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세기>는 <고기古記>에서 인용하여, “왕검의 아버지는 단웅檀雄이고, 어머니는 웅씨熊氏의 왕녀王女”라고 하였다. 아버지가 단웅이라 한 것은 족보상으로 한웅천왕계열의 적통이라는 뜻이고, 어머니가 웅씨의 왕녀라 한 것은 한웅천왕 때 농관을 지낸 고시 계열의 유백楡伯(유망楡罔) 집안의 후손이라는 뜻이다.
아버지가 단웅이었는데, 단웅은 단국의 홍제洪帝를 말한다. 그러므로 단군왕검의 모국이 단국이 된다고 하겠다.
단군왕검은 무진년(BC 2333)에 홍제가 붕어하자 국호를 배달나라로 고쳤다. 이때 국도가 태백산이 있는 천평天平에 있었다. 이때는 국도의 이름을 서울徐菀이라 하였다.
단군왕검은 새로운 나라 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서울 청평을 떠나서 그가 태어난 청주靑州로 돌아갔다. 청주는 춘추전국시대의 명칭으로 조선 건국 당시의 명칭은 평양平壤, 부여夫餘, 험독險瀆, 아사달阿斯達, 속말수粟末水 등으로 다양하게 불렸다. 그러나 주로 평양이나 아사달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중국의 고지도古地圖에서는 이곳을 익도益都라 하였다. 청나라 때엔 발해의 현덕부顯德府라 하였다. 단군왕검은 BC 2311에 이곳에 와서 국명 배달나라倍達那羅를 조선朝鮮으로 고쳤다.
<부도지>는 단군왕검(임검壬儉이라 하였다)이 이곳에 와서 부도 세울 땅을 골랐다고 하였다. 그가 고른 땅은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는 동북쪽인데 지구의 정북 쪽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그 자리는 지구자전축의 방위로 2도 기울어져 있고, 지구의 방위로 6도 기울어져 만나는 곳, 지구의 정북에 해당하여 지구의 자전축이 시작되는 중심이 되는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1에서 시작된 수가 4로 완성되는 곳으로 정4각형의 건물을 짓기에 합당한 지형인데, 8각형의 건물을 짓기에 무리가 없었다. 주변은 밝은 산과 아름다운 물이 1만 리나 뻗어 있었다.
단군왕검이 이곳에서 지은 건물을 성황城隍이라 하였다. 성황이 곧 신사神社였다. (<부도지> 제13장 초반부)
성황이라는 문자를 보면, 성은 부도가 있는 도성인 평양(아사달)을 의미하는 문자이고, 황은 신사를 관리하는 여황女皇을 의미하는 문자이다. 무진년에 비서갑菲西岬이 그의 딸 하백녀河伯女를 단군왕검에게 납비納妃하여 황후로 삼았다. 하백녀는 하백신을 받드는 신녀神女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비서갑에 하백신을 모시는 신사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백신을 모시는 인종을 풍이족馮夷族이라 하였고, 풍이족은 내륙에 있는 하천을 다스리는 신을 모시는 인종이었다. 신시를 열려면 선박에 사람과 물자를 싣고 운행해야 되는데, 이때 하백녀가 신시의 성황에서 올리는 제사를 도왔다고 볼 수 있다.
성황에서 제사를 지낼 때 올린 중요한 제물이 삼영근인 인삼과 오엽실과인 잣과 칠보로 만든 천부삼인이었다. 인삼과 잣은 대여산에서 난 것을 썼고, 칠보는 방호산에서 난 것을 썼다.
<부도지>에서, 영주瀛洲의 대여산岱輿山에서 삼령근을 얻었다고 했는데, 삼령근이 난 대여산岱輿山의 대岱가 ‘어떤 산을 대신하는 산’이라는 뜻이니 강화도의 마리산, 고려산, 혈구산 등이 삼영근이 나는 원교산圓嶠山을 대신한 산으로 볼 수 있다고 본다.
원교산의 원圓은 진오기굿(죽은 자를 저승에 잘 보내기 위하여 행하는 굿)의 한 대목인 <바리굿>에서 도량돌기의 형상을 나타낸 문자로 볼 수 있다. 또한 교嶠는 바리굿을 할 때 저승과 이승 사이에 놓는 은하다리(은하교銀河橋)를 의미하는 문자로 볼 수 있다. 이 다리는 저승으로 갈 때 산 자가 죽은 자가 되어 건너가는 다리이고, 또한 죽은 자가 저승에서 산자가 되어 이승으로 돌아올 때도 건너는 다리이다. 이 다리를 유일하게 건넌 사람이 진오기굿에 나오는 바리공주뿐이다.
