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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계정 시인 근작시 7편

손계정 시인 | 기사입력 2011/12/22 [08:08]
*저자거리 푸른 노래
 
오십 평생
한 번도 내 몫의 영광 없었어도
살붙이 거두는 기쁨에
시린 바람 할퀴는 시장통
쉬어 갈라진 목소리에도 신명이 올랐다

더 얹은 한줌의 콩나물로
빼앗긴 단골을 놓고 머리채 휘어잡던 평산댁
시어빠진 김치 한 조각에 막걸리 한 사발 건네며
끝내 부둥켜안고 쏟아내던 울음
당집 대 끝 빛바랜 누덕 깃발로 건너왔던 삶
갈기갈기 찢긴 채 보이지 않는 
암담한 내일이 떨고 있었다
그래도 부르튼 손등으로 눈물 한번 쓸고 나면
사월 보리밭처럼 일어서는 자식 놈의 내일이
시퍼런 채찍 되어 지친 하루의 몸을 다스린다

그래, 삶이란 그런 것
그러면서 흘러가는 것
보리밭 푸른 물결로 흘러가는 것
어둠 내린 시장통
뒹굴려 다니는 잡다한 쓰레기 속에서
저자거리의 밤은 속으로 속으로 익어가며
파아란 내일을 노래한다.
 
▲ 손계정     ©브레이크뉴스
*이송도 길에 핀 며느리밥풀꽃

 
가파른 언덕배기
다닥다닥 어깨 맞댄 지붕 관절염을 앓고
평생을 바다만 바라보고 서서
물결에 흔들리며 더께 앉은 집
문간방을 튀어나와 돌아다니는 
대를 이은 해소기침
오늘은 얼굴이 바뀌었다

홀로된 시아버지
십여 년 세월을 받아낸 이부자리
몇 번을 삶아도 지워지지 않는
아픈 흔적 바닷바람에 펼쳐 널면
펄럭펄럭
바람이 삶의 행간을 두드리고
빨아 넌 속호청이 이별가를 부른다 

비루먹은 개 한 마리 곁에 앉히고
바다바라기하는 여인
만장(挽章)으로 흔들리는
이송도 길 오후의.

*이송도길: 부산시 영도구 영선동 소재의 해변 마을 지명으로 1송도와 마주보고 있어 제 2 송도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속호청: 이불잇의 경상도 방언
 
*막걸리 단상
          
      
 
막걸리병 기울이면
쏟아지는 눈발 속 허연 양은 주전자
찌들대로 찌든 삶의 껍질 벗어놓고
가출한 어머니의 하얀 고무신
비린내 나는 남루와
그 겨울을 휘몰아 가던 바람
배슬거리는 유년의 기억 속
늘 비틀걸음 아버지
술주정 보다 더 혹독했던
해소기침 소리.....

그날
쉰 김치 조각 앞에 놓고 따르던
아버지의 찌그러진 술주전자에서는
누가 흘러나왔던 것일까
잔을 비우며
아픔뿐인 그 시절
혹여 누가 볼세라 
허겁지겁 다시 주워 담으면
어느새 손끝에서 파르르 떨며
추억을 흔들고 있는 
아버지의 수전증

*걸지 못한 전화

달이 떴다고 하면 뭐랄까

그 달빛에
봄 내내 피워 올린 꽃잎
나비되어 팔랑 파랑
길 떠나더라면 뭐랄까

그 나비
가는 길 모두가
그대 돌아서서 바삐 걷던 쪽
향하더라면 뭐랄까

향하던 길 끝에서
또르르 또르르
바람결 따라 구르던 소리
외롭더라면 뭐랄까

그 소리
짝 잃고 울먹울먹
잡히지 않는 이름 하나 목메어 부르다
부풀부풀 부풀어
새가 되어 날아가더라면
또 뭐랄까

가로등 불빛
은하수로 내려깔린 공중전화박스 안
벌써 한 시간 째
다이얼에  걸린
손가락 하나

*방씨의 실직
 
보육원 뛰쳐나온 후
한번도 살 오른 적 없었던 방씨 아저씨
열두 살 무렵부터 공사판 잡일
겨우 명줄 엮어 가다 
오십 평생에 아부로 건져낸
노가다판의 십장
그 빛나는 자리
거들먹거림 욕설에 담아 올리면
기죽어 꼬리 내리는 건
국밥집 늙은 누렁이 한 마리뿐이어도
참 좋은 시절이었제.....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고
쾍! 가래 한 줄기 뽑아 올려 내뱉고 나면
세상이 발아래서 굽실거렸다
몇 달째 끌어오던 공사판
부도로 날아가고
뿔뿔이 흩어진 판장의 인부들
꽁초 나누어 빨던 찌든 얼굴도 그리움 되어
그 머물던 자리 바라보며
18, 18, 18.....
오늘도 술 취한 방씨
숫자공부 한다

*그땐 차마 풀어보지 못했던
 
이삿짐 꾸리다 낯설게 마주친-
내 기억의 어디쯤에선가
본 듯도 함께 한 듯도 한 낡은 상자 하나
먼지를 털어 내고 동여맨 노끈을 푸니
아련하게 묻어나는 슬픔의 빛깔
오래된 향기가 틔우는 길 따라
맨발로 달려드는 푸른 시간 
이십여 년 전 세상을 단절한
7년간의 사랑 하나
압화로 피어있다
깨알같이 써 내려간 편지들
아름답기만 했던 그 시절도
우리는 아파했었구나
네 손수건에 남긴 내 눈물의 얼룩자국
방울방울 꽃잎으로 피어나고
묻어 두었던 너와의 추억 일시에 깨어나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세월
누군가의 남편이 되고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또 다른 길에서 등 세우는 삶
그 사랑 더욱 더 튼실할 수 있기를 바라며
행여 이 순수
바람에라도 들킬세라 다시 동여매는
그땐 차마 풀어보지 못했던
젊은 날의
눈부신 기억 한 조각.
 
*분수

치밀과 정밀으로 계산된
각도와 수압으로 그리는
물의 꿈이여

일제히 쏘아 올린 물줄기가 그리는
난무(亂舞) 속
영광과 절망이
혁명과 좌절이
네 속에서 치열하더니
물사위 한 번으로 함축되는
역사의 흥망성쇠

화산처럼 뿜어 올려져
허공에 길을 내고
절정의 순간
기꺼이 스러져 내릴 줄 아는
지존의 낙화

오늘은
백화점 한쪽 모퉁이 자리잡아
영롱한 무지개 하나
후광으로 걸어놓고
호.
객.
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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