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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民國의 아킬레스건

노중평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1/11/25 [07:09]
KBS TV는 언젠가 열린우리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하였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일본인 학자 오사카대학 명예교수 고야쓰 부쿠니(子安宣邦)의 강연을 녹화하여 방영한 적이 있었다. <한일관계의 역사적 현재>라는 제목의 강연이었다.

그는 일본에 고마로 불리던 시대, 카라로 불리던 시대가 있었으나, 일본사람은 이들 시대를 모두 잊어버려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고마는 고구려를 뜻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초기한성백제의 국도의 이름 한성漢城이 고마固麻(곰이라는 뜻)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하였다. 고구려에서는 고구려를 고마로 부르지 않았고 고리(高麗)라 불렀지만 이 또한 모르고 있는 듯하였다. 백제의 국도 고마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고마라는 이름을 전했을 텐데 1,500년의 역사가 지나간 다음이라 백제계 사람들이 고마로 불렀던 시대를 다 잊어버렸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뿐만 아니라 카라(韓)라는 이름도 그들은 잘못 부르고 있었다. 카라는 한韓이 아니라 가라加羅의 변음으로 볼 수 있다. 가라는 오가五加의 나라那羅라는 뜻이지만 이 또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가의 나라는 단군조선을 의미한다. 단군조선이 진시황 8년(BC 238)에 진秦에게 멸망하여 삼한三韓이 되면서 韓이라는 문자를 썼지만 우리가 삼한의 역사에 대하여 무지하듯이 그들 또한 무지하여 가라와 한을 혼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은 원래 삼한시대에 임금이라는 뜻으로 섰던 말이다. 중국의 금문학자 낙빈기駱賓基의 설에 따르면, 그 연원은 동이족으로서 임금이 된 순舜임금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순과 한은 같은 뜻으로 볼 수 있다.

일본 땅에는 이렇게 백제와 단군조선의 흔적만 남아 있다. 우리가 삼한의 역사에 무지하듯이 그들 또한 삼한의 역사에 무지한 것은 그들이 우리와 동근동족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야쓰 부쿠니 교수는 720년경에 나·당연합군과 백제·왜연합군이 백촌강에서 싸우다가 백제·왜 연합군이 패전하면서, 왜가 백제를 버리고 카라의 역사를 버렸다고 하였다. 이후에 왜가 일본이라는 국호를 쓰기 시작하여, 오늘날의 일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왜가 버린 것은 카라, 즉 오가의 나라의 역사를 버린 것이 아니라 백제의 역사를 버린 것이다.

왜가 국호 일본을 쓰기 시작하면서 일본의 정체성을 세우기 시작하였다는데, 정체성의 근거로 스사노 미코토로 불리는 남신을 내세웠다.

스사노 미코토의 다른 이름이 부루신ぶる神이다. 부루는 단군왕검의 장자인 부루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스사노 미코토를 부루단군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인의 정체성이 부루단군에게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부루단군의 후예가 부루를 조상신으로 모셔 오다가 그 이름을 일본이라는 국호를 내세우면서 버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만들어낸 신화가 스사노 미코토가 천상계(주, 단군조선의 역사로 볼 수 있다)에서 지상계(신흥 일본의 역사로 볼 수 있다)로 내려오는데, 카라(주, 일본에서는 신라로 보고 있다)를 거쳐 온다고 하였다. 이는 역사 왜곡이 아니라 역사 날조로 볼 수 있다.

이 부분의 역사는 단군조선의 역사와 역사 단절을 선언하고, <일본고유존재설>을 만들어내는데, 그 뿌리가 신라를 거쳐 왔다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신흥 일본은 카라(단군조선-삼한)를 버렸지만, 스사노 미코토가 불의 신(태양신)이라는 점만은 버리지 않았다. 부루는 불이고 불은 태양을 의미하므로 태양신에 일본의 정체성을 두기 위하여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신흥 일본은 스사노 미코토에게 누님을 만들어 주어 당분간 오누이신이 서로 주도권 다툼으로 갈등을 겪게 하다가 누님에게 최고신의 자리가 돌아가게 하였다. 카라계열의 스사노 미코토를 왕따시켜 버리고 신흥 일본에 필요한 시조신을 만들어 낸 것이다.

스사노 미코토를 일본의 토착신들과 합의하여 왕따시킨 누님이 아마데라스 오오미카미이다. 아마데라스 오오미카미를 일본에서는 천조대신天照大臣이라 한다. 이는 태양신을 다르게 말한 것이다. 우리 문자로 바꾸어 쓰면 한桓·단檀이 된다. 따라서 천조대신도 한인·한웅· 또는 단군에서 온 말임을 알 수 있다.

일본신화는 "스사노 미코토가 천상계에 있다가 지상계로 추방당한 곳을 카라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그가 조선의 신이였음을 말한 것이다. 스사노미는 우리 말로 '스스로 사는 놈'이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조선의 최고신을 그렇게 말한 것이다.

