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눕지않고 6년간을 토굴서 정진한 일타스님

<박삼중 스님 대증언>일타 스님 ‘靜心’에 담긴 귀한 인연

김성애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1/09/02 [09:15]
사형수에서 무기수, 무기수에서 사회인으로 복귀하기까지 숨어 있던 뒷이야기를 꺼내 든 삼중 스님은 행복에 겨운 미소를 담았다. 가석방되기 전까지는 마치 성불처럼 지내면서 유명인사로 통했던 최재만 사형수는 사회에서는 가난이라는 생활고를 떨쳐내지 못했다. 번민과 역경을 맞으면서 피어낸 실한 꽃봉오리가 둥지에서 움텄다는 확신 속에서 삼중 스님은 입을 열었다.
 
2003년 12월 백양사, 조계종 제5대 종정 서옹 스님의 다비식을 참석한 최재만은 두 손 깊숙이 합장한 채 쏟아내는 피눈물은 쓰라렸다. 좌 탈하신 채 떠나가신 이서옹 종정을 추모하면서 힘겨운 자신을 덧칠한 농도는 감방 안보다 진하면 진했지 덜하지 않았다.  감방 밖에서 겪어내야만 하는 살벌한 시련들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감방 안 정보통들은 이구동성으로 씹어대기 시작한지 오래였다. ‘조만간에 재만이 형님 곧 복귀식을 치룰 것이다.’는 이런 개 같은 소문 자락은 전국 교도소에서 씹어댔다.

“제 부탁이라면 무조건 들어주셨죠. 큰스님! 부디 왕생극락 하시옵소서.”

▲ 삼중  스님   ©브레이크뉴스
갑작스럽게 퍼부어대는 눈 다발을 고스란히 맞은 채 자신이 종정스님에게 보냈던 장문의 편지를 기억했다. 떨리는 손끝으로는 붓을 잡을 수 없어서 이미 절필을 선언한 마당이였으니 아들이 부탁한 글씨 한 점은 거절하는 게 당연했지만 종정스님은 생각에 젖었다. 아버지 4명이 힘을 합쳐서 새 생명을 얻은 낸 양아들 최재만의 간절함을 역시나 큰 그릇인 종정스님은 주워 담았다. 이런 원인 제공은 바로 최재만 곁을 떠나지 않는 스님 아버지 삼중 스님이 화근이었다.
 
최재만을 살린 원정일 검사장
 
“너무 고맙습니다. 너무 고마워서 내 서옹 종정스님의 글을 한 점 얻어다 선물로 드리지요.”
상대편에서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자청하여 웬 뚱딴지같은 종정스님의 글을 선물하겠다는 약속을 뱉어 버렸다. 오래 전부터 삼중 스님은 십여 차례나 종정스님에게 글을 부탁했던지라  뒷감당을 생각지 않았다. 무슨 부탁이라도 서옹 종정은 변함없는 천진한 미소로 거들었다.

“가장 불쌍한 사람들을 교화하는 스님이야말로 가장 가까이 부처 곁에 있는 거야. 참 좋아 보여.”

교도소를 제 집처럼 들락거리는 삼중 스님의 교화사업을 종정스님은 높이 평가했다. 이런 바탕에서 삼중 스님은 백양사를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찾아가면서 붓글씨 한 점을 위해 서론을 길게 펼치었다.

“지난번에 서울고검 검사장을 만나러 다녀왔어요. 젊은 부장검사가 복도에서 제게 인사를 꾸벅해요. 그러면서 이상한 말을 반농담 겸 하더군요. ‘스님! 그 최재만! 제가 사실은 살려낸 것입니다.’ 이름은 물론 안면도 없던 젊은 검사가 재만이 이름까지 밝히면서 자신이 살려냈다는 말에 당황했죠. 초면에 별 농담을 한다는 생각으로 쳐다보았더니 ‘정말입니다요 스님! 진의를 모르셔서 그러시는데 제가 최재만을 살렸다니까요!’ 웃음기 어린 채 털어놓는 이야기는 사실이었어요.”

