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노자 제자가 재판을 맡게 되었다. 그 사건은 자신이 한도둑질을 자백한 어떤 도둑에 대한 것이었다. 그 문제는 명백했다. 도둑은 자백을 하고 훔친 물건은 발견되었다. 그러나 노자의 제자는 그 재판을 매우 이상하게 처리했다. 그는 그 도둑에게 6개월의 징역을 선고하고 또한 도둑을 맞은 사람에도 징역을 선고했다. 물론 그 도둑맞은 부자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의 물건이 도둑을 맞았는데, 그가 무엇 때문에 선고를 받아야 한다는 말인가. 노자의 제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너무 많은 재산을 모았다. 이 문제의 깊은 뿌리를 살펴본다면 그대가 이 사람으로 하여금 도둑질 하도록 조장한 것이다. 이 마을 전체의 주민들은 가난하고 거의 굶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대는 계속해서 부를 축적하고 있다. 모든 것에는 한계가 있다. 내가 진정한 밤인을 찾는다면 바로 그대가 그 진정한 범인이다. 이 사건의 윈인은 바로 그대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도둑은 하나의 희생물에 불과하다. 나는 이 사람이 그 자신을 자제할 수 없었음을 알고 있다. 바로 그것이 그의 죄였다. 그러나 그대는 너무도 많은 재산을 축적했다. 한사람에게 그렇게 많은 부가 축적될 때 사회는 도덕적으로 유지될 수가 없다. 도둑이 들끓고 강도가 생기고 살인 사건이 터지며 모든 종류의 부도덕이 발생하게 된다. 그것은 반드시 생기게 되어 있다."
아무도 그 재판관의 말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 재판관은 그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황제가 말했다.
"이 사람은 위험하다. 언젠가 이 사람은 나까지도 문제 삼게 될 것이다. 그가 더 깊이 사리를 따지게 되면 나를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물러나야 한다"
그대가 너무 많이 모은다면 그것은 도둑맞을 것이다. 그것은 안전하지가 못할 것이다. 한계에 머무르라. 균형을 유지하라. 너무 가난한 것도 나쁜 것이며, 너무 부유한 것도 나쁜 것이다. 너무 많은 것도 나쁜 것이다. 사실 노자에는 너무 많은 것만이 유일한 죄이다. 너무 많이 행하지 말라, 너무 과도하게 하지 말라, 그때 삶은 비로소 하나의 흐름이 된다. 삶을 도덕적이 되는 것이다.
"부와 명예로 교만한 것은 스스로 몰락의 씨를 뿌리는 것이다."(도덕경)
아담스미스는 그의 명저 국부론에서 이미 "대재산이 있다면 반드시 대불평이 있다. 한사람의 부자가 있기 위해서는 500명의 가난한 자가 있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갈파하였다. 이는 경제학적으로 보아서도 필연적인 관계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적대적일 수 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있는 사람이 정당하게 돈을 주고 사는데 많이 사고 적게 사고, 상습적으로 사건 말건 그게 왜 단속의 대상이 되느냐 하는 점이다. 상습적으로 삿거나 밤낮으로 샀거나 샀다는 그 행위 자체는 아무 문제가 되어서는 안된다. 상습적으로샀다면 그에 해당하는 세금을 냈으면 되는 것이지, 왜 문제가 된단 말인가!
