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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깡과 패기로 뭉친 88만원 세대의 '프리허그'

따스한 휴머니즘으로 청년실업 등 사회문제 조명한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

정선기 기자 | 기사입력 2010/06/02 [21:24]
6월, 헐리우드와 3d 블록버스터 협공 사이에서 제작비 8억원으로 개봉해 12일만에 전국관객 50만명을 동원한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제작 jk필름, 감독 김광식)은 지난해 <해운대>로 천만 흥행 신화를 일군 윤제균 사단이 기획했다. 영화 <라디오스타> 이후 휴머니즘으로 컴백한 박중훈표 로맨틱 코미디물 쯤으로 여겼던 것은 편견 또는 지나친 폄하였을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저예산 영화 <오이시이맨><그녀들의 방>과 올해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수상한 홍상수 감독의 전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 상업 영화 <차우><십억>등 지난 2년간 11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폭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인 충무로의 '여자 황정민' 정유미를 콤비로 맞춘 신인 감독의 시나리오와 연출은 올해 본 외화 <인 디 에어>에 버금갈 만큼 군더더기 없이 폭소, 감탄 그리고 눈시울을 동시에 자아낸다.
 
영화는 청운의 꿈을 품은 지방대 출신의 여대생 세진(정유미 분)이 상경해 취직한 회사가 부도를 맞고 서울 달동네의 반 지하방으로 이사하게 되면서 옆집에 사는 깡패같지 않은 3류건달 동철(박중훈 분)과 겪는 에피소드를 소재로 잡았지만 이에 머무르지 않고 최민식의 열연으로 빛났던 영화 <파이란>과 중첩되면서 88만원 세대의 희망가와 3류건달의 따스한 휴머니즘을 내용으로 감싸 안는다. 
 
영화를 보면서 몇년 전, 청색 츄리닝 차림에 kbs 예능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서 한 개그맨이 '현대생활백수' 코너로 청년실업 시대의 백수의 애환을 '어
떻게…안되겠니?'라는 비굴한(?) 유행어로 유머러스하게 나타내며 큰 히트를 쳤던 것이 오버랩됐다.

▲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 반지하방 옆방에 사는 두 남녀 동철(박중훈 분, 오른쪽)과 세진(정유미 분, 왼쪽)     © jk필름


지난 2004년, 인기 시트콤에서 가수 앤디는 '청년실업이 40만에 육박하는 이 때에'라는 명대사에 이어 실업과 취업은 당대 사회 이슈화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고용불안에 비상구가 보이지 않는 청년들을 비롯해 명예퇴직, 일자리 부족 등으로 인해 자발적인 백수(자영업)가 500만여 명에 이른다. 
 
감독은 3류건달이 취업 준비생에게 던지는 한 마디를 통해 '실업'이 네 잘못이 아니라 사회가 해결해줘야 할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내러티브는 밑바닥 인생이라도 결코 꿈을 포기하지 말도록 하면서 곧고 쉬운길보다 비록 구불어지고 힘든 길이라도 '제 2의 동철'이 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학벌과 성을 잣대로 삼는 남성들에게 큰 마음의 상처를 입은 세진은 반지하방에서 술 마시다가 '서울에 힘들게 올라와서 내가 왜 깡패랑 술을 마시고 있냐'며 신세를 한탄하며 억눌러왔던 울음을 터뜨리고 이를 달래는 동철은 심호흡을 가르치다가 서로 눈이 마주치며 "안되겠지?"라고 던진 비굴한 작업 멘트에 "되요"라고 예상밖의 세진이 응답에 키스를 허락하고 반동거에 들어가  '로맨스와 취업'이라는 작은 희망의 불씨를 당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남녀가 서로 다른 상황 속에서 궁지에 몰리며 기대게 된 건 영화 속에서 세진이 하룻밤을 보낸 다음 날 집을 나오면서 동철에게 표현한 '개의 밤'처럼 한줄기 희망마저 무참히 짓밟혀 우울하고 외로운 사람들이 에스키모가 서로를 껴안듯 힘든 시기를 36.5도 체온으로 따뜻하게 감싸줬기 때문 아닐까.
 
