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한나라당 ‘친李-친朴’ 화해무드는 현재·미래진행형일까 아니면 ‘일시적 동거’ ‘불안한 줄타기’일까. 단초는 20일 국회헌정 관에서의 박근혜 전 대표 ‘복지공청회’에서 제공됐다. 참석한 박희태 국회의장과 안상수 대표는 차지하고라도 한나라당 국회의원 70여명이 참석해 마치 대선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당장 친李내부에서 볼멘 목소리가 불거졌다. 안 그래도 친李주류-비주류 간 갈등이 증폭중인 상황에서 심기가 거슬린 형국이다. 어쨌든 친李내부가 현재 흔들리고 있는 것만은 자명한 것 같다.
불법사찰 파문으로 mb·친李주류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21일 모 종교라디오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차기 총선공천과정에 mb의중 작용여부에 대해 “별 영향 없을 것이다. 대통령이나 어떤 이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며 “일각에선 친李계 이미 무너졌다, 없다, 이미 해체된 지 오래라 한다. 여러 사안에서 단일대오형성 같은 게 안 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지난 08년 총선재연 및 파열음 우려에 대해 “그리되면 한나라당 총선은 망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지난 ‘mb-박근혜 8·21 청와대회동’ 후 한나라당내 데탕트는 한껏 무르익은 분위기다. 내용은 여전히 ‘비급’에 가려있으나 박 전 대표는 그 시점부터 2012워밍업 행보를 본격화했다. 덩달아 박 전 대표가 ‘월朴-탈계파’ 행보를 가속화한 동시에 기존 ‘친李-친朴’ 루비콘경계도 허물어졌다. 과연 양 계파 간 경계는 진정 허물어진 걸까.
결론적으로 아니다. 남 의원 얘기에서도 속내가 일부 표출됐다. 내적 실 경계는 고스란히 존치하나 외적라인만 다소 느슨해진 상태다. 이를 가능케 한 핵심카테고리는 2012총·대선이다. 또 현 권력인 mb의 임기가 아직 2년여나 남은 데다 차기구도도 아직 명확히 선이 그어진 상태가 아니다. 또 미래권력인 박 전 대표가 차기여론선호도에서 부동의 1위를 지속 고수중이나 친李대항마와 야권대항주자 역시 부재중이기 때문이다. 특히 ‘mb-박근혜’간 ‘신뢰(?)’ 역시 2012년 4월 총선 직전, 공천구도를 봐야 확인가능하다.
‘생물’인 정치에서 2년이란 시간은 무척 긴데다 과정상 어떤 변수가 돌출될지 아직은 장담 못한다. 여권의 미래권력이 아직 확정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계파논리를 거론하는 자체가 좀 이른 감도 있다. 변곡점은 박 전 대표의 차기전선 확대와 친李대항마 출연 및 대항력, mb의 중립견지 및 차기관여 등에 따를 것으로 보인다.
‘금배지’ 유지가 최종목표인 국회의원들이 ‘힘의 이동’에 민감한 건 부인할 수없는 사실이다. 권력 추의 집권 초반엔 ‘수직이동’이 대세이나 후반기로 갈수록 ‘수평이동’ 가능성이 점차 농후해진다. 지는 권력과 떠오르는 권력 사이에서 손익계산채널이 한층 민감해지는 탓이다. 당연히 손익계산에 따른 ‘선택’책임도 뒤따른다. 하지만 단박에 선택하기엔 아직 ‘차기전선’이 무르익지 않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친朴계는 김무성 원내대표의 이탈 외 박 전 대표를 축으로 똘똘 뭉쳐있는 반면 친李계는 팽배해진 ‘2012·수도권 필패론’ 딜레마 속에서 선택 및 운신 폭이 한층 좁아진 탓에 ‘좌불안석’이다. 한나라당이란 전체 테두리로 보면 ‘친朴’도 포함된다. 현재의 민심이반기류로 봤을 때 그 누구도 장담 못하는 게 현실이다. 1차 관문인 당의 공천을 통과한들 최종관문인 ‘국민리트머스’에서 걸러질 공산을 배제 못하는 탓이다.
특히 친李계는 아직 ‘레임덕’ 끈을 놓지 않는 mb의 눈치도 당분간은 봐야 한다. mb의 현 행보로 보면 미래권력인 박 전 대표와의 권력분점을 아직은 용인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내년 중후반기 부터 차기국면이 무르익고, 미래권력 청사진과 대세가 어느 정도 가시화될 경우 ‘헤쳐모여’와 ‘이합집산’은 필연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당연히 ‘친李분열’도 뒤따를 전망이나 다만 ‘이동 폭’이 관건이다. ‘힘(?)’따른 친李계의 ‘대이동’이 이뤄지면 동시에 ‘mb 레임덕’도 자연스레 뒤따를 것이다.
냉엄한 ‘권력’의 속성이다. 이는 지난 학습효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일례로 지난 90년 ys가 3당 합당에 나섰을 당시 민정계가 거세게 반발하며 잡아먹을 듯 난리굿판을 벌였다. 하지만 곧 대세가 ys쪽으로 기울자 굿판의 중심에 섰던 인사들이 맨 먼저 ys에게 투항, 전향했다. 훗날 뒤따를 ‘권(權)의 후환’이 두려웠던 탓이다. 내년부터 2012년 총·대선 국면에 진입하는 가운데 ‘금배지들’ 특히 친李계의 ‘권 따라 엑스도스(exodus)’가 어느 정도 폭, 어떤 양태로 이뤄질까 하는 것도 한 관전 포인트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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