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량하게 달이 밝은 겨울밤
하얀 눈밭에
목이 쉰 늑대 한 마리가
허공을 보고 울부짖었다.
달이 없는 그믐밤에도
거센 바람과 싸우며
황량한 들판을 헤매면서
그가 또 울부짖었다.
밤마다 그렇게 속이 터지도록
절규하고 불러 봐도
아무도 응답해 주지 않았고
매서운 삭풍이 끊임없이 불었다.
몸과 마음의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어느 날 밤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그가 쓰러져 죽었다.
눈이 녹고 봄이 와서
만물이 화창하게 피어날 때
벌레들이 모여와서 썩은 늑대의 시체를
사정없이 먹어 치웠다.
그러나 그 하얀 이빨은
남겨 두었다.
늑대는 죽어서도 계속
울부짖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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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離脫)
늘 다니던 그 길,
언제나 우리는 그 길을 통하여 세상을 살아왔다.
지겹고 매력도 없는 일상(日常)을,
타성(惰性)의 신앙 때문에
지극히 당연한 일처럼 그렇게 살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겁을 무릅쓰고
약간 이탈(離脫) 하여보고 싶었다.
이 간단한 작업으로 나는 온 세상을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을 배신하는
이단자가 되었다. 외롭고 두려웠다.
그러나 그 어두운 고독 속에는 무한한 자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허무의 늪에서 탈출하기위한 갈망이 있었다.
그 갈망 속에서 나는 새로운 작업을 모색하였다.
나를 합리화하려는 위선자가 되는 것,
그 일도 결국은 무미하고 시들했다.
이유도 방법도 목적도 모두 세상일이 막연하고 애매하며
이제는 더 이상 궤도수정이 안 되는 어느 시점에서
나는 기억상실자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허공을 보았다.
<시작 메모> 정답과 명답. 시험문제에는 정답이 있지만 인생문제에는 정답이 없다. 오직 명답이 있을 뿐이다. 명답은 언제나 매력이 있다. 모든 학문은 이 명답을 구하기 위한 작업이다. 그러나 우리가 믿고 따라가던 이 명답이 우리를 배신하는 때가 있다. 이때를 위하여 우리는 항상 탈출구를 예비해 놓고 살아야한다. 그리고 모든 출구는 새로운 현장으로 가는 입구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일생을 살면서 수없이 이와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허무>라는 병에 걸린다. 그 <허무>의 병과 투병하는 과정을 합리화하고 승화하려는 작업을 우리는 <예술>이라고 한다. 지금처럼 무엇이 참이며 무엇이 거짓인지,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악인지 분별하기 힘든 혼탁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갈등과 고뇌를, 특히 그런 문제를 민감하게 고민하는 오늘의 지성인들의 괴로움을 시인은 <이탈>이라는 짧은 글에 실어 보았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고 허공을 바라보는” 원점에 돌아간다. 고민하는 이 시대의 지성인들이 <갈등>을 이겨내는 면역을 키우기 위하여 이 시에 공감한다면 다행한 일이다.
유월 (六月)
넓은 유리창 밖에서
손짓하는 유월 (六月)
서로 접근할 수 없는 차단된 공간 속에서
왜 우리는
의사가 통하지 않는 언어로
대화를 해야 하는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든
이젠 정으로만 통하자
눈빛으로만 통하자
너의 마음을 푸르게만 받아줄게
나의 마음은 백지처럼 받아줘
아직도 써야할 사연이 첩첩이 쌓여있고
너의 푸른 잎만큼 벅찬 이야기들이
정리가 될 때까지 더 기다려줘
너의 잎이 낙엽으로 다 떨어지기 전에
내 손이 힘이 없어 떨리기 전에
이 편지를 쓸게
내가 왜 숨을 죽이고 입을 다물고
살아왔는지를 헤아려줘
-2010년 6월 16일, 세종연구소 230호실에서
pswoodson@yaho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