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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왕검시대에 무역법을 만들어 시행하였다

노중평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1/11/18 [09:31]
우리의 전통 재래시장에 시전市廛과 난전亂廛이 있었다. 시전은 국가가 공인하는 시장이었고 난전은 사설시장이었다.

 

시전의 시市자는 신시神市에서 유래한 시장으로 볼 수 있는데, 신시에서 이루어졌던 국가와 국가간의 조공朝貢, 국가와 지방정부 간의 진상進上, 지방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교역交易 등이 이루어지는 시장의 의미로 볼 수 있는 문자이다. 시장에서 이러한 거래가 이루어지려면 이익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합의가 국가와 국가 간에, 국가와 지방정부 간에, 지방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

 

신시경제제도는 이익발생을 제도적으로 봉쇄하기 위하여 채택한 것이 계경제제도契經濟制度였다. 계경제는 경제단위를 10개의 그룹으로 나누고, 각 단위마다 왕검을 두어 계주가 되어 나눔의 거래를 하였다. 이러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가 조시朝市와 해시海市였다. 조시란 조선에서 이 제도가 시행되었기 때문에 조시라 한 것이고, 해시는 화물이 출입하는 진포津浦에서 이 제도가 시행되었기 때문에 해시라 한 것이다.

 

그러나 물자를 생산하는 사람은 계주인 왕검이 아니고 계원 개개인이었다. 이들에게는 개인적으로 필요한 물품들이 있었다. 이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기 위하여 사적인 거래가 필요하였다. 그래서 시市에 바란反亂하여 사거래를 트지 않을 수 없었다. 말하자면 생활필수품으로 텃밭에서 생산하거나 사요私窯에서 생산하거나 대장간에서 생산한 야채나 곡물류와 그릇과 농기구와 같은 물자들이 시급히 필요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생기게 된 것이 난전亂廛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의 사람들은 거래를 신성시하였기 때문에 몸을 정갈하게 하고 희생제를 지내고 나서 거래에 임하였다. 이를 <부도지> 제15장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每歲祭時 物貨輻輳 廣開海市於津浦 除祓潔身 鑑于地理 行交易之法

매세제시 물화폭주 광개해시어진포 제불결신 감우지리 행교역지법

定其値量 辨物性之本 明其利用

정기치량 변물성지본 명기이용

매년 희생제를 지낼 때마다 배나 구루마에 싣고 온 화물이 폭주하여 나루터와 포구에 해시를 크게 열었다. 푸닥거리를 행하여 몸을 정결하게 하고 땅에서 얼마나 소출을 내 주었는지 그 이치를 살폈다. 교역하는 법을 만들어 행했고, 물품의 값어치를 계량할 수 있도록 도량형을 정하여 상품의 가치를 비교할 수 있도록 하였고 그것을 밝혀 이용하였다.

 

<단군세기>에, 제2세 부루단군 계묘 3년(BC 2238) 9월에 백성들에게 조서를 내려, “쌀되(斗)와 저울(衡)을 모두 통일하도록 하였고, 베와 모시의 시장가격(市價)이 서로 다른 곳이 없으며, 백성들이 모두 속이지 않으니 어디서나 두루 편했다.”고 하였다.

 

이때는 이미 난전이 서서 백성들의 시장거래가 활발했다고 볼 수 있다.

 

도량형度量衡을 통일하려면 문자가 있어야 하는데, 문자가 조시와 해시가 열리는 곳이 서로 달라서 불편함으로 제3세 가륵단군 때 경자2년(BC 2181)에 정음正音 38자를 만들어 가림토加臨土라 하고 사용하였다. 가림토란 나라 안에 사는 백성들인 팔가八加에서 쓰는 말이라는 뜻이다. 가림토는 오늘날 우리가 쓰는 한글의 원형문자로 볼 수 있다.

 

통일된 문자를 쓰고, 도량형이 통일이 되니, 매년 물동량이 늘어서 나루와 포구를 물자의 집산지로 개방하였다. 이런 곳을 진포津浦라 하였는데, 진津은 강가의 돛단배가 출입하는 곳이고, 포浦는 바다로 들어오는 배가 짐을 부리는 곳이다. 조선의 대표적인 교역장소는 발해만에 있는 동해빈東海濱이었다.

 

제불결신除祓潔身은 희생제를 지내기 전에 푸닥거리를 하여 몸을 정결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제불은 제계불除禊祓이란 뜻이다. 푸닥거리를 하여 부정을 없앤다는 말이다. 계禊자는 왕검이 계契를 하기 전에 삼신三神에게 제사지냈음을 의미하는 문자이다.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에 가락국에서 3월 삼짇날을 계욕일禊浴日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계욕은 부정을 씻는다는 말이다. <가락국기>란 조선에서 오가 출신의 왕(駕)이 락국洛國(낙동강은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으로 왔다는 기록이다.

 

조선왕조 성종 때 만든 것으로 보이는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라는 책에 고려시대의 무가를 유추해 볼 수 있게 하는 나례시儺禮詩 몇 편이 실려 있다. 이들 나례시 중에서 <삼성대왕풀이>를 보기로 한다.

 

이 무가는 <삼성대왕본풀이> 무가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무가로 볼 수 있는데, 구월산에서 매년 한인 한웅 단군왕검 삼성에게 제사 올렸던 <삼성제례三聖祭禮>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는 시이다.



