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건 가정이건 사회건 국가건 생명을 위협하는 취약점이 있게 마련이다. 말하자면 급소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말이다.
불행하게도 사람은 믿음이라는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 믿음이 자기를 배반했다고 느낄 때는 사실상 파멸이나 사망이 코앞에 다가와 있을 때이다.
만약에 평생 모은 퇴직금을 빌려주거나, 단 한 채뿐인 집을 보증으로 빚보증을 서 주었을 경우엔 무당이 굿을 할 때 닭 한 마리의 목을 비틀며 외쳐대는 대수대명代壽代命의 제물이 되기 십상이다.
그 다음에 그의 인생이 망가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이런 경우에 개인 하나만 죽으면 되지만, 대수대명자들이 줄줄이 엮여 있는 경우엔 그가 속한 사회의 대수대명을 위하여 목을 길게 내밀고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가 철석같이 믿었던 은행이 거래자들을 배신하여 사기, 배임, 횡령집단이 되어버리면 개미 떼가 집단사망集團死亡에 이르게 되는 것 또한 시간문제이다.
이 시간문제는 대한민국의 경우에 미국이 부도가 나거나 중국이 부도가 나거나 일본이 부도가 나는 경우에도 해당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빼지도 박지도 못하는 금융이라는 아킬레스건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제1아킬레스건이다. 그런데 이 아킬레스건이 자주 염치없이 노출되는 바람에 국가적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금융이 먹고사는 문제에 침투해 있는 아킬레스건이라면 사상은 우리의 생각 속에 침투해 있는 아킬레스건이다. 금융이 아킬레스건임을 깨달았을 때는 돈을 빼면 그만이지만 사상이라는 아킬레스건은 그를 확신범을 만들기 때문에 그가 당하게 되는 고난을 예수님이 당한 고난 정도로 즐기게 되고, 자신을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와 동일시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심지어 <다음 아고라> 같은 데에 다 “60대 이상은 죽으시오!”하고 망발을 늘어놓기도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막장으로 갈 데까지 다 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최전방에는 언제나 매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조∙중∙동이라는 제2 아킬레스건이 있다. 이 아킬레스건은 자신을 감출 줄 모르고 항상 노출되어 있다. 진찰을 해 보면 동상 걸리기 직전에 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상에 걸리지 않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요즈음은 한파가 사정없이 휘몰아친다. 투시안경을 쓰고 보면 좌파들이 화살을 쏘고 있는데 제대로 맞추지 못할 뿐 화살은 연상 날아오고 있다.
좌파는 말장난이라는 이름의 화살을 쏜다. 개념이 있는 말을 개념이 이상스런 말로 만들어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말이 그들에겐 제2의 아킬레스건이 된다.
예컨대 좌파에서 쓰는 말과 우파에서 쓰는 말을 양극화라는 용광로에 넣어 적당하게 섞어버리면 말장난하기 쉽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최루탄과 폭탄을 혼동하게 되고, 일제日帝와 미제美帝를 혼동하게 되고, 범법자와 영웅을 혼동하게 된다. 이렇게 혼동이라는 술책으로 개념 있는 말을 개념이 이상스런 말로 만들어 버리면 이 나라는 ‘없는 개념에 취한 개념이 이상한 나라’가 되고 만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혼동하게 된다. 대한민국 땅에서 이북에서나 할 수 있는 짓을 애국자인양하고 버젓이 하게 되는 것이다.
