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쓰고 있는 사적 제124호 덕수궁의 명칭을 일부 역사학자들이 경운궁으로 고치자는 주장이 있어서, 2011년 12월 2일 문화재청에서 공청회를 열었다. 문화재청은 공청회 결과를 심의하여 이름을 바꿀지 말지를 결정할 것이라 한다.
덕수궁의 역사를 보면 원래 월산대군의 사저였는데, 임진왜란 때 왕의 법궁인 경복궁이 소실되어, 선조가 행궁으로 썼다가, 광해군이 1608년에 즉위한지 3년 후인 1611년에 경운궁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1620년 인조가 반정에 성공하여 경운궁의 침전(즉조당으로 추정)에서 즉위하였다.
1623년에 선조의 침전을 빼고 나머지 건물은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어 경운궁이란 명칭 사용이 유명무실해졌다.
1893년 10월에, 선조가 의주 파천에서 돌아와 경운궁에 입궁한지 5주갑(300년)이 되는 해에, 고종이 세자(후에 순종이 됨)를 데리고 경운궁의 즉조당에서 배례를 하였고, 4년 후인 1896년에 환구단을 지어 천제를 지내고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대한제국의 법궁으로 하면서 명칭을 덕수궁으로 바꾸었다.
덕수궁이라는 명칭은 원래 태상왕이나 상왕이 거처하는 이궁의 명칭이다. 조선왕조 제2대 정종 때로부터 덕수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는데,. 이때 덕수궁이라는 명칭은 태조의 궁이라는 뜻으로 쓴 것이었다. 제3대 태종 때는 태상황인 태조가 덕수궁에서 사신을 맞기도 하였다. 송나라 때에도 덕수궁이라는 명칭을 쓴 것을 보면 태상왕이나 상왕의 거처를 일반적으로 덕수궁이라 호칭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한제국의 고종황제는 1906년(무오년) 12월 20일 덕수궁의 함녕전咸寧殿에서 승하하였다.
원래의 덕수궁은 지금 연세대학이 있는 연희방에 있었고, 연희궁衍禧宮으로 불렸다. 연희궁은 정종이 왕위를 태종에게 선양하고 난 뒤에 살았던 곳이다. 현재 궁궐터는 연희대학교 자리로 추정하는데 연희동延禧洞이란 동명이 여기에서 생겨났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연희방이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에 속하게 되면서 6.25사변 때는 연세대학교 뒷산을 연희고지로 불렀다.
여기에서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은 궁의 이름으로 고치는 데 일제 잔재 유무만을 따질 것이 아니라 조선왕조의 국도 한성의 범위 안에서 역사를 광범위하게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서울을 백제시대에 한성漢城(백제의 도성이라는 뜻)이라 하였고, 신라시대에 한양漢陽이라 하였다. 백제에서 한강이 있기 때문에 한성이라 했던 것이다. 이 이름이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500년이나 사용되었다.
한강과 한성은 천문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漢에는 은하수라는 뜻이 있고, 城에는 국도國都의 도성都城과 부도符都라는 뜻이 있고, 陽에는 태양太陽이라는 뜻이 있다. 이렇게 보면, 한강이라는 명칭이 단군조선시대에 한반도에 있었던 막조선 때부터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덕수궁의 정문을 대한문大漢門이라 하는데, 이 명칭은 대은하수大銀河水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다. 원래는 경운궁의 동문東門인 대안문大安門이었으나 대안문 앞이 도심이 되면서 대한문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고종 47권, 43년(1906 병오 / 대한 광무(光武) 10년) 4월 25일(양력) 2번째 기사에, “경운궁의 대안문을 대한문으로 고치다”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건도감(重建都監) 의궤 당상(儀軌堂上) 이재극(李載克)이 아뢰기를, “경운궁(慶運宮) 대안문(大安門)의 수리를 음력 4월 12일로 길일(吉日)을 택하여 공사를 시작할 것을 상주(上奏)합니다.” 하니, 제칙(制勅)을 내리기를,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치되 아뢴 대로 거행하라.” 하였다.
이 글은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가 경운궁의 대안문을 대한문으로 고쳤다는 기록이다.
<대한문상량문(大漢門上樑文)>이 "황하가 맑아지는 천재일우의 시운을 맞았으므로 국운이 길이 창대할 것이고 한성이 억만 년 이어갈 터전에 자리하였으니 문 이름으로 특별히 건다."하였는데, 조선왕조의 대안문 상량문이 아니고 대한제국의 대한문의 상량문임을 알 수 있다.
만약에 현재의 명칭 덕수궁을 경운궁으로 고친다면 대한문 역시 대안문으로 고쳐야 하는데, <조선왕조실록>에, "고종황제가 대안문을 대한문으로 고쳤다"고 했으니, 후대에 이를 고친다는 것은 역사를 훼손하는 일이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궁 이름을 경운궁으로 환원한다면 궁궐도 환원해야 할 것이고, 경운궁의 정문이었던 남문인 인화문仁化門도 복원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덕수궁 전체를 다시 짓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사태가 그렇게 발전하게 된다면 아예 이참에 원구단을 제대로 복원하여 대한제국의 역사유물을 한 점이라도 살려내는 것이 도리라고 본다.
이런 이유로 대한문과 덕수궁이라는 명칭은 대한제국의 역사유물로 남겨 두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