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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는 권학문(勸學文)에서 손자 정조에게 독서를 강조했다. "아침저녁으로 책을 읽고 밤낮으로 글을 익혀 마땅히 진실과 거짓을 가릴 수 있어야 한다. 참된 공부는 나를 위하는 것이고, 거짓 공부는 남을 위한 것이다. 참된 공부와 거짓 공부는 나라나 개인적인 일, 의리나 이익이 서로 다르기에 가히 두려워해야 한다.“
독서는 실천이다. 책을 읽었으면 단순하게 아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바른 독서는 실천이기 때문이다. 조선 명문가의 자제는 독서를 통해 인생에 물음표를 항상 던졌다. 언론인으로 조선황실문화에 밝은 이상주씨가 쓴 ‘조선 명문가 독서법’(다음생각 발행)에는 조선 선비들의 흥미진진한 독서 이야기가 풀어져 있다.
조선 선비들은 자신은 물론 가문과 나라를 올바로 세우기 위해 정독과 다독, 수행과 실용은 물론이고 우연과 필연 그리고 삶과 죽음까지도 독서와 연관 지었다.
조선의 임금은 물론이고 명문가 자제도 노력을 강조했다.
아들 손자 증손자를 모두 문형으로 만든 영의정 이경여는 칼에 새겨 남긴 '백강공수잠장도명(白江公手箴 粧刀銘)'에서 전력을 다할 것을 당부했다. '시간은 빨리 가고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다. 지금 힘써 공부하지 않으면 훗날 후회해도 소용 없다. '
한산 현감을 지낸 권양(1688~1758)은 '영가지족당 가훈'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어린 시절 궁색했다. 행동도 느리고 머리도 뛰어나지 못했다.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힘써 공부했다,천신만고 끝에 과거에 급제했다.'
조선의 독서왕 김득신은 1억1만3000번을 읽은 '백이전'을 기억해 내는 데에도 한참이 걸릴 정도로 둔재였다. 그러나 아버지 김치는 김득신의 두뇌를 나무라기보다는 독서를 통한 끊임없는 노력을 강조했다. 결국 김득신은 59세에 문과에 급제했고 당대 최고 시인이자 문장가로 이름을 알렸다.
퇴계 이황과 긴 논쟁을 벌였던 기대승(1527~1572)은 또 글이란 슬쩍 넘어가선 안 된다며 읽고 생각한 뒤 글을 지으라고 얘기했다.
실학자 홍대용(1731~1783)은 열흘만 참으면 습관이 든다고 말했다. '처음엔 누구나 힘들다. 이 괴로움을 겪지 않고 편안함만 찾는다면 재주와 능력을 계발하지 못한다. 마음을 단단히 하고 인내하면 열흘 안에 반드시 좋은 소식이 있다. 힘들고 어려운 것은 점점 사라지고 드넓은 독서세계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유학자 이경근은 독서는 어른이 먼저 모범을 보이라고 했다. '아이들을 공부시키려면 아버지나 형이 먼저 공부해야 한다. 이후 아이들에게 공부할 것과 금지해야 할 것을 말해야 제대로 이뤄진다'
모든 명문가들의 공부와 독서의 공통점은 성실성이었다. 아는 것에 앞서 열심히 하는 것이 성공의 길로 보았다. 조급한 성취심리에 빠진 학부모라면 이 책을 보면서 긴 호흡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