 

 

조선朝鮮의 조朝는 해와 달이 뜨는 곳이므로 천상계가 된다. 선鮮은 조선의 백성이 살고 있는 곳이다. 여기가 우리 황해도무가와 한양무가에 나오는 ‘희나백성(熙氏那羅百姓)이 사는 거므나 땅(儉之地)’이다. 스사노 미코토가 추방당한 곳은 희씨나라 백성이 사는 거므나 땅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일본의 정체성이 단군조선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세월이 흘러 에도시대에 와서, 후지와라 토테칸으로 불리는 고증학자가 나와서, 일본 고대사에 남아 있는 카라의 흔적을 <충구발衝口發>이라는 책에 기록하여 놓았다. 15항목에 걸쳐서 일본의 고대문화가 중국의 문화와 카라의 문화임을 밝혀 놓은 것이다. 모토오리 모리나가라는 사람이 나와서 <충구발>을 비판함으로써 <충구발>이 유명해졌다. 그는 토테칸을 견광인이라고 하였다. 견광인이란 ‘미친 사람의 머리에 칼을 씌운다’는 뜻이라고 고야쓰 부쿠니 교수는 말했다.

그는 "모토호리 모리나가는 <고서기古書記>의 해석을 통하여 일본의 아이덴티티를 세운 사람이다. 그가 일본어를 확립했다. 일본문화, 야마토문화를 <고서기>의 해석을 통하여 발견했다. 그는 근대 일본의 혼과 정신을 만들어 낸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전전일본·전중일본·전후일본을 통하여 동일한 평가를 받는 인물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일본의 폐쇄적인 민족주의가 모토호리 모리나가에게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모리나가는 토테칸과 <충구발>을 비판하여 그의 이름이 역사에 남았다. 강연을 한 고야쓰 부쿠니는 노리나가를 평생 연구의 주제로 삼았으나 <충구발>의 내용이 무엇인가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저자가 토테칸을 엉터리 고증학자라고 모리나가가 비판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그의 저술을 읽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나라 학자들 대다수가 범하는 오류를 일본인 학자인 그도 범하고 있었다.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살인(부작위에 의한 살인)을 할 수 있듯이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역사에 죄를 범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온 어느 유학생이 고야쓰 부쿠니 교수에게 ‘토테칸이 누구냐?’고 질문했을 때, 그는 정작 그가 자세히 알고 있어야 할 토테칸에 대하여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엄청난 사실을 그 뿐만 아니라 일본인 학자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강연에서, "나는 토테칸 넘어 세계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 나처럼 모든 역사연구가들이 토테칸 너머의 세계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자아비판하면서, 비로소 "토테칸 너머의 세계를 보기 시작했다."고 실토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학자들은 아직도 일본인이 만들어준 집에 살며 그들이 준 침구 속에서 잠든 채 단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토테칸은 일본의 고대가 카라의 영향 하에 있었다고 하였다. 모리나가는 토테칸의 말을 미친 사람의 발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토테칸의 발언은 <일본고유기원설>을 흔들어놓고 말았다. <일본고유기원설>은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광기狂氣의 지식에 의하여 <일본고유기원설>이 발생하였다. 광기와 정기精氣가 대결하여 광기가 정기를 압도함으로써 <일본고유기원설>이 정설이 되었다. 모리나가가 한 일이 이 일을 한 것이다.

역사를 모르거나 과거의 역사를 잊어버리면, 내가 살고 있는 시대를 순수조선이나 순수일본으로 보게 된다. 자기의 모국이 갑자기 홀로 생겨난 나라처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과 일본은 오랜 옛날부터 있었다. 절대로 없었던 것이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들의 눈을 멀게 한 순수조선이나 순수일본은 근대에 만들어진 나라가 아니다. 일본이 역사적 반성을 하지 않는 것은 순수조선과 순수일본만을 보아왔기 때문에 무엇을 반성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고야쓰 부쿠니 교수는 대체로 이러한 요지의 강연을 하였다. 그가 한 강연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점은 일본이 고마와 카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마와 카라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고유기원설>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일본에 대하여 지적한 것은 우리에 대한 지적과도 통한다.

일본의 역사는 카라를 지워온 역사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카라의 정체성을 순수일본의 정체성으로 바뀌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정체성은 정통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대단히 독선적이고 위험한 정체성이 된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단군의 자손이며 단일민족이라고 내세우는 정체성처럼 모호하고 폐쇄적이다.

 

오늘날 북한을 보면 주체연호를 쓰는 나라가 되었다. 앞으로 한 1천년 쯤 흘러간 후에 북한사람들은 일본이 범하고 있는 비슷한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마고신봉자들이 현생인류가 마고에게서 태어났다고 보듯이 조선족은 모두 김일성 수령 한분의 자손으로 태어났다고 열렬하게 주장하게 될 것으로 볼 수 있다.

걱정스러운 것은 남한에 무조건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이 많다는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오직 위대한 수령 김일성과 그의 아들 김정일만 보인다. 북한을 만들어낸 순수혈통만 보이는 것이다. 알 만한 사람들은 이들이 대한민국의 아킬레스건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본다. 아킬레스건은 사람을 죽이는 급소가 되는 곳이다. 화살 한 방 맞으면 목숨이 끊어지게 되어 있다. 남한과 북한의 전쟁으로 대한민국이 가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대한민국의 아킬레스건이 될 때 누군가 나서서 화살 한 방 쏘아 맞히면 대한민국이 숨이 끊어져 돌아가시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 우리의 역사는 주체역사를 모셔 들이게 되고, 세상에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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