삼중 스님을 복도에서 마주치니 반가운 마음에서 최재만 이름을 꺼내든 원정일 부장검사는 후일에는 고검장과 교정국장까지 지낸 쟁쟁한 법조인이었다. 검사장을 만나러 가던 길이었으니 삼중 스님은 새까만 젊은 검사를 찬찬히 훑어보면서 귀를 기울였다. 대검에서 검찰 2과장직을 수행하던 시절에 그는 사형수 5명을 선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규정에 따라서 선별된 5명 안에 최재만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윗선에 결재를 올리기만 하면 바로 집행되는 절차만이 남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서류에 첨부된 진정서가 원 검사의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방송 매체를 통해서 귀에 익은 삼중 스님 이름이 눈에 들어오더니 이서옹 종정스님까지 서명 연서한 진정서가 마음이 편치 않게 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삼중 스님은 힘껏 손뼉을 치면서 ‘역시 살 놈은 살 수 있도록 하늘은 돕는구나!’는 기쁨에서 한껏 웃었다. 삼중 스님은 서옹 종정의 구명 연서를 필두로 내밀면서 열심히 구명운동을 한 덕분인지 아니면 방송매체를 통해서 수십 차례나 떠들고 다닌 덕분인지 그는 유명인사 최재만과 삼중 스님을 기억해냈다.

대검의 검찰 2과장은 사형수 서류를 총괄하면서 사건의 죄질과 발생연도에 따라서 집행자를 선별했다. 최재만의 재심을 청구하기 위해 제출되었던 진정서는 이미 기각이 된 상황인지라 오로지 집행만이 남겨져있었다. 밖에서 아무리 구명운동을 해보았자 집행자 명단으로 서류를 올리기만 하면 모든 게 끝이었다. 편하지 않는 마음에서 그는 상관인 검찰국장에게까지 찾아가서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삼중 스님이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진정서를 괜히 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마음에 검찰국장도 손을 들어주었다고 한다.

“과장이 알아서 해! 그리 고민할 게 뭐 있어.”
 

그래서 최재만의 이름 석 자를 제외시켰다는 전말이었다. 어느 특정인이 최재만 사형수를 살려냈다는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자신이 결정타를 날렸다는 생각을 간혹 했다면서 젊은 검사는 미소 지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간 최재만의 목숨은 사실상 원정일 부장검사가 살려냈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감격에 겨워 삼중 스님은 자신의 주변에서 가장 구하기 힘든 값진 선물을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이서옹 종정스님의 붓글씨 한 점이 낙점된 배경이었다. 삼중 스님은 이런 사실을 배명인 전 법무부장관에게서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분명한 사실이겠네요. 그 시절에 대검 2과장을 원 검사가 했군요. 그렇다면 집행 서류를 만지는 담당과장이었으니 최재만은 원 검사가 살린 게 맞네요.”

배명인 전 법무부장관이 건네 준 확인 사살까지 덧붙이면서 삼중 스님은 종정스님에게 글 한 점을 써줄 것을 부탁드려야 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불편한 종정스님은 주변 사람들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아예 눈을 감고 있었다. 삼중 스님은 언제나 자신의 부탁이라면 흔쾌히 거들어주었던 종정스님이 이제는 해결해 줄 수 없었다. 약속이라면 언제나 어느 때나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강한 삼중 스님은 괜한 빚을 젊은 원 부장검사에게 지게 된 셈이었다.

이로부터 삼중 스님은 승진으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원정일 검사장과는 친숙해졌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서는 말빚을 남아 있는 마음에서 삼중 스님은 매번 마음이 무거웠다. 어느 날 최재만 무기수를 면회하던 차에 자연스럽게 꺼내놓았다. 시간이 흘러 해결책을 찾아낸 최재만 무기수는 원정일 교정국장에게 편지를 썼다.

“삼보님께 지심 귀의 하옵고, 국장님! 변절기에 존체 평안하신지요. 너무 오랜만에 인사 올리니 송구스런 마음이 더합니다. 오래 전 서울지검에 계실 때 몇 번 인사드렸고, 언젠가 연하장이 되돌아 왔습니다.

국장님! 제가 88년 무기로 감형이 된 후 삼중 스님을 통해 국장님이 베푸신 크신 은혜를 인연으로 오늘의 제가 존재함을 알기에 감사한 마음을 전했지요. 크신 은혜에 실망 시키지 않는 숨결이 되겠습니다. 국장님! 년 초에 삼중 스님이 다녀가셨습니다. 여러 이야기 중 국장님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스님 말씀이 국장님과의 그 당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어 마음이 편치 못하다고 하시기에 제가 내용을 여쭤보니 국장님께 서옹 큰스님의 글을 드리기로 했는데 아직도 약속을 못 지키고 있다고 하시기에 그 자리에서 제가 큰스님께 편지로 부탁드려 국장님께 드리겠다고 하니 그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웃으시며 허락하셨지요.