바리굿을 보면, 이미 단군왕검시대에 저승과 이승을 왕래하는 굿이 비리굿이라는 이름으로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다리를 왕래할 때 천상에서는 인삼과 잣과 칠보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단군왕검 당시에 인삼이 하늘에서 내려준 영약이라 죽은 자를 살리는 불사약이 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단군왕검이 부도 세울 곳으로 정한 곳을 <부도지>에서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는 동북쪽인데 지구의 정북 쪽에 해당하는 곳이다. 그 자리는 지구자전축의 방위로 2도 기울어져 있고, 지구의 방위로 6도 기울어져 만나는 곳, 지구의 정북에 해당하여 지구의 자전축이 시작되는 중심이 되는 곳이다.”라고 하였다. ‘泰山北斗’라는 말이 있는데, 부도와 서낭의 위치를 잡는데에 기준으로 쓴 말로 볼 수 있다.
인삼이라는 말과 웅심산熊心山이란 말을 연관하여 보면, 곰(웅)+심(삼영근, 인삼)의 의미가 있고, 또 마고+인삼의 의미가 있다. 이곳을 <삼성기전> 상편에서, “신인 왕검이 내려오신 불함산 박달나무 터”라 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신시의 옛 법을 되찾고 서울을 아사달에 설치하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하였다.”라고 역시 <삼성기전> 상편에 기록하였다. “신시의 옛 법을 되찾았다”는 것은 “한웅천왕이 만든 <무여율법 4조>를 회복하여 다시 쓰기 시작하였다”는 말로 볼 수 있는 말이다.
조선이 진에게 멸망하기 2년 전에 이곳의 웅심산에서 해모수解慕漱가 부여夫餘를 세웠다. 이곳에 추국鄒國과 모국牟國이 있었다. 이렇게 보면 추국과 모국이 있었던 곳에 웅심산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은 이 곳에서 태어났으므로 왕명을 추모왕鄒牟王이라 하였다.
<山海经산해경> 대황북경大荒北经에서 “대황의 가운데에 불함산이 있다. 숙신씨의 나라가 있었다. 여기에서 불함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하였다. <진서晋書> 숙신씨전肃慎氏传에서는 숙신씨를 읍루挹娄라 하였다. <후한서> 동이전东夷传。읍루挹娄에서도 숙신씨가 읍루라 하였다. 그러나 읍루의 위치를 재부여동북천여리在夫余东北千余里, 백산흑수지간白山黑水之间이라 하여 헷갈리게 만들었다.
<부도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故曰方朔草 世謂不死藥是也 其或小根 産於符都之域者 皆有靈效故
고왕방삭초 세위불사약시야 기혹소근 산어부도지역자 개유영효고
來市者丨必求之也 大抵三根靈草之人蔘 五葉瑞實之栢子
내시자곤필구지야 대저삼근영초지인삼 오엽서실지백자
七色寶玉之符印 眞是不咸之特産 四海諸族之天惠 (<부도지> 제16장)
칠색보옥지부인 진시불함지특산 사해제족지천혜
때문에 방삭초를 세상이 불사약이라 하였다. 그것은 혹시 작은 뿌리라 하더라도 부도지역에서 산출되면 모두 신령한 효험이 있는 고로 신시에 오는 래이족들은 반드시 구하였다. 대개 삼근영초로 된 인삼, 오엽서실로 된 백자, 칠색보옥으로 된 부도인은 참으로 불함지역의 특산품이라 사해제족이 하늘에서 받은 은혜였다.
삼영근을 방삭초方朔草라 했는데, 方은 부도의 방위를 나타낸 문자로 볼 수 있다. 이 방위가 동북쪽 간방이 된다. 朔은 인삼이 생산되는 기간을 말한다. <부도지>에서 삭은 13기를 1삭이라 했는데, 1기는 40년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1삭을 연수年數로 치면 520년이 된다. 520년 동안 지정地精이 축적이 되어야 삼영근 한 뿌리가 생산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반천년半千年의 생명을 가진 삼령근을 불사약이라 했던 것이다.
불사약으로서 약효가 나는 인삼은 부도가 있는 곳에서 나는 인삼이다. 부도가 자방에 있기 때문에 북극성의 정기가 조응하는 땅에서 자란 인삼이면 모두 다 약효가 있다고 하였다.