자연의 현상에도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반드시 그 조짐이 미리 나타나게 마련이다. 큰 홍수가 일어나기 전에, 가물기 전에, 비가 오기 전에,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그 나름의 조짐이 반드신 일어난다고 한다. 중요한 문제는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파악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이는 종교가는 종교적인 차원에서 과학자는 과학적인 차원에서 정치가는 정치적인 차원에서 교육자는 교육의 차원에서 제마다 처방책을 마련하겠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사회의 구성원들이 너무 많이 가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많이 가지려고 하는 욕심이 근본 진원이라고 본다. 이 말을 바꾸어서 하면 많이 가진 것을 자랑으로 아는 사회, 너무 많이 가진 것은 일종의 도둑이나 마찬가지란 인식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게 되어야한다. 너무 많이 가지자면 반드시 그 것을 가지는 과정에서 사회의 부조리에 편승하고 정치권력과 결탁하거나 담당 공무원과 결탁했거나 어떤 형태의 부조리와 죄악이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한 마리의 방어를 살찌게 하기 위해서는 열 배의 정어리가 필요하다. 이런 방어 양식과 같은 어리석은 행위가 바로 현대의 축산업이다. 육식동물인 은여우를 기르기 위해서는 그 열 배의 토끼고기가 필요하고 그 토끼를 기르기 위해서는 또 열배의 풀이 필요하다. 결국 은여우 가죽 한 장을 얻기 위해서 인간은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해야 한다는 셈이다. 곡물류로 만족하지 못하고 쇠고기를 먹을려고 한다면 인간은 열배의 고생을 견뎌내야 한다. 우유를 먹고 싶다. 달걀을 먹고 싶다고 생각하면 다섯 배의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칼로리 생산과 소비량으로 보면 인간이 달걀이나 우유를 먹고 싶어하면 곡식이나 채소를 먹는 것에 비해 두배의 고생을 하고, 쇠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일곱 배의 고생을 해야 한다. 이는 현대축산업이 에너지를 낭비하는 축산업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령 들어 놓아기르는 당닭과 같은 재래종 닭은 알이 작고 이틀에 한 알 밖에 낳지 않기 때문에 생산성이 낮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닭은 알 낳는 힘은 뒤지지만 사실은 생산 능력이 더 높다. 왜나면 한 쌍의 닭을 길러보면 가끔 집에 들어가 알을 낳기를 쉬는데 그 속에서 병아리를 까서 일 년이 지나면 어느 새 한 마리의 닭이 열 마리 스무 마리로 늘어나 있다.
따라서 하루에 낳는 알의 총합계는 우량종 백색 레그호온의 몇 배가 된다. 그리고 재래ㄷ종 닭은 스스로 먹이를 찾고 알을 낳기 때문에 글자 그대로 무에서 유를 낳는 생산이고 칼로리 생산의 효율이 높은 닭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적당한 숫자만 기른다면 토지를 악화시키는 일도 없다. 개량된 백색 레그호온을 닭장에서 기르면 매일 큰 알을 하나씩 낳고 생산력
이 높기 때문에 여러 마리를 기르면 많은 달걀을 얻을 수 있을뿐더러 그 똥오줌으로ㅅ해서 땅이 기름져 지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렇게 알을 낳게 ㄴ하기 위해서는 회수되는 알의 두 배 이상의 칼로리를 가진 곡물 사료가 주어져야 한다. 이렇듯 닭을 기르면 칼로리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반감되기 때문에 인공 사육은 근본적으로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생산 활동이 될 수가 없다. 또 똥오줌을 땅으로 되돌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고 도중에 없어지는 것이 많은 만큼 오히려 땅이 메마르게 된다. 닭뿐만 아니라 돼지나 소도 마찬가지이다. 투입된 에너지에 비해서 회수되는 에너지는 닭고기로 50% 돼지고기로 20% 우유로 15% 쇠고기로 8% 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소를 기르는 것은 땅의 에너지를 십분의 일로 감소시키는 노동이며, 고기를 먹는 사람은 쌀을 먹는 사람보다 10배내 낭비를 하는 셈이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 필요한 면적은 곡물이라면, 200평방미터, 감자로는 600평방미터, 우유로는 1500평방미터, 돼지고기로는 4000평방미터, 고기만으로 칼로리를 취하려면 10,000평방미터가 필요하다. 육우로 인하여 대지는 쇠퇴하고 지구의 녹색지대가 손실되어 가는 것은 구미 각국을 보면 뚜렸한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간디는 훔치는 것만이 도둑이 아니라 지나치게 많이 가진 것도 도둑이라고 했다. 오늘 우리 사회의 근본을 치유하는데 가진 자들이 명심해야 할 중요한 말이다. 도덕성의 회복 또한 중요하다. 지나치게 많이 가진 자들은 필연적으로 도덕의 타락할 수밖에 없다. 정직한 사람이 잘사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원칙이 통하는 사회, 법을 지키는 사람이 유리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열자에 이른 이야기가 있다. 홍수가 났는데 어떤 부자가 강을 건너게 되었다. 강의 중간에서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뒤집혔다. 뱃사공은 겨우 살아나왔으나 부자는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자는 물에 빠져 죽었다. 수색작업이 시작되었다. 한 어부가 부자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런데 그는 시체의 값을 놀라운 액수의 돈을 요구했다. 그 이하로는 그 시체를 내 주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가족들은 그에게 그만큼의 많은 돈을 내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가족들은 유명한 법률가에게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물었다. 그 법률가가 말했다.