바로 국장님이 저에게 베푸신 크신 은혜를 이야기하며 서옹 큰스님께 글을 부탁드렸습니다. 저는 복이 많아 큰스님을 아버님으로 모시거든요. 소식이 없으시기에 많이 불편하신보다 걱정했는데 오늘 큰스님이 계신 백양사에서 사람을 보내 면회도 했고 이렇게 국장님께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삼중 스님이 그동안 몇 차례 백양사에 가서 큰스님 뵈오면 어느 땐 불편하시고 어느 땐 눈을 감고 계신 노장님께 차마 글을 써달라는 말을 못하고 올라오곤 했다고 하시더군요.

오늘 인편에 서적과 함께 큰스님이 글을 보내셨는데 서옹 큰스님의 글이 아니고 우리 스님네 중 최고의 율사이신 일타 큰스님의 글입니다. 오신 분께 왜인가 여쭤보니 요즈음 몸이 불편하시고 기력이 딸려서 글을 못 쓰신답니다. 언제고 마음과 육신이 허락하면 보내도록 하신다는군요. 큰스님이 여러 스님들을 헤아리시더니 일타 스님께 특별히 사람을 보내서 부탁을 하여 글을 받아 왔다고 합니다. 어느 스님보다도 훌륭하신 분이기에 일타 큰스님의 글을 보낸다고 하시더래요.

국장님! 죄송합니다. 모든 것은 인연이 아닐까요. 서옹 큰스님의 글이면 더욱 좋았을 텐데 그래도 큰스님의 뜻은 함께 하였으니 웃으시고 받아주세요. 국장님! 이곳에서 국장님께 인사 올리려 하니 여러분이 불편해 하시는 것 같고 하기에 왠지 많은 마음을 전하려 해도 제 자신의 삶에 많은 변화와 개혁에 모두를 대신하여 감사 인사드립니다.

한 번 더 고개 숙여 감사드리오며 더욱 현실에 충실하고 예쁜 삶을 살아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국장님 더욱 평안하시고 행복하시길 제 불보살님께 두 손 모아 빌고 또 비옵니다. 감사합니다. 부족한 최재만 합장. (1995년 3월 13일 편지 전문)”

일타스님의 ‘靜心’
 
삼중 스님은 차마 꺼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던 약속을 풀기 위해 서옹 종정스님은 움직여 주었다. 자신의 손으로는 도저히 붓을 들지 못하는 상황에서 서옹 종정은 해인사 일타스님에게 상좌를 보냈다. 오른 손 열두 마디를 모두 부처님 앞에서 불에 태워 생손을 받친 치열한 수행자, 일타스님은 조계종 전계대화상으로서 글씨에는 힘이 서려 있었다. 일타스님은 한 자리에 앉아 하루 한 끼만 먹고 눕지 않으면서 6년간을 홀로 토굴서 정진한 고승으로 율법에 투철했다. 멀쩡한 생손을 불에 태워 부처님께 바친 일타스님을 모든 스님들은 존경해 마지않았다. 더욱이 일타 스님의 감동스런 수행에 덧붙여 가족 일가의 독특한 내력으로 더욱 유명했다. 친 외가를 포함한 41명의 가족들 모두 출가한 불가의 집안으로서 단단한 기반을 굳힌 역사는 살아 숨 쉬었다. 불심이 깊었던 외증조할머니를 따라 출가한 일가족은 하나 둘씩 출가하여 친 외가 41명은 각기 달리 죽음을 무릎 쓴 치열한 수행을 거쳤다. 깨달음에 아우른 가족사는 일타스님을 포함하여 어머니, 누나, 삼촌 그 누구 한 사람도 예사로운 수행을 거치지 않는 사람들이 없었다.

존경하는 서옹 종정의 편지에 대한 답례로 일타스님은 글에 정성을 다했다. 처음으로 부탁하는 노승의 서신에 감동하여 한 획마다 힘이 서린 ‘靜心 (정심)’이 탄생되었다. ‘靜心’을 받아 든 최재만은 눈물을 쏟았다. 그렇지만 검열 대를 통과하지 못한 채 원정일 교정국장에게 보낸 편지와 글씨 한 점은 삼중 스님에게 전달되었다.

