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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정치편(허약한 민주주의와 비열한 자본주의)은 2000년 국회의원이 된 후부터 칼럼 형식으로 꾸준히 발표해 온 정치 평론과 대정부 질문 등 22편을 골라 수정 보완한 원고들이다. 마지막으로 정책을 다룬 3부(상생 복지국가로 가는 새로운 해법)는 김부겸 의원이 평소 관심을 가져 온 일자리, 교육, 복지 및 통일 분야에서 그동안 전문가들과 학습과 토론을 거쳐 정리한 내용들을 실었다.
추천의 글
<시골의사 박경철, 18대 총선 통합민주당 공천 심사 위원 당시 한겨레21과의 인터뷰>
한나라당은 이명박, 박근혜, 정몽준 등 확실한 카드가 있는데, 민주당은 그에 필적할 만한 대중적 스타가 없었죠. 대신 재선·삼선 의원들이 상당히 괜찮더라고요. 특히 공심위에서 함께 활동했던 김부겸 의원의 정치력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공심위와 지도부가 파국으로 다가가면 그걸 어떤 식으로든 풀어냈던 사람이 김 의원이었습니다. 끝까지 지도부를 설득해서 공심위가 다시 굴러가게 하는데, 정말 정치인으로서 뛰어난 분입디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
김부겸을 처음 만난 것은 피차 대학 복학생이었던 80년도 였던 걸로 기억한다. 질풍과 노도의 시대, 치열했던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사자후를 토하던 그는 우리의 야전 사령관이었다. 걸출한 웅변가였고, 결의에 찬 행동가였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학과 교수, 진보정치세력의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 모임 공동대표>
인생편은 학생운동 때부터 익히 알던 ‘너무나 인간적인’ 면모라 새삼스러웠고, 정치편은 거의 한국 현대정치사에 가깝다. 부드러운 언행이 저리 깊은 내공에서 나왔구나 하고 새삼 놀랐다. 정책편에 있어서는 진보적인 내 입장에서 볼 때 흔쾌하지 않은 점도 있으나 노선을 떠나 자유주의 정당에 속한 정치인이 저토록 치열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안 모색에 열중하는데,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 책 주요 내용엿보기
-여러 사람이 홍준표 씨의 영입에 공을 들였고 홍 변호사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던 어느 날 저녁. 이부영, 노무현, 제정구 의원 등과 나는 잠실 선수촌 아파트에 사는 홍준표 변호사의 집으로 쳐들어갔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난 홍 변호사는 잠옷 바람으로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질질 끌 거 뭐 있습니까? 고민은 그만하고 우리와 같이 합시다.” 우리는 최종 결심을 받으려 했다.
홍 변호사도 화답했다. 우리는 같이 맥주를 마셔가며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었고, 결론은 이미 난 분위기였다. 홍 변호사를 확실히 잡았다고 생각한 우리는 밤 1~2시 쯤 홍 변호사의 집을 나왔다. 다음 날 민주당사를 찾아 입당선언을 하면 끝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양김 씨가 벌이던 영입 경쟁은 그 짧은 밤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나중에 취재한 상황을 종합하면 홍 변호사 집에 새벽 5시 쯤 전화벨이 울렸다. 홍 변호사는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청와대였다. 대통령의 호출을 받은 홍 변호사는 급히 청와대로 달려갔다. “아무 소리 말고 신한국당 들어 오거래이.” 결국 홍준표 변호사는 신한국당을 찾아가 입당을 선언했다. 불과 몇 시간 사이에 상황이 180도 바뀐 것이다.
