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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계정 시인 '근작시 5편'

<근작시 5편>까마귀 한 마리 외마디 비명으로 날았다

손계정 시인 | 기사입력 2011/11/15 [14:21]
꿈꾸는 화살
                              
삶이 시작되는 곳에서 왔다
빼앗음으로 풍요로워지는 욕망의 길에서 왔다
발끝에 주검이 구르던 전쟁터에서 왔다
살아남음을 위한 역사의 저 건너편에서 왔다

그 날도 오늘처럼
노을은 전쟁터의 피처럼 하늘 흥건히 적셨고
까마귀 한 마리 외마디 비명으로 날았다
나는 살아 있었다

그러나 살아 있는가 지금 나는
송충이에 고사(枯死)당한
붉은 소나무 병풍으로 둘러치고
노닥거리 과녁 하나 심어둔 자 누구인가
눈부신 한나절을 나를 보내고 나를 거두고
솔바탕이 닳도록 다시 나를 보내고
돌아서는 無情
 
흑단의 활집에서 나는 꿈꾼다
삶이 끝나는 곳까지
욕망의 혼불 사그라짐까지
전쟁의 끝 화합의 깃발로 내가 흔들리는 그 날까지 
정지되는 역사의 마지막 숨결까지를
나, 두 눈 부릅뜨고
살아 있는 채로 날아가기를
 
*솔바탕 -활 한바탕 활 쏘는 지점에서 솔대까지의 거리 120보
▲ 손계정     ©브레이크뉴스

버려진 과녁
                                      
 
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연모(戀慕) 물결쳤던가
푸른 대기를 가르며 하얗게 비상하던 화살들
날카로운 부리 은빛으로 반짝이며
일제히 내 심장으로 내려꽂히던 날
도도한 미소로 바람을 놓아 거부했다
물리치면 물리칠수록
더 달아오르던 정염
불덩이로 날아오를 때
더 이상 거부하지 못하고 껴안을 쯤
내 속을 파고드는 그것이
어느 틈엔가 투명한 개울을 만들고
길 잃은 별빛을 들이고
바람소리 놓고 있다는 걸 몰랐다
지네 한 마리 비 피하러 들어와 있는 줄도 몰랐다
이제 가볍게 날아온 화살 하나도 감히 붙들지 못하고
풍경의 저쪽으로 흘려보낸다
결국 오늘 아침 뿌리째 뽑혀진 내 몸
한쪽으로 내던져지고
나 섰던 자리 실하게 생긴 젊은 놈 하나
떡 벌어진 가슴팍 내밀고 있다
짧았던 눈부심
그땐 들리지 않았던 억새의 수런댐이
오늘은 겨울을 불러들이는 노래임을 안다
늦가을을 울음 우는 녹나무 그늘 아래
낮은 목소리로 내가 흐느낀다
그때 내 가슴 한복판에는
붉은 태양 하나 걸려있어
얼마나 많은 연모 파도치게 했었던가.....
 
명중
 
결국,
다스리지 못했던 신열
불로 타오른다
비켜들 서라
걸거적거리지 마라
바람 소리에 날리는 먼지 한 톨도
순간의 스침
눈빛이라도 스치는 찰라
발화가 폭발을 부르리라
길고 길었던 지난 세월
꽉꽉 눌러 재웠던 연심
화석으로 굳은 게 아니었더라
용암덩이로 들끓고 있음이었더라
도덕의 굴레로도
어떤 윤리의 위엄으로도
이제 더 이상 억누르지 마라
홍심을 향해 달려드는
이 순간,
내 마지막 불꽃의 혼절이다
 
해돋이
 
별빛, 아직 물소리를 내는
어둑새벽
활시위를 당긴다
날아가는 화살의 오늬에 빨려드는 시간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비밀스런 음모 하나 숨긴
찬란한 비상
과녁을 파고든다
홍심이다 
스며드는 시간
화살이 몸을 푼다
고구려 무영총의 벽화에
화랑 관창이 활을 재고 있다
2004년 제작된 카본대의 화살이다
뒤섞인 시간들이 발효해 불덩이를 키운다
두둥실
떠오른다
하늘에 걸린다

혁명을 꿈꾸던 화살 하나가
걸어놓은
눈부심 

주몽의 꿈
  - 명궁독백
                      
빗나간 화살이 나를 다스렸다.
준엄하게 거부하던 과녁의 도도함이 나를 길들였다. 수도 없이 덤불 속으로 빨려들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던 화살. 그 신열로 떨리던 소리 유령처럼 맴돌고 가슴에 금을 그었다. 돌부리에 쓰러지고 부서지며 내지르던 비명에 찢기던 귀 흐르던 피까지도 홍심의 위협이 되고 유혹의 또 다른 얼굴이 되었다. 서슬 푸른 웃음 흘리며 솔은 여전히 살을 거부하고 무지한 오기 하나로 달려들던 집념도 집념만큼 무섭게 늪으로 뻗어나가던 홍심에 쓰러질 때 많았다. 지치고 아득해질 때마다 미끼처럼 화살을 부르던 홍심의 색깔 고운 신음... 다시 일어서 가야 할 길 계시처럼 받들고 험준한 벼랑 끝 지친 의식을 흔들어 깨웠다. 두 눈 부릅뜨고 가슴에 새기는 조준점. 이른 새벽의 해오름 무너지는 노을 함께 지키며 달 향해 당겼던 무수한 절망의 활시위.
 
오늘 나는 그 사라지고 부서지고 상처투성이 화살이 일구어 낸 혁명이 되었다. 이제 눈을 감아도 날아오르는 솔개 한 마리, 바람결에 유서장 떠 보내는 청매화 꽃잎 한 장도 과녁의 홍심이 되어 차오른다. 이를 일러 사람들은 명궁이라 하나 그들이 어이 알리. 나의 몸 어느 순간 과녁의 이름이 되고 나의 넋 이미 활이 되어 비류수 가 말 달리던 주몽의 옷자락에 스며든 끈적한 땀내음을 꿰고 유화부인 눈물 속 어리던 해모수의 거친 숨결을 휘돌아 천지사방 촉 하나로 떠다니고  있음을. 이미 나, 따위, 없음을. 

*필자/손계정. 시인, 시낭송가, 화가. *2002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신인상,  *개인시집:『솔개 (2009 한국문연)』 등 4권 *낭송CD『내 나음의 푸른 길 따라』등 개인CD 3집 *개인시화전 및 시서화, 부채전을 비롯한 개인 전시회3회 및 솔리드캘리아트 3인 전시회, 영호남 중견초청작가 선면전, 거리작가전 등 단체전시회 다수 *한국시인협회, 부산시인협회 회원, 알바트로스시낭송문학회고정사회 *『시와 함께 여는 감동 CONCERT(시민회관)』등 각종행사 시가극 무대 다수 기획, 연출, 축시낭송 *현재 문화공간『예모 갤러리』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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