“삼보님께 지심 귀의하옵고. 아버님! 지금 밖에는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마음은 전국이 완전 해갈 될 수 있는 비가 왔으면 하는 간절함입니다.

변절기에 아버님 범체 평안하신지요. 이곳의 저는 아버님의 사랑과 염려 속에 잘 지내옵니다. 언제나 모두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아버님! 지난 번 말씀하신 원정일 국장님께 드린다던 서옹 큰스님의 글을 제가 큰스님께 글을 올렸습니다. 오랜만에 인편으로 소식을 주셨습니다. 큰스님이 기력이 딸려 글을 쓰실 수가 없다십니다. 큰스님이 직접 사람을 보내서 일타 큰스님께 부탁드려 글을 한 점 가져 오셨다고 하네요.

국장님께 직접 편지와 함께 봉투에 담아서 보내드리려 했더니 이곳에서 많은 부담을 느끼는 듯 하고 문제가 될까 봐 꺼려하기에 오늘 다시금 아버님께 드리오니 아버님이 시간 허락 하시는 대로 국장님께 전해 주세요.

아버님!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낙관 도장이 둘 다 거꾸로 찍혔습니다. 일타 큰스님이 일부러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받는 분이 좋아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국장님께 보여드리고 일타 큰스님께 가시는 기회가 있으시면 다시금 하나 받아다 드리도록 하세요. 이 봄 아버님 법체 더욱 평안하시길 두 손 모아 비옵니다. 재만 합장. (최재만 편지 전문)”

일타스님의 글씨 한 점은 결국에는 삼중 스님에게 숙제로 남았다. 그 시절 원정일 교정국장은 너무나 바쁜 일정으로 일국의 대통령을 만나기보다도 더욱 힘들 정도였다. 전국 교도소 모두를 통괄하는 직책이다 보니 막강한 인사권을 가진 자에게 선물을 건넨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몇 년 전에 약속한 말빚을 갚는다는 생각이 괜한 오해소지를 불러올 수 있다는 노파심이 생겼다. 현재까지 무기수로 수용생활을 하고 있는 최재만의 가석방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교정국장의 자리를 불편하게 만들 소지가 다분했다. 그래서 삼중 스님은 자비사의 작은 서랍장에다가 일타스님의 글씨 한 점을 곱게 넣어두었다. 몇 년 째 막강한 교정국장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인사이동을 한 세월동안 잊혀졌다. 최근에서야 서랍을 정리하던 삼중 스님은 힘발 서린 ‘靜心’의 글씨본을 발견하면서 더불어서 잃어버렸던 말빚을 떠올렸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근 이십여 년 전에 약속한 말빚은 삼중 스님의 마음속에서 새 하얗게 바래져 있었다.

희한하게도 소중한 인연들이 귀하게 얽혀있는 ‘靜心’을 간직하게 될 주인공이 삼중 스님의 마음에 찾아들었다. 말빚을 진 원정일 검사장도 아닌 더욱이 ‘靜心’을 서옹 종정스님께 받은 최재만도 아니었다. 한 푼이라도 어려웠던 시절에 감방 안에서 ‘이총환국’을 성심껏 거들어 주었던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었다. 지난 주 우연히 기차 안에서 삼중 스님은 정상수 불자를 만났다. 이십여 년 동안 간간히 만났지만 여전히 예의바른 태도로 깍듯했다. 모든 사업을 손에서 놓아 둔 채 조그만 텃밭을 가꾸면서 요양한다는 최근 담을 전했다. 부산에서는 전설적인 인물로서 대단한 건달로 지냈던 시절부터 삼중 스님을 마치 부처처럼 잘 대우했다. 조용히 쉬면서 가꾸는 텃밭 딸린 자그마한 집에다 서옹 종정스님의 귀한 마음을 담은 ‘靜心’을 걸어두고 싶었다. 근 이십여 년 동안에 삼중 스님의 가슴 깊숙이 오래도록 잊지 못할 지인이 바로 정상수 불자였다.

