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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용 시인 <근작시 5편>

성덕용 시인 | 기사입력 2011/12/05 [16:14]
*마루하루살이

 
날은 춥고 햇살은 따스하나 일간지 말들은 거칠고
바람은 회오리를 친다
나서야할 길은 아니지만 나서야 함은
그래도 살아있음이야
그래서 나서는 거지
이제가 행복한줄은 저제가 되어야 알겠지만
살아있음으로 해서
이제를 행복이라 강요한다
해받이를 좇아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마루하루살이도
때로는 문지방에 걸려 되돌아 누워야 하듯이
이제 나서는 길도
기다리지 않는 전화소리가 경계를 짓겠지
겨우내 꽃만 피었다 지는 화분의 고추꽃 처럼
하루 바람의 일과도 지워지고 그래도 하며 돌아누우니
눈살 찌프려지던 햇살을 좇아
동지 마루를 이리 뒹굴 저리뒹굴 생각이 굴러다닌다
 
언덕 너머 파란꽃이 피고
언덕 너머 하얀꽃이 피면
언덕 너머 파란꽃이 피고
언덕 너머 하얀꽃이 피면
 
나는 날 수 있다네 나는 날 수 있다네
▲ 성덕용   ©브레이크뉴스

*고압전선

-아무도 허락치 않은 그 새벽에 누전음은 강을 건너고 
                                     
흰꽃잎 구르는 그대 곁에
바람은 찬 비를 넘어 한반도의 별을 물고
풀빛 노를 젓는다
 
까치발로 딛어 온 생의 갈증도
연습처럼 마침표를 찍는데
하늘 울음은 땅을 친다
 
물레가 되어 별을 잣는 바람의 몸짓만큼
위대한 도시는 멈추어 서서
미친 말들을 강심에 던진다
 
그대 곁의 창백한 춤사위는 어디서 왔나
저 새벽을 건너던 전선의 누전음
짓이겨지던 푸르디 푸른 해의 살들
누가 건너는 소리요
무엇을 건너는 소리요
고압전선 아래 흰꽃이 떨고 있다
이제도 그대 곁에 흰꽃이 떨고 있다
 
 *전봇대와 지퍼
  
실루엣 가득 찬 길이다
어스름 빛은 해어름 잔영인지
해오름 여명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문화'에 취한 것인지, '문명'에 취한 것인지
소리들이 가득 전선줄을 타고 흐른다
몇만볼트의 섬광이 숨어 달리다
숨을 헐떡거리는 소리일게다
 
실루엣처럼 단조로운 소리였으나
기어코는 급정거하는 기계 파열음을 낸다
기계 파열음에 섞여
'전봇대'라는 소리가 들리자 '지퍼' 내리는 소리도 들렸다
'시원하다'
 
어디서 왔을까? 저 수많은 개들
순식간에 전봇대마다 들러붙어 지퍼를 내린다
 
실루엣 가득 찬 길에, 기계 파열음이 전설줄을 타고 달리는 길에
네박자로 쿵딱거리는 심장을 부둥켜 안고
어둠속 전봇대마다엔
이제도 수많은 개들이 지퍼를 내린다

*그래, 웃자!
  
꼭지에 힘을 잃은 잎새처럼 건드럭건드럭
교통카드가 몸을 떨고 있다
제 몫을 다한 목피처럼 큰 안주머니 속엔
1000원짜리 한 장 갈곳을 몰라 이리 쓸리고 저리 쓸리고
담배갑에는 쭈그러진 담배 두개피
들날락 숨쉬기를 멈춘다
소주 한 잔 하자고 핸드폰은 하루내 징징거리는데
정강이는 힘을 잃어 펴질줄을 모른다
퇴근시간 한 시간 반 전
지금이야 그저 기다릴 밖에,
어디선가 누군가가 술친구를 찾는다면
굳어진 무릎도 펴질 것이고
얼콰한 깡소주에 눈빛도 맑아질 것이니
그래, 웃자!
열심히 웃자!
 
오늘은 소리내어 웃어도 좋은 날이니, 그저.  
 
*야누스
 
손바닥이든 동전이든
내 손 안엣것의 양면이야 어쩌랴
그처럼 내가 나를 가늠하지 못함도 있으니
나를 독재할 수 있다는 것
참 무서운 말이다
하물며 여럿의 타인을 독재할 수있다는 것은 죄악이다
그렇다는 생각이다
어떤이는 희망을 먼저 던져주고
어떤 이는 고난을 먼저 던져주고
피안을 가리킨다
고난도 희망도
모두 다 지금은 절망일게다
 
하여 힘들다, 이러하여 웃고 저러하여 웃어도 그러하니
 
그래도 이 날에는 웃자
그저 웃지 말고
가슴엣 것 한껏 풀어헤치고 웃자.
풀어 헤치다 헤치다 보면
때로는 그 웃음으로 하여, 그 웃음의 힘으로 하여
내 고난함이 풀어지고
광주리 넘실넘실 푸른 희망이 담기려니
그저 웃지 말고
가슴을 토하며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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