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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문제는 코오치와기능공 양산에 있다

송현 시인이 본 아름다운 세상

송현(시인. 본지 주필) | 기사입력 2010/05/10 [07:59]
 

이땅의 교육 현장에서 가장 불행한 일은 스승은 없고 코오치만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코오치는 기술을 가르치는 기술자이다.기술자는 수없는 반복을 통해서 익숙해진 기능 보유자일 뿐이다.
 
가령, 국어 시험 문제의 정답을 외는 방법 즉 기술을 가르쳐주는 국어코오치, 수학 시험 문제의 답을 외는 기술을 가르치는 수학코오치, 영어코오치, 역사 코오치들이 실력 있는 선생으로 둔갑한지 오래이다.이런 코오치 밑에는 참다운 제자란 생겨날 수 없고 다만 숙련공만 양산될 뿐이다. 왜냐면, 이런 코오치에게 배우는 것은 기술이기 때문이다. 기술은 손끝에서 일어나는 재주일 뿐이다.

진정한 교육은 손끝을 통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통해서 일어나는 법이다. 학생들의 가슴이 뜨겁게 하고 잠자는 영혼을 흔들어 깨워야 한다.가슴과 가슴의 만남, 영혼의 일깨움을 통해서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뜨거운 가슴은 없고 차가운 손끝만 살아있는 코오치들이 우글거리는 학교에 우리의 자녀들을 매일 보내고 있는 기막힌 교육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코오치에게 교육을 맡겨서는 안된다!

시의 생명은 감동이다. 그런데 국어코오치들은 시의 한행 한행을 분해하여, 구문을 따지고 주어와 서술어를 따지면서 시를 갈기갈기 찢어서 죽이고 만다. 그러니 국어코오치가 들어와 가르치는 국어시간에 학생들이 시의 참다운 맛을 느낄 수가 없다.

유명한 도둑이 있었다. 어느날 그의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는 이제 점점 연로해지시고 있어요.  제게 아버지의 기술을 가르쳐 주세요." 
   "그래, 좋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가르쳐 줄 수 없는 기술이란다. 이것은 지식이라기 보다 숙련된 기술과 같은 것이란다.하지만 한번 해 보자꾸나. 오늘 밤 나와 같이 나가보자."
아들은 몹시 두려웠다.그러나 아버지는 한 집을 택해서 매우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몹시 추운 날이었음에도 아들은 땀을 흘리며 온 몸을 떨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것이 마치 자기 집인것처럼 일하고 일하고 있었다. 그는 벽에 구멍을 내고 안으로 들어가 아들을 불렀다.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따라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아들은 너무도 두려워 숨소리가 매우 거칠어졌다.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계속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여러 개의 방문을 열고 여러 방을 살폈다. 마침내 그는 벽장 문을 열고 아들에게 말했다. 
  "자, 벽장 문을 열고 들어가서 여러개의 옷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값진 옷을 꺼내오라."

아버지의 말대로 아들은 벽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아버지는 벽장을 걸어잠그고 큰소리를 지르고는 밖으로 달아났다. 그러자 집 안 전체가 깨어나서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도둑이 어디에 들었는지 살폈다. 벽에 구멍이 난 것으로 보아 집에 도둑이 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벽장 안에 갇힌 도둑은 이렇게 생각했다.
   (아버지가 미친 것일까? 도대체 이것이 무슨 가르침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는 신에게 기도를 했다. 
 --- 이것이 저의 첫번째자 마지막 도둑질입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짓을 생각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때 한 하인이 촛불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와 방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순간 아들은 자신이 쥐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매우 직관적인 행동이었다. 그러자 하인은 벽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여다 보았다.그 순간 아들은 촛불을 불어 끄고는 밖으로 뛰쳐 나와 집 밖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인과 이웃 사람들이 뒤쫒아왔다. 

마침내 우물가에 다달았을 때, 그는 옆에 있던 커다란 돌을 하나 집어서 우물 속에 던지고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집안 사람들고 하인들은 우물가에 빙둘러 모였다. 그들은 도둑이 우물 속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 잘됐어! "
   "내일 아침 날이 새면 우물에 빠진 도둑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해서 교도소에 보낼 것인지 결정하면 되겠어."
그리고는 사람들이 흩어졌다. 

아들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코를 골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덮고 자는 담요를 확 걷어 던지며 소리쳤다. 
  " 아버지! 미쳤어요?"
그러자 아버지가 말했다. 
   "잘됐어! 너는 무사히 돌아왔고, 이제 그 기술을 터득했구나. 자, 가서 자거라. 그리고 내일부터는 네 혼자서 시작해라." 
   "그런데 아버지, 왜 그렇게 하셨어요? "
   "그것은 결코 가르칠 수 없는 기술이란다.그것은 직관적인 기술이며 그렇게 얻어지는 것이란다. 그래서 나는 너를 매우 우연한 상황에 처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네가 이렇게 무사히 돌아온 것을 보니,너는 천성적으로 타고난 도둑인 것 같구나. 너는 내 아들이다."

그렇다.심지어 기술조차도 가르칠 수 없는 영역의 기술이 있다. 배우는 사람이 체득해야 하는 기술이 참다운 기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삶에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많다.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준비할 수도 없다. 준비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나 봐야 안다.그때 가봐야 한다.유비무한이란 말이 없는 것은 아닌데, 삶에는 준비할 수 없는 일이 의외로 많다.그래서 학교 교육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야 한다.여기서 많은 것이란 말은 양적으로 국한해서 하는 게 아니다.
 
여러가지 방식으로 여러가지의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오늘 우리네 교육 현실은 단순히 죽은 지식을 달달 외게 하는 것이 거의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게 문제다. 인간의 가치를 평가할 때 단순히 기억력 좋은 것만으로 평가해서 안되는 것과 같이, 학생들을 평가할 때도 단순히 기억력 좋은 것만 놓고 평가해서는 안된다. 

적어도 오늘날 교육 평가는 기억력 평가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자기의 책임을 다하는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가, 자연을 사랑하고, 이웃에 대한 애정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아는 것을 어느 만큼 실천하는가 하는 것들은 평가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것이 문제이다. 기억력 평가가 절대적 주종을 이루는 이런 평가를 하는 학교 교육은 학생들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암기 위주의 입시 교육 제도 때문에 결과적으로 코오치들만 우글대는 교육현장은 근본에서 고쳐야 한다.이를 바로 잡지 않으면 학교 교육을 통해서 학생들을 온전하게 가르칠 수가 없다. 학생들을 온전하게 가르칠 수 없으면 온전하게 자랄 수도 없을 것이고, 온전하게 자라지 못하면 나라의 장래도 아무 희망이 없을 수 밖에 없다.나날이 죽어가고 있는 학생들과 학교를 살리는 대대적인 교육 제도 개혁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이라고 본다.(www.songhy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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