함께 복역 중인 어느 스님의 합의금을 내주었다는 소식에 삼중 스님은 고마운 인사를 하면서부터 인연은 이어졌다. 정상수는 건달 조직을 거느렸던 두목 자리에서 은퇴한 후였지만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검찰에 의해서 폭력조직 연루 죄로 대구교도소에 복역 중이었다. 독실한 불자로서 조직적인 교화활동을 앞장서지 못하는 불교계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복역을 끝낸 후에는 재소자 교화에 앞장서겠다는 마음까지 내비치었다. 또한 이총환국 문제로 동분서주 뛰어다니는 삼중 스님을 적극적으로 돕고 싶다는 의사표현까지 했다. 며칠 후 정상수의 아내 서복임은 봉투 하나를 삼중 스님에게 건넸다. 하얀 봉투 안에는 거금 일천만이 들어있었다. 그 시절 상당히 큰돈으로 이총봉안사업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갇혀있는 사람이 건네 준 정성은 세상에 있는 여느 큰 부자보다도 더욱 컸다. 그 해 여름, 아내는 다시 삼중 스님에게 더운 여름철에 수박이라도 사서 드시라면서, 글쎄 오만원도 많은 데 자그마치 5백만 원을 건네주었다. 일본을 오락가락하면서 ‘이총환국’을 진행하는 끝 무렵이라, 돈줄이 없어서 한숨을 이리 저리 쉬던 시절이었다. 내일이면 당장 챙겨야 할 돈이 땡전도 없는데 오백만원은 횡재한 듯 정말로 고마웠다. 큰마음이 건네 준 정성에 삼중 스님은 아예 반해 버렸다. 절박하고 궁핍한 현실 앞에서는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큰스님! 대법원에 올라가 있는 판결이 곧 내려질 예정입니다. 그러니 제가 큰스님을 5년 후에나 뵈어야 겠습니다. 바쁘신 큰스님께서 인사차 오시는 면회는 이만 받겠습니다.”

경제적인 도움에 고마워서 찾아오는 삼중 스님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면서 면회를 사절하는 사나이 정상수에게 삼중 스님은 더욱 빠졌다. 판검사 뺨치는 자들이 수두룩한 감방 안에서 정상수의 형량을 5년으로 낙점시킨 바람에 그는 이야기 말미에 형량까지 밝히게 되었다. 주심판사는 배만운 대법관이었다. 삼중 스님과는 친분이 전혀 없는 배만운 대법관을 수소문 끝에 찾아 나섰다. 무슨 수를 쓰던지 정상수에게 빚진 마음을 갚을 수 만 있다면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큰스님! 꼭 한번만이라도 뵙고 싶었습니다. 저희가 형을 확정 시켜 놓으면 큰스님이 교화하시는 것에 늘 감사했습니다. 이리 직접 찾아주시니 정말 기쁩니다.”

배만운 대법관의 편한 인사말에서 힘을 얻은 삼중 스님은 정상수에게 반해 놓으니 이성을 잃은 채 단도직입적으로 사건을 털어 놓았다.

“큰스님! 제게 배정된 사건이지만 아직 기록은 올라오지 않았군요. 서류가 오면 제가 잘 읽어보겠습니다.”

참 점잖은 대법관은 바쁜 일정이 밀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심성의껏 삼중 스님을 대했다. 더붙여서 사형수 본인이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사형판결에서는 언제나 많은 고민 속에서 판결을 내려지지만 판결 후에도 며칠 밤을 자지 못한다는 가슴앓이까지 털어 놓았다. 자신이 내린 사형판결로 억울하게 죽는 사람들도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는 덕망 있는 대법관에게 삼중 스님은 감격했다. ‘대법관이라면 이 정도의 덕은 갖춰야 한다.’면서 면회실에서 삼중 스님은 들뜬 마음으로 정상수에게 털어놓았다. 그런데 삼중 스님이 생각했던 결과 치는 현실에서는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앞으로 큰스님 얼굴을 뵈올 수가 없습니다. 결국 주심 판사에게까지 가셨군요. 그런데 가셔서 추한 부탁을 왜 합니까? 다 압니다. 저를 위해 가셨다는 것을, 그러나 정말로 저를 좋아하신다면, 그런 부탁은 원치 않습니다. 죄 지은 만큼 형을 받을 각오가 된 놈입니다.”

크게 실망하는 정상수가 밝힌대로 그대로 5년형으로 판결되었다. 이번 사건에서 삼중 스님은 이성을 잃어버린 기대치란 역시나 물거품이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깨끗하고 덕망 있는 배만운 대법관은 더욱 존경스러웠고 사나이 중에 사나이인 정상수에게는 더욱 반해버렸다. sungae.kim@hanmail.net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