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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의 대만 주권은 不動의 사실”

대만 외교부, 영토주권의 역사적 국제법적 근거 재천명

박정대 기자 | 기사입력 2011/09/08 [10:48]
대만 외교부는 7일 “국내외 각계는 중화민국(대만)이 1945년 10월25일부터 실질적으로 대만에 대한 일체의 주권을 회복하고 행사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만 외교부는 또 “중화민국이 대만을 실효 통치한 것은 역사적 사실일 뿐 아니라 국제법적 근거를 갖고 있다”고 천명했다.

대만 외교부의 이날 발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대만과 그 부속도서의 지위를 규정한 포츠담 선언과 일본의 항복문서가 갖는 국제법적 효력에 대해 제기된 일각의 의문을 반박하기 위한 것이다. 외교부의 발표는 대만과 그 부속도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중화민국 영토임을 강조하는 의미를 갖는다.

대만 외교부는 하루 전 발표한 성명에서도 대만과 중화민국의 역사적 지위에 대한 공식 해석을 재천명했다.

성명은 청나라 정부가 1895년 청일전쟁 후 시모노세키조약(馬關條約)에 의거해 대만 본도와 펑후(澎湖)열도를 일본에 할양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신해혁명을 통해 1912년 성립된 중화민국이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청나라의 법통과 국제적 법인격을 계승했다는 점에서 대만과 펑후열도는 중화민국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7일 대만 외교부가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밝힌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화민국은 1941년 12월9일 정식으로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시모노세키조약을 포함한 중국과 일본 사이의 조약, 협정, 계약 등을 일률적으로 폐지한다고 선언했다. 청나라의 계승자로서 당시 중화민국 정부는 대만을 회복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1943년 12월 중국, 미국, 영국 3국 수반은 카이로 선언을 발표했다. 카이로 선언은 일본이 중국으로부터 침탈해간 둥베이(東北)3성과 대만, 펑후열도를 ‘반드시 중화민국에 반환해야 한다(shall be restored to the Republic of China)’고 규정하고 있다. 1945년 7월 중국, 미국, 영국 수반들은 다시 포츠담 선언을 발표하고, 카이로 선언의 조건들이 ‘반드시 실행돼야 한다(shall be carried out)’고 재천명했다.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에서 사용한 영문 ‘shall’은 의미상으로 완전한 구속력을 갖는다. 이 밖에도 1945년 9월2일 일본이 연합군에게 제출한 ‘항복문서’에서도 포츠담 선언을 수용하고 집행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은 비록 조약의 형식이나 명칭을 갖고 있지 않지만, 내용과 발표 방식으로 볼 때는 본질적으로 공식적인 공동성명이다. 따라서 정치적, 법률적으로 당사국에 대해 똑같이 구속력을 갖는다. 두 개의 선언이 미국의 조약 코드번호를 갖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무부가 이를 ‘미국의 조약 및 기타 국제협정 총집’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의 ‘항복문서’는 보다 큰 역사적 의미와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미국은 항복문서를 ‘미국 법규대전’에 수록했을 뿐 아니라 ‘유엔 조약집’에도 편입했다.

1945년 10월25일 중화민국 정부는 최초의 대만 행정장관 천이(陳儀)를 타이베이(臺北)에 파견해 일본의 항복과 관련한 업무를 처리하도록 했다. 아울러 ‘대만과 펑후열도는 이미 중국 영토에 정식으로 편입됐으며, 일체의 정치적 사안은 중화민국 국민정부의 주권 아래 있다’고 선언했다.

중화민국 정부는 나아가 1946년 1월12일 대만과 펑후열도 주민들에 중화민국 국적을 회복시키고, 이를 1945년 10월25일로 소급해 적용한다고 공포했다. 따라서 중화민국은 실질적으로 1945년 10월25일부터 대만과 펑후열도를 실효지배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은 지금까지 66년간 중단된 적이 없었다.

일부 인사들은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 일본 항복문서의 ‘형식’이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1952년 중일평화조약은 ‘조약’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대만과 펑후열도의 주권이 1945년 10월25일부터 이미 중화민국에 반환됐음을 재확인했다.

중일평화조약은 대체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근거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일본이 대만과 펑후열도, 난사(南沙)군도, 시사(西沙)군도 등 영토의 포기를 선언한다고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수권한 당사국이 별도로 일본과 조약을 체결해 영토문제를 해결하도록 했다.

더욱이 일본은 보다 구체적인 평화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중국공산당이 아닌 중화민국을 선택했다. 이에 따라 중화민국 외교부는 1952년 4월2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되기 7시간 전 일본과 중일평화조약을 체결했다. 중일평화조약의 여러 조문은 대만의 주권이 중화민국에 귀속된다는 강력한 법률적 형식의 근거가 된다.

일부에서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중일평화조약에서 일본이 대만과 펑후열도를 단순히 포기만 했을 뿐 누구에 귀속되는지는 확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일부 국제법학자들은 사실이 그렇다면 이론적으로 대만은 2차대전 이후 ‘주인 없는 땅’이 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화민국은 1945년 10월부터 대만과 펑후열도를 실효 지배했으며 관할통치권 행사를 중단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중화민국은 국제법의 ‘시효원칙’에 의거해서도 대만과 펑후열도의 주권을 취득할 수 있다.

<용어설명: 중일평화조약>
 
중일평화조약의 중국어 명칭은 ‘中華民國與日本國間和平條約’이다. 줄여서 ‘中日和平條約’, ‘中日和約’, ‘臺北和約’으로 불리기도 한다. 2차대전의 전후 처리를 위해 1952년 4월28일 중화민국과 일본정부가 파견한 외교대표가 대만 수도 타이베이에서 체결한 평화조약으로 그 해 8월5일 발효됐다.
이 조약은 중화민국과 일본 사이의 전쟁상태를 본 조약 발효일로부터 종료한다고 규정했다. 아울러 일본은 대만과 펑후열도, 난사군도, 시사군도에 대한 모든 권리 및 1901년 신축조약(辛丑條約) 이후 중국에서 갖고 있던 모든 특수권리를 포기한다고 명기했다.

이 조약은 당시 일본이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을 배제함으로써 중화민국(대만)을 전체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했음을 시사한다. 이 조약 체결 이전인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한 장제스(蔣介石)는 대만으로 중화민국 정부를 이전했으며, 대륙에서는 신중국이 건국됐다. 일본은 1972년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6년 뒤인 1978년 베이징(北京)에서 중일평화우호조약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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