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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못참아” 70대 할머니, 남편 살해

‘평생 구박’이 불러온 비극

문지혜 기자 | 기사입력 2010/10/25 [14:11]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남편의 구박과 폭력에 평생토록 시달려 온 70대 할머니가 홧김에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10월21일 전남 고흥경찰서에 따르면 고흥군 남양면 망주리에서 거주하는 76세 할머니가 지난 16일 새벽 남편을 각목으로 수십 차례 폭행해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다. 할머니는 남편과 단둘이 살아오면서 자주 마찰을 빚었으며 이날도 말다툼 중 강씨가 주먹을 휘두르자 56년간 계속돼 온 남편의 폭력과 구박을 참지 못하고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할머니는 경찰 조사에서 “젊었을 때부터 맞고 산 생각이 나 상상도 못할 일을 저질렀다”며 “이제 남은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내게 됐다”고 한탄했다.
 
 
56년 동안 술 먹고 때리고, 아들 못 낳는다 구박해
“평생 맞은 생각이 나서”…비극으로 끝난 황혼 부부
 
 
전남 고흥군에 사는 유모(76)씨가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남편 강모(83)씨를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한 것은 지난 10월16일 새벽 5시 30분. 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어 거동이 불편한 강씨와 병원 치료 문제로 티격태격 말다툼을 계속하던 중 강씨가 폭력을 휘두르자 유씨도 화를 참지 못하고 땔감용 각목을 가져와 휘두른 것. 강씨는 머리와 가슴 쪽의 과다출혈로 숨지고 말았다.
 

아들 낳지 못하는 여자

손발이 썩어 들어가는 ‘버거씨병’을 앓고 있던 강씨가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퇴원한 뒤 말다툼을 계속해 온 이들 부부는 이날 역시 새벽부터 치료 문제로 옥신각신하던 중이었다. 강씨는 의사로부터 ‘이러다 아예 못 움직일 수 있으니 병이 악화되기 전에 발가락을 절단해야 된다’는 진단을 들었지만 “답답한 병원에 한시도 있지 못하겠다”며 지난 14일 결국 병원을 나와버린 것. 유씨는 “제발 고집 부리지 말고 치료를 받아라. 이러다 죽는다”며 병원으로 갈 것을 권했지만 강씨는 “괜찮다. 치료 안 받아도 된다”며 집에 틀어박힌 채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16일 새벽부터 시작된 유씨의 잔소리에 짜증이 난 강씨는 “이제 그만하라”며 갑자기 주먹으로 유씨의 얼굴과 머리 등을 마구 때렸다. 순간 유씨의 머릿속에 매를 맞고 살아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1954년 꽃다운 20살 때 강씨와 결혼을 한 유씨는 행복한 신혼을 꿈꿨지만 술만 마시면 주먹을 드는 강씨 때문에 편할 날이 없었다.

유씨는 남편의 손버릇이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더구나 딸만 7명을 내리 낳자 ‘아들 낳지 못하는 여자’가 된 유씨는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구박과 폭행을 일삼는 남편의 태도에 숨죽여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천신만고 끝에 31년 전 45세의 나이로 늦둥이 아들을 낳았지만 이미 습관화된 남편의 폭력 습성은 늙어서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그 시절 ‘매 맞는 아내’가 그리 새로울 게 없었던 유씨는 자녀들을 출가시킨 후에도 이어지는 남편의 폭력을 묵묵히 몸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강씨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7년 전 둘째 딸을 저 세상에 먼저 보내야 하는 아픔까지 겪었지만 남편은 여전히 소리를 지르고 폭력을 휘둘렀다. 남편의 폭력은 남편이 버거씨병에 걸린 후 다리가 불편한 상태에서도 끈질기게 유씨를 괴롭혔다. 사건이 발생하기 며칠 전에도 마을 주민들은 몸에 상처가 난 유씨를 목격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56년간 참아왔는데

하지만 이날만은 달랐다. 폭력으로 점철된 56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면서 유씨는 ‘이 나이를 먹도록 내가 맞고 살아야 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씨의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잔소리를 하던 중이었기에 억울한 마음이 더했다. 아픈 기억과 억울한 감정이 뒤섞이면서 유씨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유씨는 앙갚음을 하기 위해 안방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땔감창고에 있던 각목을 들고 와 강씨의 몸을 수십 차례 내리쳤다. 강씨는 머리와 가슴 쪽 과다출혈로 그대로 쓰러져 숨지고 말았다. 유씨는 강씨가 숨을 거둔 후에야 제정신을 차렸다. 유씨는 범행 직후 “남편이 마당에 쓰러져 있었다”며 마을 이장에게 알렸고 이장은 경찰에 신고했다. 유씨는 당초 자신의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지만, 강씨의 머리에서 찢긴 상처를 확인한 경찰관이 안방에 있던 피 묻은 베개와 핏자국 등을 들이대며 추궁하자 울음을 터뜨리며 범행사실을 털어놨다.

마을 주민들은 “유씨가 딸 7명을 낳다 보니 강씨가 아들을 못 낳는다고 구박을 하고 때리기도 참 많이 때렸다”며 “옛날에도 술 먹고 두들겨 패고 늙어서까지 천대를 하니 참지 못하고 범죄를 저지른 것 같다. 오죽했으면 그랬겠냐”며 안타까워했다.
 

남은 인생 교도소에서

경찰 조사를 받던 유씨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내가 젊어서부터 얼마나 맞고 살았는데…”였다고 한다. 전남 고흥경찰서는 21일 유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 조사를 담당한 경찰관은 “50년도 넘게 쌓인 할머니의 한이 한순간 폭발해, 우발적인 범행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유씨는 경찰 조사에서 “20살 처녀 때 남편과 결혼했으며 첫딸을 낳았다. 그 뒤 내리 6명의 딸을 더 낳자 아들만 바라는 강씨의 불만이 극대화돼 폭력으로 변질됐다”고 진술했다. 그렇게 이들 부부의 결혼 생활은 가부장의 폭압과 아내의 숨죽임으로 이어졌다. 유씨는 아들을 낳은 후에도 계속되는 폭력에 체념하고 있는 상태였으나 16일 결국 56년간의 결혼 생활이 파탄 나고 말았다.

유씨는 경찰에서 “영감에게 맞는 순간 젊었을 때 맞고 살았던 생각이 나 이성을 잃고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며 “이제 남편 가는 것(장례식)도 못 보고 교도소에서 남은 인생을 보내게 됐다”고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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