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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빛이여! 붉은 입술같은 웃음의 새벽
고요한 마을 함박꽃으로 피어나서 누구의 넋을 감고 다니는가
바람에 불붙은 꽃길은 삶의 절망을 깊숙히 감추인다
나는 가련다
네 술잔의 술이 비워지기 전에
우리의 그믐밤 숨은 달빛을 찾으러 나는 가련다
오랜 돌벽 아래 핀 잡초도
페인트 이겨붙인 푸른 대문도 아무 소용 없구나
황달 낀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가리우겠지만
눈을 닫아도 절로 가고 귀를 막아도 절로 가는
마음 들이야...
하늘에서, 산야에서, 혹은 질펀한 삶의 포장마차에서
퍼렇게 멍들어 펄떡거리고 있으니
속절없다 속절없다
네 술잔의 술이 비워지기 전에 나는 가련다.
*그사람
1.
나는 그에게 그 사람이다
나는 그에게 왜 그 사람이 되었을까
어쩌든 나는 그에게 그 사람이다
내가 그에게 그 사람이기 이전에
나는 무엇이었을까
회사내에서도 늘 술냄새를 풍기며 다니는
어처구니 없는 인생,
가끔 산악회에서 가는 산행길에서도
제일 먼저 술에 절어버리는 인간,
부서간에 서로 교류도 없지만 있더라도
곁에 있고 싶지 않은 인간.
(이정도면 그 사람도 되지 못할 것 같은데......)
나는 어떻게 그에게 들어갔을까
혹은 그의 문앞에 서게 되었을까
그는 나를 보았을까
2.
나는 그 사람에게 '우리 예쁜 당신'이다
나는 그 사람에게 어쩌다 '우리 예쁜 당신'이 되었을까
나는 '우리 예쁜 당신'이란 그 사람의 말에 묶여 산다
내가 그 사람의 '우리 예쁜 당신'이기 이전에도
그 사람에게 '예쁜' 사람이었을까
하얀 수정액으로, 혹은 수정 테잎으로
회사에서 제일 신기종이었던 전동 타자기 앞에 앉아
인생을 수정한다.
이른 출근 시간 부서장 책상에 꽃을 갈아놓고
보아야 할 신문을 정리하고
커피물을 올리고 하루의 시작을 기다린다
(오늘 하루도 은근한 추파들이 지금은 빈 이 사무실 안을 오갈 것이다.)
타이프 활자에 묻힌지도 5년이다
남자들은 이제 내모습보다 깔끔하게 타이핑된
보고서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가끔 용기를 잃은 추파가 내 발끝에 굴러떨어지기도 하지만
그저 발에 채일 뿐이다
그 사람은 그 때 나를 보았을까
3.
어느날 화신풍이 불었다
나는 봄바람이 되었고
대지로부터 꽃봉오리에 그 빛을 끌어올렸다
4.
어느날 거친 바람이 불어왔다
전혀 정리되지 않는 생소한 바람이 불어왔다
정리를 해야만 했다
5.
비가 내렸다. 비에 젖은 그리고
시멘트 포대종이에 아무렇게나 싸여있는
장미 한다발을 그에게 내어밀었다.
(빗속에 장미 한무더기를 놓고 떨며 서 있는
할머니가 너무 불쌍해서 그 장미를 몽땅 샀다)
오늘은 그를 세번째 만나는 날이다
6.
오늘 그 사람에게서 장미를 받았다
아무런 장식도 되지 않은 그저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인 장미를 들고 온것 같은
그런 아홉송이 꽃을 받았다
(남은 한송이는 자기 마음이라고 했다)
정말 거친 바람이다
(나는 지금 그에게 '그 사람'이다)
(나는 그 사람에게 지금 '우리 예쁜 당신'이다)
*신발 두짝
오랜 세월 밟히었느니
세월만큼
세월만큼
세월을 딛고서 웃느니
하여 내도 웃고싶다
*시계초침
내 시간 앞에는 욕망이 가득하다
똑딱똑딱
그 욕망을 가위질 하는 초침 소리
내 시간의 뒤에는
잘려나간 희망들이 널브러져 있다.
일상
말로 하기엔 너무도 벅찬 겉절이
'살아봐야 알지' 하시던
어머니의 넋두리
똑딱
똑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