"걱정마시오. 먼저 나에게 상담료를 주시오. 그러면 내가 그 방법을 가르쳐 드리리다. "
법률가는 상담료를 받고 이렇게 말했다.
"그냥 버티십시오. 그는 그 시체를 다른 사람에게는 팔지 못할 것입니다. 아무도 그 시체를 살 사람이 없기 때문에 양보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기다리십시오."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났다. 가족들은 그 법률가의 충고를 따른 것이다. 이제 어부가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왜냐면 시체가 썩어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제 물러서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족들이 얼마를주든 그것을 주는대로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 시체가 골칫거리가 되었고, 아무도 그 시체를 살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실하게 결정하기 전에 먼저 그는 법률가를 찾아갔다. 바로 그 법률가였다. 그는 말했다.
"먼저 나에게 상담료를 주시오. 그러면 내가 조언해 드리리다."
그는 상담료를 받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버티시오. 그 가족들은 당신 이회에 다른 어디에서도 그 시체를 살 수가 없을 것이요. 그러니 그들이 질 것이요."
과학 문명의 발달, 산업 자본주의의 발달로 우리네 삶은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발달된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편리함이나 신속함이나 정확함에서는 확실히 그렇다. 언뜻 보기에는 우리나라가 국민소득이 많이 높아졌음이 확실하다. 그른데 엄밀히 말하면 이러한 경제적인 신장이나 향상의 이면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귀한 것들을 치른 희생이 숨어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가장은 보다 더 많은 직장에 매달려야 하고 심지어 부부가 다 가정을 떠나 직장에서 온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한 주일 내내 지옥 갈은 직장에서 얽매여 있다가 겨우 주말이나 휴가기간에 자유를 찾아서 붕어새끼처럼 입을 위로 치켜들고 입을 보글보글거리는 붕어새끼처럼 고 착은 휴식을 즐기려고 안달을 한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인간의 본연의 모습에서 한없이 멀어져 있다. 사람의 발은 흙에 닿아야 한다는데, 일생동안 흙이 닿는 경우란 거의 없다. 손은 꽃이나 풀잎으로부터 멀어졌다. 귀는 새소리, 풀벌레소리, 바람소리를 잊은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코로 맡는 향기는 코스모스의 향기나 풋풋한 과수원의 향기를 맡을 수 없게 되었다. 자연의 맛 자연의 빛 자연의 소리 등으로부터 우리는 이제 너무 멀리 와 있다.
이러한 근본 원인은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질려는 욕심 때문이다. 이대목이야 말로 정치적인 문제 이전에 우리 각자가 점검해야 할 문제이다. 참다운 행복은 밖에 있지 않다. 자신의 내면에 있다. 스스로 몸에 걸치는 것을 줄이고, 스스로 먹는 것을 보다 소박하게 하고, 스스로 생각을 소박하게 하야 한다. 그리고 자연과 가까와지는 길이다. 참다운 행복은 가장 평범한 가운데, 가장 소박한 가운데서 찾아야 한다. (www.songhy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