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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18살육과 항쟁, 왜 광주에서 일어났나?

당시 현장취재했던 동아일보 김영택 기자가 쓴 '5월 18일, 광주'

박정대 기자 | 기사입력 2010/06/16 [13:02]
발발 30주년을 맞은 ‘5ㆍ18광주민주화운동’의 배경과 원인, 그 이후의 관련흐름 등을 역사학적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분석ㆍ연구한 '5월 18일, 광주―광주민중항쟁, 그 원인과 전개과정'이라는 책이 출간(역사공간 출판사) 됐다. 5ㆍ18당시 현장을 직접 취재한 신문기자출신으로 그동안 5ㆍ18과 관련해 활발한 연구ㆍ저술ㆍ강연활동을 펼쳐온 김영택 동문(고 4회)의 국민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5ㆍ18 광주민중항쟁 연구>를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특히 이 책에는 1979년과 80년 사이 2년간 미국무부와 주한 미국대사관이 주고받은 외교비밀문서를 통해 ‘후진국의 민주주의는 사치다’는 전제를 깔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나 인권보다는 대소봉쇄를 통한 동북아안보와 자국의 자본주의시장 안정이라는 경제적 실익을 위해 박정희 유신독재정권 지지에 이어 전두환 군부의 등장을 종용 내지 지지했던 내용을 추가하는 등 크게 보강된 내용이 들어 있다. 또한 저자는 박정희 유신정권과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의 성장과정, ywca위장결혼식 사건(통대에 의한 유신대통령 선출 반대국민대회사건), 12ㆍ12반란사태 등을 분석해 ‘5ㆍ18 살육과 항쟁’의 배경과 원인을 정밀하게 파헤치고 있다. 5ㆍ18은 박정희의 보호 아래 성장한 하나회라는 마피아적 조직원들로 구성된 신군부의 정치군인집단이 정권을 찬탈하기 위해 박정희에 의해 철저하게 지역차별을 받았던 광주시민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벌인 살인극에서 빚어진 것이고 이에 가만히 앉아서만 당할 수 없는 광주시민들이 삶과 죽음을 초월해 격렬하게 저항하고 투쟁한 역사현장이었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5ㆍ18은 아무 죄도 없는 광주시민들이 시위진압이라는 미명하에 들이닥친 전두환 부대로 별칭되는 공수부대원들의 진압봉과 대검과 총뿌리 앞에 마구 내동댕이쳐진 몸뚱이를 구해내야 하는 몸부림이자 항거로서 지도자도 배후조직도 없는 광주시민들의 처절한 항쟁현장이었다. 
 
▲ 저자 김영택     ©브레이크뉴스
 특히 저자는 5ㆍ18이 처음 시작되던 현장에서 공수부대 지휘관에 의해 ‘시위진압’이라는 명분으로 내려진 명령이 ‘해산명령’ 아닌 ‘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 전원 체포하라’는 체포명령이었다며 이를 현장에서 직접 청취하여, 공수부대의 광주투입목적이 시위진압에 있지 않고 처음부터 폭동을 유발하기 위한 체포작전 또는 살육작전에 있었음을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 ‘체포명령’ 사실은 어느 누구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당시 공수부대원들에게 ‘해산위주가 아닌 체포위주의 명령이 내려졌다’는 증언이 광주에 투입되었던 한 공수부대 하사관으로부터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공식 확인됨에 따라, ‘체포하라’는 명령이 사실이었음이 밝혀짐으로써 공수부대는 처음부터 시위진압 차원 아닌 살육작전 차원으로 투입되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표현, 5ㆍ18의 직접원인으로 서술하고 나섰다.

저자는 현장상황을 메모한 취재내용을 기초로 <10일간의 취재수첩>(사계절, 1988년)을 펴냈고 1988년과 89년에 있었던 국회5ㆍ18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를 통해 밝혀진 내용을 보완해 <5ㆍ18광주민중항쟁>(동아일보사, 1990년)을 펴냈으며, 이를 더 보완한 <실록5ㆍ18광주민중항쟁>(1996, 창작시대사)을 출판하기도 했다.

저자는 그것도 모자라 오직 5ㆍ18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언론사 정년퇴직 후 곧장 대학원에 들어가 8년 동안 연구한 끝에 <5ㆍ18광주민중항쟁의 초기성격>으로 석사학위를 받은데 이어 2005년, <5ㆍ18광주민중항쟁 연구>라는 논문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로부터 5년 동안,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5ㆍ18당시의 한미관계외교문서의 진의와 5ㆍ18발발배경 및 원인을 보완해서 펴낸 것이 이번 734쪽짜리 <5월 18일, 광주-광주민중항쟁, 그 원인과 전개과정>이라는 방대한 서책이다.

아울러 이 책에서는 계엄사령부가 스스로 조작해 유언비어로 발표하면서 광주시민들이 조작했다고 전가한 것은 물론 ‘북괴에 의한 폭동’이라고 내 세우기 위해 갖가지 허위사실을 날조한 것들을 밝혀내기도 했다. 대표적 사례들로 ‘폭도들, 유언비어 조작’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광주교도소 습격사건’ ‘복면부대’ 등을 들어 하나하나 규명하여 허구임을 입증해냈다. 

▲ 김영택의 저서     ©브레이크뉴스
또한 6월항쟁의 승리 및 5ㆍ18청문회에 이어 5ㆍ18특별법 제정에 이르는 ‘5ㆍ18의 역사정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아울러 저자는 5ㆍ18에 대한 명칭에 대해서도 확고한 역사의식을 갖고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현재 5ㆍ18의 공식명칭은 1988년 7월 여야가 합의해 정한 ‘5ㆍ18광주민주화운동’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당시 현장상황은 느슨한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격동적으로 전개된 민중들의 항쟁이었기 때문에 ‘5ㆍ18광주민중항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한 걸음 더 나아가 ‘살육과 항쟁’이라는 표현도 쓰기로 했다. 그 이유는 전반기에 벌어진 공수부대의 살육작전에 따른 시민들의 희생에 대한 표현으로는 ‘민중항쟁’이 너무 안이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1989년 1월 26일, 국회5ㆍ18광주민주화운동진상규명청문회에서 2시간 40분 동안 제3자적 입장에서 증언했고 12ㆍ12와 5ㆍ18고소고발사건을 수사하던 서울지방검찰청에 두 차례나 나가 참고인 진술을 했으며 1995년 10월 17일, 이 사건 항소심이 열린 서울고등법원 대법정에서 전두환ㆍ노태우ㆍ정호용 등 수의를 입은 당시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실세들을 등 뒤에 세워놓고 증언하면서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기도 했다고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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