헌법을 만들 때 국가사상을 ‘자유민주주의’라고 써넣었지만 미제 앞잡이들이 미국의 사주를 받아서 써넣은 것으로 생각되어 이런 말을 쓴다는 것이 심히 부끄럽게 느껴지고 ‘민주주의’라 써넣어야 정상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개념의 혼동에 대하여 깊이 뉘우친 국사편찬위원회가 ‘역사교과서집필기준 개발 공동연구진’ 20명을 만들어 좌파 교수와 우파 교수를 섞어 의견수렴을 해 보았더니 의견수렴은 고사하고 좌파 교수 9명이 사퇴해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관철되지 않자 사퇴해 버렸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하여 2011년 9월 22일자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을 갖추고 입헌주의 틀 안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이념∙체제를 말한다. 양심과 언론∙출판 등 자유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인민민주주의와 확연히 다르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권을 행사한다는 개념이며, 인민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 등도 포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의적인 권력 행사에 대한 통제, 높은 투명성, 개인의 권리 등을 더욱 강조한다. 그러나 국내 일부 학자들은 ‘자유민주주의’가 과거 정권들이 독재와 남북대립, 지나친 경쟁을 합리화 하는데 쓴 개념이라며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이 해설은 자유민주주의가 개인주의요, 인민민주주의가 집단주의라는 점을 설명하지 않고 있으므로 정확한 해설로 볼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좌파와 우파가 갈라지는 초점은 개인주의냐 아니면 집단주의냐에 있으므로 이점을 반드시 싶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집단주의는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로 설득력을 잃었다. 집단주의라는 독아를 가지고 있는 인민민주주의가 학살과 숙청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자유민주주의 독재보다 더 흉악한 독재를 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했어야 하는데, 국내 학자가 이를 의도적으로 감싸고 있다는 것은 설득력 없는 논리의 모순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설득력 없는 체제를 왜 가미사마(일본의 최고신 호칭)처럼 붙들고 목을 매는 것일까?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다시 개념의 혼동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개념의 혼동이란 정치적인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혼동을 조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문에 보도되는 기사를 보면 어느 정도 이를 구별할 수 있다.
조선일보의 기사를 가지고 개념의 혼동, 즉 언론의 아킬레스건을 찾아보기로 한다.
2011년 11월 22일 한미 FTA비준동의안이 여당 주도로 통과되었다. 이날 국회에서 최루탄을 터트린 의원이 있었다. 그 의원은 최루탄을 터트리고 나서, 자신을 "안중근의사, 윤봉길의사의 심정으로 최루탄을 터트렸다."고 말하였다. 그 의원의 소속 정당은 “국민의 분노를 온몸으로 표출한 그를 지켜낼 것”이라고 성명하였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안중군의사와 윤봉길의사 숭모단체는 “망언에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망언을 즉각 철회하고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 그리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애국지사와 호국영령들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라.”고 성명하였다.
좌파가 범법자와 애국지사를 혼동하게 만든 것이다. 그것은 국민을 속이기 위한 기만행위이지 애국지사의 행위와 동일시할 타당성 있는 행위가 아니다.
공산주의 역사를 보면, 거짓말과 기만행위로 폭력을 유발하는 것이 공산주의 혁명을 이루기 위하여 사용하는 수단으로 되어 있다. 지금 좌파가 이를 흉내 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권대열 기자는 미국의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22일자 기사의 일부를 보도했다. “미국 의회보다 더 고장 난 입법부가 최소한 한 곳은 더 있었다.”고 비꼬아 보도한 것을 보도한 것이다. 좌파정치인의 자칭 애국적인 행위가 미국 기자의 눈엔 정치 테러를 자행한 저질 정치 코미디로 비춰진 것이다.
박국희 기자는 “우리나라의 인터넷과 트위터에서는 최루탄을 던진 의원을 안중근의사나 윤봉길 의사처럼 영웅시하고 있다. 그 의원은 밤새 격려전화를 받았다.”고 보도하였다.
우리나라에 너무나 이질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음을 신문보도가 보여준 것이다. 국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국법을 무시해도 좋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국법을 국법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2011년 11월 23일 수요일자 사설 ‘한미FTA 成敗는 이제부터 우리들 하기 나름이다’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여당에 대한 비판이다.
“여당이 의원총회를 위해 모이는 것처럼 했다가 기습적으로 본 회의장으로 달려가 군사작전 벌이듯 비준안을 처리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대통령 정부 여당이 정성과 진심을 다해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다음은 야당에 대한 비판이다.
“야당 역시 FTA를 국익(國益)보다는 내년 선거에서의 득실(得失)을 기준으로 저울질하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왔다. 정치권의 무능(無能)과 불통(不通)이 FTA 처리과정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이런 비판은 좀 더 심층 분석이 필요한 비판이다. 이건 당리당락의 차원이 아니라 두 당이 내세우고 있는 극한적인 이념의 대립이라는 관점에서 비판하였어야 하였다고 본다. 우파정부에서 좌파 야당을 설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념과 성향이 다르므로 설득당할 리가 없는 것이다.
