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라도 지역민 비하 포스터로 물의를 빚고 있는 `무등산 타잔, 박흥숙' 영화 상영을 앞두고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무등산 타잔, 박흥숙' 사건은 28년전인 지난 19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광주시 동구청 직원 4명이 무등산 기슭에 지어진 무허가 집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이 집에 거주하던 20대 청년에게 무참히 살해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지난 1977년 4월20일 오후 2~3시경 광주시 동구청 철거반원 7명이 무등산 토끼등에서 바람재 사이 속칭 무당골 주변에 자리잡고 있는 무허가 집을 철거하려던 중 직원 오모씨가 박흥숙(당시 20세)에게 인질로 잡히면서 시작됐다.
지금은 퇴직했지만 당시 동구청 직원으로 현장에서 유일하게 생존했던 김모(59)씨는 동료직원 2명을 산에서 내려보내 경찰에 신고토록 했다.
이후 김씨 등 동료직원 4명이 인질로 잡힌 오씨를 구출하기 위해 차례로 오씨에게 다가 갔으나 박흥숙에게 붙잡혀 모두 5명이 구덩이에 던져진 후 흉기에 맞아 김씨를 제외한 4명이 숨졌다.
박흥숙은 동구청 직원들이 철거하려던 무허가집에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으며, 직원들에 대해 강한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흥숙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을 졸업한 후 한때 광주시 양동 철물공장에서 직원으로 일했다.
초등학교만 나온 박흥숙은 이 공장에서 쇠파이프로 사제총과 총알을 만드는 솜씨를 가지고 있었고, 날쌘 몸놀림 때문에 `무등산타잔'이란 별명을 얻었다.
박흥숙은 사건직후 달아났다 서울에서 검거돼 사형선고를 받고 1980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당시 사건 현장에서 유일하게 목숨을 건졌던 김모씨는 “박흥숙은 자신의 여동생을 시켜 직원 5명 모두를 포박해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밀어놓고 흉기로 내리쳤다”며 “나는 정신을 잃고 깨어 보니 병원에 실려와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생존자 김씨는 “박흥숙은 키 160cm에 왜소한 체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며 “무등산 타잔으로 명명된 것은 미화된 것이라"며 "당시 사건은 명명백백한 살인사건으로 혹시나 영화가 사실을 왜곡하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