같이 느낄까? 섣부른 직감일수도 있지만 아니, 전혀 감지되거나 전이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큰 딜레마는 작금에 이 나라가 ‘국가’가 맞는지 의구심마저 든다는데 있다. 정부가 있는지 조차 의심될 정도다. 과연 이 나라에 한 국민으로서 갖은 세금 꼬박꼬박 내며 한 몸 위탁해도 될 런지 내내 갖은 회의들로 일손마저 잡히지 않는다. 암울한 현실에 밤잠마저 설쳐진다.
뭣보다 정부에 대한 신뢰 자체가 없다. 어떤 말을 뱉어도 믿음이 가질 않는다. ‘양치기 소년’틀의 가식과 위선으로 가득 찬 위정자들만 들끓는 것 같다. 존경과 신뢰의 정치를 기대하는 자체가 무리인 한국 정치판 현실에서 어설픈 넋두리일 수 있으나 이건 정말 해도 너무한 것 같다. 요즘 주변에 누구나 공감하는 테마가 있다. “대통령, 정부-與-軍이 정말 모르는 걸까?”. 깊고 팽배한 불신의 편린이다. 정부여권 제반에 대한 의심의 눈길이 어찌, 왜 이리 깊고 짙을까. 그러나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이와 정반대여서 가히 충격적이다. 물론 여론조사 자체에 대한 불신도 깊지만 그 내용이 바닥현실 및 정서와는 너무 동 떨어진다.
이 와중에도 일각에선 전체 군 사기를 위해, 또 남북대치 상황에서 “너무 몰아붙이지마라”등 목소리들도 불거진다. 그러나 그들에게 되묻고 싶다. 과연 자신들의 자식이 이같이 희생됐을 때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또 과연 자신들은 군 복무를 필했고, 자식들을 군에 보냈는지도 역시다. 군에 갔다 오지 않은 정치인이나 정부 고위관료 등 기타들도 마찬가지다. 직접 겪지 않고 그 상황을 이해한다는 자체가 벌써 ‘위선’이자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런데 이들은 마치 ‘이해’의 형국을 연출한다. 군에 가보지도 않고 어찌 그럴 수 있을까. 가증스런 그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에 조소마저 인다. 지난 선거에 한 표를 행사한 손을 찍고 싶은 참담한 심경이다.
이런저런 사람 섞여 사는 게 이 사회라지만 정말 여건만 빨리 조성되면 ‘국민’ 타이틀을 하루빨리 벗고 싶을 정도다. 정치든, 국민이든 대체 희망의 여지가 보이질 않는다. 여전히 정치권이 네거티브 수단으로 갈라놓은 ‘색(色)’ 논리에 휩싸인 채 ‘패’가 갈려 이전투구(泥田鬪狗)만 벌인다. 늘 이들 ‘패’들 간에 정권 주고받기만 이어질 뿐이다. 어제의 ‘與’가 오늘의 ‘野’가 되고 것만 지속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여야를 이리저리 바꿔 봐도 도통 답이 없다. 그 와중에 위탁된 국가살림을 맡은 ‘하인들(정치인)’은 늘 ‘주인(국민)’을 업신여기는 적반하장을 당연하듯 일삼고 있을 뿐이다.
하늘도 대한민국을 외면하는 걸까. 악재와 불행한 일들이 너무 많다. 이 대한민국과 정치권의 지속된 업보(業報)를 어찌해야 하나. 정부여권은 투명하고 재빠른 사건진상 규명은 물론 그에 따른 향후 대응방향 및 재발방지책을 조속히 내놓아야 할 것이다. 원래 드러난 실체보다 가려진 이면이 더 무서운 법이다. 일부 군 장성 및 각료 경질 등 기존 구태의 수습책으로 이번 사건을 대충 얼버무릴 경우 그 후폭풍은 아마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스스로가 뿌린 지난 갖은 부메랑 성 업보들도 이미 허공을 가르고 있다.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수순만 남은 형국이다.
뭣보다 한순간 느닷없이 생(生)을 마감해야 했던 이 무고한 46명 젊은 영령들의 억울한 혼(魂)을 누가, 어떻게, 뭐라 달래야 할까. 감히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또 희생자 가족들에게 주어질 국가보상금과 국립묘지 안장 등이 과연 위로가 될까. 세상에 남은 가족들의 무거운 ‘몫’만 던져져 있다. 뭐라 말조차 할 수 없고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다만 말없이 슬픔만 함께 하며 나누고자 할 뿐이다. 대한민국은 답하라. 이 업보를 어찌해야 하는지, 46 영령들의 혼(魂)과 주검 앞에 뭐라 해야 할지...
희생 장병 가족 모두들 부디 힘내고, 잘 추스르길 기도하면서 가족을 이미 잃어본 개인적 경험론 하나 보태며 위로를 대신코저 한다. “죽을 만큼 힘들었던 순간과 일은 결코 잊혀지지 않고, 잊을 수도 없다. 그러나 시간은 기억의 습작을 통해 때론 그 고통을 희석시켜준다..다만 시간을 견뎌내야 할 나름의 몫은 주어질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