이런 지경에서는 여당이 야당에게 총칼을 들이대고 협박하지 않는 한 유연하고 온건한 도덕군자적인 설득은 불가능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편 야당에 대하여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비판도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되어 있다. 야당의 행위는 이념대립의 문제이지 ‘반대를 위한 반대’의 문제가 아니다. 이점을 분명히 해야만 독자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이제 독자는 우리 정치를 축구나 야구를 관전하듯 즐겁게 볼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자기 자신이 좌파와 우파 중에서 어느 편엔가 서야 할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원하지 않지만 좌파 쪽에 서야 하느냐, 우파 쪽에 서야 하느냐 하는 선택을 강요받게 된 것이다. 이 문제는 여당을 지지할 것이냐 , 야당을 지지할 것이냐 하는 정당 지지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철 지난 좌우 대립이라는 이념의 문제, 내가 국가의 존망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의미심장한 문제이다. 좌파와 우파 모두 싫다면 중도파로 설 수도 있다. 그러나 완충기 역할을 하는 중도파로서 힘의 축적과 의견제시가 필요하다고 본다.
같은 날짜의 오피니언의 박두식 칼럼에서는 이념적인 문제를 다루어 보도하였다.
“작년 1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1∙2∙3위를 차지한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정세군 최고위원은 한때 적극적인 통상주의자였던 사람들이다. 손 대표는 경기도지사 시절 외국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분주하게 움직였는가를 담은 ‘손학규와 찍새와 딱새’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그는 누구보다 FTA가 대한민국의 미래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아는 인물이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한∙미 양국이 FTA를 타결 지었던 노무현정부에서 NSC(국가안보회의) 상임의장을 맡아 외교∙안보∙통상정책을 이끌었다. 그 시절 정 최고위원은 미국사람들에게 ‘FTA는 한미관계의 기둥’이라고 치켜세웠다. 정세균 최고위원은 통상 분야 주무장관인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다. 이 세 사람이 이끄는 민주당이라면 한∙미 FTA가 꼭 여야충돌을 거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져볼만했다. 그러나 이들은 정반대의 길로 갔다.
이들은 “‘노무현 FTA’와 ‘이명박FTA’는 다르다는 식의 논리에 몸을 기댔다. 오바마 미국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작년 말 재협상에서 우리가 자동차등 일부 분야에서 양보한 것을 구실 삼아 반(反)FTA로 돌아선 것이다. 그러나 작년의 재협상에 가장 반발해야 할 것 같은 현대자동차 등 민간 기업들은 정작 FTA 조기비준을 요구해 왔다. 이것만 보아도 야권의 FTA반대론이 정직하지 못한 주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야권이 막판에 가장 주요한 이슈로 삼았던 ISD(투자자∙국가소송제도)도 노무현 정부시절에 타결된 내용과 한 글자도 달라진 게 없다.”
이상의 글은 FTA에 대하여 민주당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왜 이런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가? 필자는 당리당략을 위하여 거짓말을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당리당략을 위해서라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실을 말했어야 하였다. 말을 하는 즉시 들통이 나는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감추어진 이념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광화문은 앞으로 좌파의 핵심세력이 바라는 형명의 성지가 될 것이다. FTA반대집회를 빌미로 하여 연일 집회를 벌이게 될 것이고, 그 수가 점점 불어나게 될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거짓과 기만으로 폭력을 유도하여 경찰이 자충수를 두게 하는 것이다.
드디어 그들은 2011년 26일 밤 9시 30분에 데모를 해산시키러 온 종로경찰서장을 폭행함으로서 폭력의 제1보를 내딛었다. 그들의 폭행은 우발적인 폭행이 아니라 거짓, 기만, 폭행으로 이어진 3단계 전술로 볼 수 있다.
이들의 행동을 북한이 열렬하게 지지하고 나섰다. ‘을사늑약과 같은 망국조약’, ‘살인협정’, ‘친미사대적협정’, ‘치욕의 망국협정’, ‘이완용’, ‘사대매국노’, ‘현대판 을사오적’, (조선일보 보도)라는 용어를 같이 쓰기 시작하였고, 또한 열렬하게 선동하기 시작했다. 국내의 좌파 논리와 북한의 선동이 똑같은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좀 더 강력한 진압이다. “불법집회를 조속히 해산하라!”고 종로서장이 백번을 외처보아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들은 좀 더 과감하게 나갈 것이다. 그리하여 만약 그들이 의도한 대로 누군가 사망자가 발생한다면 그는 하루아침에 열사가 되고, 정부가 심한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야당연합군이 데모에 빌붙어 그들에게서 무엇인가 얻으려 한다면 머지않아서 자신들이 헛발질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야당연합군이 그들의 주도세력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