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는 자신이 뿌린 만큼 거두게 마련이자 순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론 ‘사필귀정’, ‘인과응보’를 늘 염두하며 가능하면 ‘업보’를 짓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정치 판 만큼은 세상사는 순리가 통용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각종 선거 때 마다 따르는 공천파동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재연된다. 어두운 ‘공천자화상’의 편린들이 생각보다 많다.
25일 밤 한나라당 소속 최윤희 경북도의원이 메일 한 통을 보내왔다. 그녀는 기자들에게 의정활동 및 개인일상을 메일 형식으로 늘 보내온다. 개인적으론 나름 열심히 한 도의원이란 생각이다. 최근 6·2지선 예비후보로 등록해 나름 분주한 일상을 보냈으나 결국 탈락한 것 같다. 최근 잇따라 부모와 영원한 별리를 치른 그녀의 맘이 한층 더 무거워질 것 같은 예감이다. 그녀의 자조어린 심경이 담긴 메일 전문을 공개한다.
“친朴은 죄? 답답한 마음에 서울로 쫓아갔다. 높으신 양반들과는 합리적으로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에, 또 누구누구는 서울에 가서 일을 해결했다는 말에 헐레벌떡 달려갔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더니.....실망보다는 절망이 더 맞는 표현이겠지. 그들의 잣대는 마치 요술방망이 같이 수시로 변하고 모든 기준은 그들이 치러야 할 다음 선거, 즉 전당대회, 총선에 달렸을 뿐이었다.
나를 적극 도와주겠다던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물었다. ‘2007년 대선 때 친박은 아니었지?’ 내 약력에 굵은 글씨체로 강조된 ‘제17대 대통령선거 한나라당 후보경선 박근혜후보 경상북도 선거대책본부 대변인’을 보여주었다. 갑작스럽게 굳어지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감정을 추스르고 정중히 인사하고 나오던 내 다리는 맥이 다 빠져버렸다.
침묵 속에서 고속도로를 달리며 구미로 내려가던 중 한나라당 경북도당에서 지역구 후보 내정을 내가 아닌 나의 경쟁자로 공식 발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곳곳에서 위로와 응원의 전화, 그리고 문자가 끊임없이 왔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며 지난 몇 개월간 나에게 아낌없이 지원을 해 주던 친구와 지인들이 늦은 밤 시간까지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중앙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공천 확정할 때까지는 아직 어떠한 변수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큰소리치고 나왔지만 내 마음은 이미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2002년과 2006년 지방선거 때 나는 여성의 대변인으로서 여성을 위해 일 하겠다고 목소리 높였다. 진정한 양성평등, 사회 곳곳에 우리의 후배와 딸들이 능력껏 활동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권 내에 여성들이 많이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여성후보는 여성들이 꼭 힘을 모아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나는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 박근혜 후보를 위해 경북을 누비면서 열심히 운동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바로 대한민국의 여성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가져올 뿐만 아닌 또 다른 차원의 여성상을 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박 대표를 위해 어떠한 대가도 없이 다닌 것에 대해 부끄럽지도 않았고 굳이 누구에게 자랑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 공천과정을 지켜보면서 여느 입사시험, 자격시험처럼 예상문제집과 정답도 없이 일반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지구상에서는 유일하게 대한민국에만 있는 시험에서 친朴 여부 문제의 정답은? 친박이 무슨 죄냐? 원칙과 소신도 없이 말 뿐인 지역일꾼, 나라사랑. 과연 이런 진흙탕 속에 내가 있어야 하나?”
최 의원 경우와는 별개로 거대 공룡여권 한나라당의 6·2공천 속내가 점입가경이다.(민주당도 피장파장) 당초 외쳤던 클린·개혁 공천은 실종된 지 오래다. 유권자들을 향한 이중적 헛구호 속에 ‘일구이언(一口二言)’만 판을 친다. 관련 사례가 속속 들어나면서 가려진 공천치부를 적나라하게 투영해 준다.
a:경남 진주에선 뇌물제공 업자는 자살한 반면 수뢰혐의 시의원은 한나라 공천을 받았다. 현직 진주시의원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던 관급공사 업체 대표가 지난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이 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고 있는 시의원은 한나라 후보 공천자로 내정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족들이 현재 크게 반발하고 있다.
b: 감사원에 비리혐의가 잡혀 검찰수사를 받아오던 민종기 당진군수가 외국으로 달아나려다 미수에 그쳤다. 민 군수는 공항에서 잠적해 현재 소재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그는 지난 05년부터 08년까지 공사 102억 상당을 수주 받은 모 건설업체 사장으로부터 지난해 12월 건축비 3억 상당의 별장을 뇌물로 받은 사실 등 토착비리혐의로 감사원에 적발돼 검찰수사를 받아왔다. 수뢰, 직권남용, 입찰방해, 부동산실명법위반 등 혐의다. 한나라 중앙당공심위는 당초 민 군수에 공천을 줬다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자 뒤늦게 무효화했다.
이같은 갖은 사례에서도 보여지듯 텃밭인 대구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폭력사태, 돈 봉투 사건, 비리현역 재 공천 등 韓공천파열음이 끊이질 않는다. 이는 그들의 공천 ‘리트머스시스템’이 당초 여과도 되지 않은 불량품이었음을 반증하고 있다. 선택은 유권자들의 ‘몫’이지만 공천기준이 대체 뭔지 궁금해진다. 나름 필요(?)와 기준(?)에 따른 고무줄 잣대인가? 한나라당은 답하라.
경북 = 김기홍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