비오는 날, 면접 잘 보고 오라며 자신을 위해 우산을 사다주고 아플 때 자신을 업어 병원에 데려다주고 제 곁을 지켜준 동철은 비록 3류건달 일지라도 영화 <파이란>에서 중국 처녀 파이란(장백지 분)에게 강재(최민식 분)의 존재처럼 '세진에게 가장 친절한 사람'이기에 충분하다.  
 
▲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의 미공개 포스터 스틸컷     ©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속에서 옆방여자가 된 세진, 옆방 세입자가 된 동철로 변신한 두 배우는 영화 <행복>에서 13살 나이차를 극복했던 황정민-임수정 콤비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했다.
 
박중훈은 극중 사귀는 남자로 위장해 세진의 고향집을 찾는 씬에서 세진의 아버지 앞에서 거짓말이 들통나는 특유의 애드립을 잘 소화해내며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코믹 연기의 진수를 보여줬다.

특히 3류건달 인데도 독특하게 교육방송을 시청하고 여자 앞에서는 무뚝뚝하지만 건달임에도 불구하고 제 몸 아끼지 않고 진심을 다해 의리있는 동철의 캐릭터를 소화해냈다.

 
하지만 거리에서 말다툼 끝에 지방 건달과 주먹질을 하면서 it보안 분야에 대해 똑부러진 재능을 가진 세진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우며 꿈을 접게 만들 뻔하지만 감독은 두 사람의 관계를 회복시키면서 관객에 메시지를 던지는 반전을 가져오는 암시도 동시에 던진다.
 
극중 정유미는 겉은 깡이 세지만 한번 시작하면 절대 쉽게 포기하지 않는 여자 세진으로변신해 '88만원 세대'를 대변하는 보이시한 편의점 직원으로부터 솔직하면서
도 당당한 커리어우먼에 이르기까지 내면의 연기와 입체적인 세진의 성격을 잘 조화시켰다.

"무슨 깡패가 맨날 맞고 다니냐" "나랑 잤잖아요"라고 눈에 힘을 주며 동철에게 절대 굴하지 않기도 하지만 동철에게 가장 먼저 환하고 밝은 미소로 자신의 합격 소식을 알린다.
이 영화는 국내외 경제 불안과 함께 청년 실업과 명예 퇴직 등을 통해 사회적 안전장치를 잃은 한국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을 위한 희망가와 같다.

고지식하고 무뚝뚝한 3류 건달이 전하는 또 다른 조언처럼 다가온다. 극중 조폭 세계에 첫 발을 들여놓은 신참 건달 재영(귄세인 분)을 내치며 그에게 짐을 지우지 않고 공공의 적으로부터 칼을 받아내는 동철의 거칠지만 따스한 훈기처럼.

 
▲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 영양실조로 쓰러져 있는 세진(정유미 분)을 업고 병원으로 뛰어가는 깡패 동철(박중훈 분)     © jk필름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은 지난 해 과속삼대의 이야기를 코미디와 감동으로 그린 영화 <과속 스캔들>의 강형철 감독을 떠올리며 로맨틱 코미디로 빠지기 쉬운 이야기 구조를 대신해 작가의 따스한 시선으로 학벌, 스펙을 중심으로 줄을 세우는 사회적 병리 현상을 수십번의 낙방의 고배를 마신 취업준비생의 '명랑 취업 성공기'를 그리고 있다.
 
더욱이 은퇴한 부패 경찰의 금품갈취 협박에 시달리는 조폭 에피소드에서는 과거에 <게임의 법칙><공공의 적> 등 범죄물 이야기가 아닌 아웃 사이더들을 위한 '프리허그'처럼 다가오고 영화 <파이란>의 강재처럼 조폭 세계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3류건달 동철을 통해 위로하고 배려해주는 사랑 본연의 의미를 일깨운다.
 
또한 감독은 영화의 엔딩씬에 무척 정성을 들인 것처럼 보인다. 동철의 과거를 답습할 것 같은 신참 재영이 보고 싶다는 '첫 눈'을 부패한 전직 형사의 칼에 맞으며 계단참에 오르다가 쓰러져 바라보는 동철의 시선에 담아 고전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악전고투 속에 취업에 성공해 보안회사의 대리가 된 세진이 신입사원들에게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고 던지는 말도 자칫 영화 속에서 감정의 과잉과 현학적인 기교로 흐를 뻔 했던 로맨틱 코미디를 따스하고 감동적인 휴먼 코미디로 완성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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