홍 변호사의 신한국당 입당 발표를 들은 우리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허탈했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본능적인 분노도 일어났다. 양당의 영입 경쟁 속에서 3김정치 청산과 지역정당 해소라는 기치를 들고 그나마 세를 규합해가던 우리에겐 또 한 번 좌절의 순간이었다. (1부, 하룻밤사이에 놓쳐버린 홍준표, 본문 85쪽)
-‘통추’가 해체되고도 통추 멤버들은 계모임을 하듯이 주기적으로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이런 저런 정치적 교감을 나누어 왔다. 때는 97년 대선은 물론 2000년 총선까지 끝나 내가 의원이 됐던 그 해 가을쯤이었다. 어느 날 ‘통추’ 멤버들의 모임에서 노 최고가 불쑥 대선에 나설 뜻을 비쳤다. “제가 한 번 큰 뜻을 펴보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 좀 도와 주이소.”
참석자들은 반신반의했다. 모두 노무현보다 경력으로야 못할 것 없는 명망가들이었다. 그에 비해 당시 노무현은 부산에서 낙선한 상황이었고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내기도 전이었다. 그런 불확실한 상황을 확신을 갖고 돌파하는 저돌성이 노무현 정치에는 있었다. 나 역시 반신반의했던 마음을 점차 기대감으로 바꿔가고 있었다. (1부, ‘통추’와 노무현, 본문 89쪽)
-강경파였던 나는 정치권에 들어와서는 온건파로 분류된다. 정치는 통합과 상생을 목표로 해야만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 철학은 정치적 스승이었던 제정구 의원에게서 배운 것이다. 죽음을 얼마 앞둔 1999년 가을, 암 투병 중에도 서면질의로 국정을 살피는 모습은 그야말로 눈물겨웠다. 제정구 선배는 내게 귀중한 말을 남겼다. 아직도 그의 말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새겨져 있다.
“모순과 대립을 통한 세계의 발전이라는 명제는 이제 불가능할 걸세. 상대방을 죽여야 내가 산다는 식의 정치 행태도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게고. 21세기에는 화해와 상생, 통합의 정치 모델만이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다네. 모든 사물, 모든 인간과의 관계를 늘 새롭게 깨닫고 발전시켜 나가도록 하게나.”
적을 만들고 대립각을 세워야 지도적 인물이 되고 확실한 지지층이 생기는 오늘날의 정치풍토에서 나 같은 온건파들은 늘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이른바 존재감이 없다고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나는 오늘 우리 사회의 거대한 균열―계층 간, 세대 간, 지역 간―을 보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공존과 화해, 상생의 길밖에 없다고 확신한다. (1부, 통합과 상생을 정치적 화두로, 113쪽)
-역대 어느 선거 결과를 보더라도 민주당이 승리하면 진보 정당도 같이 약진해왔다. 한쪽이 잘되면 다른 쪽도 잘됐고, 한쪽이 쪼그라들면 같이 쪼그라들었다. 즉, 둘은 길항관계가 아니라 상보관계에 있다는 게 국민들 눈엔 뻔히 보이는데 왜 우리 눈엔 안 보인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빅 텐트에 모이지 않으면 한나라당 외에 누구도 좋을 게 없다는 경험칙을 이젠 솔직히 인정했으면 한다.
빅 텐트는 집권 시 범야권의 연정을 전제한 가운데 야권 내부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정당 간 연대 틀을 의미한다. 욕심 같아서는 미국 민주당처럼 급진파나 뉴딜주의자부터 블루독까지 한 당에서 같이하는 게 좋겠지만 그러기엔 한국 정치의 포용성이 아직은 너무 협애하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 같다. (2부, 빅텐트론, 본문 209쪽)
-공감과 비평은 ‘타자’에 대한 너그러운 인정과 철저한 이해로부터 나온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현재 우리 정치가 보여주는 이념 과잉, 정책 과소 그리고 싸움이라는 살풍경한 모습을 계속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의 정치철학을 한 줄로 표현한다면 ‘공감과 비평을 통한 상생의 정치’이다. 부디 내가 제시한 몇 가지 정책 대안들이 비평의 마당에 펼쳐져 상생의 정치로 한 걸음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3부, 공감과 비평을 통한 상생의 정치, 본문 226 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