 

삼성대왕三城大王풀이

 

삼성대왕 평조平調

장瘴 가사실가 삼성대왕

일 아사실가 삼성대왕

장瘴이라 난難이라 쇼셰란대 

장난瘴難을 져차쇼셔

디롱다리 삼성대왕

다롱다리 삼성대왕

녜라와 괴쇼셔 <時用鄕樂譜>

(주, 가사, 아사, 대의 원문자가 아래 한글로 표기가 되지 않아서 발음 나는 대로 기록하였다)

 

조선왕조시대에 한인 한웅 단군왕검 세분을 삼성이라고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한인을 단인, 한웅을 단웅이라고도 하였다.

 

삼성대왕의 삼성三城은 뒤에 대왕이 따라 붙는 점으로 보아서 삼성三聖의 오기이거나 왜곡된 기록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3개의 성을 의미하는 三城에 대왕이라 붙인 예가 없었을 것이므으로 三城大王을 三聖大王으로 고쳐 보기로 한다.

 

왜 <삼성대왕 풀이>에서 삼성을 삼성三聖이라고 하지 않고 삼성三城이라고 했을까?

 

조선왕조시대에 명明과 청淸의 눈치를 보아야 하므로 三聖이라는 말을 쓰기를 꺼려하여 三城으로 고쳤다고 볼 수 있다. 성이 3개라는 뜻의 삼성三城이라는 지명이 강화도이 있는데, 왜 이러한 지명이 생겼는지는 수상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대왕풀이의 내용은 액풀이에 소용되는 무가이다. 장瘴(질병)과 난難(액운)을 가져가고 앗아가는 분으로 세 분의 삼성대왕이 등장한다. 이분들이 굿에서 맡게 되는 역할이 <호구거리>에서 아기씨와 별상이 맡은 역할과 같다. 그러므로 본문은 <호구거리>와도 관련이 있다.

 

<호구거리>에서 아기씨와 별상이 장난瘴難(액厄)을 담당하므로, 별상과 삼성은 신격神格이 같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창부거리>에서 부루단군이 액막이를 하는데, 부루단군도 삼성대왕과 신격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삼성제례를 지냈던 곳이 황해도 문화현 구월산에 있는 삼성사三聖祠(삼성당三聖堂)이다. 삼성사가 생긴 유례를 보면, 진시황 8년에 단군조선이 진에게 멸망하여, 마지막 단군인 제47세 고열가단군이 구월산에 은거하면서, 삼성당을 짓고 여무女巫를 당주로 세워 삼성에게 제사지내 왔다는 것이다. 제사는 당주인 여무가 봄과 가을에 2번 준비하고, 나라에서 향과 초를 내리고, 당상관이 참여하여 중사中祀로 지내거나 기우제祈雨祭로 지냈다. 초기에는 중앙정부에서 당상관이 내려와서 제사에 참여했으나, 세월이 가면서 문화현의 현감이 제주로 참여하였다.

 

가사실가, 아사실가는 가져가실까 앗아가실까 하는 물음이다. 장액을 가져가고 빼앗아가라는 말이다. 이 부분은 <창부거리>, 즉 <창수사자 부루태자의 거리>에서 보여주는 액막이를 뛰어 넘는다. 후손이 국조國祖 3분에게 장난을 가져가고 빼앗아가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신근영은 <시용향악보> 소재 ‘삼성대왕’고찰 에서 가사실가는 끊으실까로, 아사실가는 빼앗으실까로, 쇼셰란대는 ‘있을 진데’로 해석하였다. 쇼셰란대는‘장기와 재난이 있을 진데’라는 뜻이다. 져차쇼셔는 ‘없애주소서’라는 말이다. (주, <시용향악보> 소재 ‘삼성대왕’고찰 신근영에서 192쪽의 해석을 그대로 인용)

 

다롱다리에서 ‘다리’는 굿을 할 때, 명다리, 하늘다리, 무지개다리 등으로 불리는 무명천이다. 다롱은 다리가 시작되는 한 쪽과 다리가 끝나는 반대편 쪽을 모두 의미하는 말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다리는 장난을 다 이기고 건너오는 도액度厄의 다리가 된다. 이 도액의 다리에 무당이 걸어주는 명다리가 걸린다.

 

감우지리鑑于地理는 땅이 토양에 따라 종류별로 소출을 내는 이치를 따져서 분배할 것을 정한다는 뜻이다. 이리하여 오곡이 생산되는 양을 알 수 있게 되었고 채소가 생산되는 양을 알 수 있었다고 본다. 당시에 무는 생산되어 제수로 쓰였지만 배추는 생산되지 않아서 제수로 쓸 수 없었다. 또한 양념이 생산되지 않았던 때라 유일하게 소금만을 쓸 수 있었다. 당시에 염전이 없어서 천일염을 사용하지 못했고 암염을 사용하였다.

 

교역지법交易之法은 무역법이다. 땅에서 수확할 수 있는 품목에 따라 교역할 수 있는 품목과 수량을 정하여 시행하였다. 이를 정기치량定其値量이라 하였다.

 

변물성지본辨物性之本은 물성의 근본을 구분하였다는 말이다. 교역하는 품목을 종류별로 품목별로 구분하였다는 말로 볼 수 있다. 명기이용明其利用은 각 물품을 물품의 쓰임새 대로 썼다는 말로, 즉 소는 소의 쓰임새대로 쓰고 말은 말의 쓰임새대로 쓴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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