불사약인 인삼이 중요시되는 이유는 인간의 죽음과 연관이 있다. 인간이 죽으면 행했던 진오기굿(오구굿-사람이 죽어 3년 탈상을 하기 전에 한다)의 바리공주에 보면, 7째 공주로 태어나 버림을 받는 바리공주가 사경을 헤매는 부왕을 살리기 위하여 불사약을 구하러 가는데 그가 가는 곳이 불사약이 있는 봉래산이다. 봉래산은 죽은 자 만이 갈 수 있는 곳이다. 봉래산이 저승에 있고 이승에 없으니 봉래산을 대신하는 산이 대여산이다. 그러니까 대여산은 봉래산 대신에 이승에 있는 실재의 산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봉래산은 우주 홀로그램으로 볼 수 있는 산이다. 대여산의 輿자는 바리공주가 타고 올 연輦을 의미하는 문자로 볼 수 있다.
봉래산에서 저승으로 가기 위하여 하는 굿이 진오기굿에 들어 있는 은하다리굿이다. 은하수에 있는 다리를 건너감으로 은하다리굿이라 한 것이다. 은하다리굿에서 출타기를 하는데, 이번에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줄타기를 진오기굿에서 연희演戱로 독립시켜 문화재를 만든 <은하다리굿>이다.
바리공주에서 망자(亡者, 죽은 사람)축원을 하는데 축원 가운데 서낭제(성황제城隍祭), 49제, 100일제를 지낸다고 한다.
이들 3가지 제 중에서 서낭제를 하는 성황은 단군왕검이 신시를 열 때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해변에 처음 세운 조선의 신을 모시는 신사이다. 이 신사에 모신 최고신을 성황대신城隍大神이라 하였다. 성황대신은 오가에 소속된 자가 죽으면 저승으로 무사히 갈 수 있도록 연결시켜 주는 신이고, 또한 무여율법 4조에서 규정한 마귀로부터 지역방어를 담당해 주는 신이기도 하다. 굿을 하는 신사가 성황당이었다.
성황당에서 성황제를 지내 망자를 저승으로 보내주면 망자가 1차로 가는 곳이 영산지계국瀛山地界國이다. 영산은 영주瀛洲에 있는 영주산瀛洲山이다. 영주는 삼신산에서 2번째 산이다. <도량돌기>에 들어가서 <은하다리굿>을 해 주면 영주산에서 곧바로 은하수에 다리가 놓이고 망자가 이 다리를 건너가게 되는 것이다.
은하다리굿을 할 때 무당이 은하몽두리를 입는다. 은하몽두리 위에 넓은 홍띠를 맨다. 은하몽두리 안에 입단치마를 두르고 수저고리를 입고 수댕기를 드린다. 이 의대가 제관인 단군왕검을 감응신感應神으로 변화시킨다.
오늘날도 이 유습이 남아 전해 온다. 굿을 할 때 단군왕검이 감응신으로 오시는데, 무당이 감응신의 의대를 하고 단군왕검을 청배하면 단군왕검의 성령이 감흥신으로 오시는 것이다. 황해도굿에서는 이런 굿거리를 초감응굿이라 한다.
노들재굿(서울과 경기 일원에서 행했던 진오기굿)에서 보면, <뜬대왕거리>로 들어가는데, 망자를 망자로 인증해 주기 위하여 출동하는 여러 신들을 뜬대왕이라 한다. 이들 신이 시왕가망(죽은 조상 1대조에서 10대조까지), 십대왕(단군조선의 성황에서 모시는 10분의 최고신-<천부경>의 10수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중디(선관仙官), 말명(죽은 무당) 등이다.
이들 신명의 행동은 무당이 추는 춤의 형식으로 표현된다. 굿을 시작할 때 드리숙배춤과 나리숙배춤을 춘다. 드리와 나리는 들어가고 나간다는 뜻이다. 숙배肅拜는 엄숙하게 절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들어가고 나가며 절을 하는 춤을 춘 데서 이런 이름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이때 무당은 손에는 방울과 부채를 들었다.
인삼, 잣, 칠보가 불함삼역의 특산이라 하였는데, 불함不咸은 조선에 속한 진조선眞朝鮮(홍산 적봉 일대), 번조선番朝鮮(산동반도 일대), 막조선莫朝鮮(한반도 일대)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삼조선의 다른 호칭으로 볼 수 있다.
사해제족지천혜四海諸族之天惠에서 사해는 조선족이 퍼져나가 사는 지구 전체로 볼 수 있다. 조선족은 마고시대의 마고족, 한인시대의 구한족, 한웅시대의 배달족(구려족-구리족)의 후예이다. 천혜는 인삼, 잣, 칠보에게서 받은 혜택이 컸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